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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 좌표 실수, 오폭 뒤늦게 안 수뇌부] [오폭의 역사] ....

뚝섬 2025. 3. 8. 09:26

[아무도 모른 좌표 실수, 오폭 뒤늦게 안 수뇌부]

[오폭의 역사]

[오폭 36분 뒤 합참의장에게 보고, 전시였다면]

 

 

 

아무도 모른 좌표 실수, 오폭 뒤늦게 안 수뇌부

 

국내에서 전투기 오폭 사고는 드물다. 실전용 폭탄을 잘못 떨어뜨린 적은 아예 없었다. 2004년 F-5B 전투기가 충남 보령시 한 주차장에 폭탄을 잘못 투하해 차량이 훼손됐지만 폭발하지 않는 연습용 폭탄이었다. 이듬해엔 F-16 전투기가 전북 농가 비닐하우스에 연습탄 2발을 떨어뜨렸는데 인명 피해는 없었다. 6일 발생한 F-16 전투기 오폭 사고가 충격을 주는 건 실전용 폭탄이 8발이나, 그것도 주민 700여 명이 사는 경기 포천시 한 마을을 덮쳤기 때문이다.

▷폭탄이 떨어진 시각은 오전 10시 4분이었다. 청명한 하늘에서 느닷없이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건 전시(戰時)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렵다. 수많은 주민들이 혼비백산하며 “전쟁 난 줄 알았다”고 울먹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마을 곳곳에 폭발 굉음이 들리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를 때 이들이 느꼈을 공포는 형언하기 힘들 것이다. 한 여성은 어찌나 놀랐는지 남편에게 “여보, 어떻게 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다 “우리 집이 날아갔어”라고 힘겹게 전하는 통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다.

▷민가에 떨어진 MK-82 폭탄은 교량과 건물을 파괴하기 위한 대량 투하용으로 쓰인다. 폭발 때 직경 8m, 깊이 2.4m 구덩이를 만드는 건 물론 살상 반경이 축구장 1개 면적에 달한다. 낙탄 위치가 달랐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참사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폭탄은 유도 기능이 없기 때문에 전투기에 표적 좌표를 정확히 입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좌표 숫자 1개라도 틀리면 몇 km씩 오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조종사가 출격에 앞서 바로 그 좌표 15개 숫자 중 위도 숫자 1개를 잘못 입력한 탓에 훈련장에서 8km 떨어진 민가가 오폭당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조종사는 좌표를 잘못 입력한 뒤 전투기 탑승 직후 지상에서 한 번, 공중에서 투하 직전까지 두 번 더 표적을 검증해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지만 세 번 기회 모두 지나쳤다. 그런데 애초 조종사만 좌표를 확인한다고 한다. 이번에도 혼자 타는 K-16 조종사 본인 외에 아무도 좌표를 검증하지 않았다. 한 치 오차도 없어야 할 살상무기를 다루는 매뉴얼이 이리 허술하리라 예상한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군 수뇌부는 사고 30분이 지나도록 오폭 사실조차 몰랐다. 김명수 합참의장에게는 사고 36분 뒤,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인 김선호 차관에게는 39분 뒤에야 보고됐다. 원래 폭탄을 투하했어야 할 포천 훈련장에선 사고 뒤에도 다른 훈련이 계속됐고 훈련을 참관한 김 의장과 한미연합군사령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장병들과 대화도 나눴다고 한다. 합참이 사고를 파악한 시점 자체가 오폭 20분 뒤였다. 사고 1분 만에 구조에 착수한 소방 당국보다 19분 늦었다. 전쟁 때도 이렇게 한심하게 대처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완준 논설위원, 동아일보(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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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폭의 역사

 

공중폭격은 2차 대전 때부터 본격화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때 미군 폭격기의 첫 폭격 연기가 미군 진영으로 흘러왔다. 뒤따르던 폭격기가 연기를 목표물로 오인해 폭탄을 쏟아부으면서 미군 중장을 포함한 240여 명이 사망했다. 아군과 적군이 근접한 지상 전투에선 ‘아군을 죽이는 오인 사격’(friendly fire)이 잦았다. 하지만 2차 대전 당시 공중폭격엔 그런 개념 자체가 부족했다. 아예 민간인 대량 살상을 목표로 한 ‘전략폭격’이 횡행했기 때문이었다. 폭탄으로 카펫을 깐다는 ‘융단폭격’, 도시 블록을 날려버린다는 ‘블록버스터’가 폭격 전술이었다.

 

▶2차 대전 막바지 영국 공군이 덴마크의 독일 게슈타포 근거지를 공습한다. 전투기 한 대가 대공포를 피해 저공비행을 하다가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추락하자 그 화재를 보고 폭격기들이 게슈타포 기지로 오인, 폭탄을 투하했다. 어린이만 80여 명이 사망했다. 이 비극은 영화 ‘폭격’으로 만들어졌다. 베트남 전쟁 때까지 항공 폭탄은 중력으로 떨어지는 ‘멍텅구리’ 폭탄이었다.

 

1991년 걸프 전쟁에서 항공 폭탄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밀 유도폭탄이 등장한 것이다. F-117 스텔스기가 떨어뜨린 유도폭탄(GBU-10) 한 발이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됐다. 멍텅구리 폭탄에 GPS 유도장치를 붙인 ‘합동 직격탄(JDAM)’도 대량으로 등장했다. 융단폭격이 아닌 ‘외과 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지상의 오인 사격과 공중 오폭을 막기 위한 첨단 피아 식별 장치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코소보 전쟁이 한창이던 1999년 미군 공군기가 옛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폭격했다. 중국인 3명과 현지인 14명이 즉사했다. 미국은 “오폭”이라며 “좌표 입력을 잘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대사관이 추락한 미 스텔스기 잔해 일부를 입수해 은닉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스텔스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고의 폭격 아니냐는 의혹이 컸다. 당시 미국 주도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목매던 중국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 2대가 훈련 중 민가에 폭탄 8발을 떨어뜨렸다. 한국 공군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이런 어이없는 사고가 났다. 급박한 전쟁터에서 오폭은 많았지만 평시 훈련 중에 민간인 지역을 때리는 공중 오폭은 희귀할 것이다. 공군은 우리 군 최고, 최대의 억지력이다.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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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폭 36분 뒤 합참의장에게 보고, 전시였다면 

 

7일 오후 경기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KF-16 전투기 오폭 사고 현장의 가정집이 통제되고 있다. /뉴스1

 

6일 공군 전투기의 경기도 포천 민가 오폭 사고는 조종사가 타격 지점 좌표를 잘못 입력한 탓이라고 군이 밝혔다. 실사격 훈련 중인데 좌표 입력 오류를 공군의 누구도 잡아내지 못했고 조종사는 폭탄 투하 지점을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전투기가 8km 이상 훈련장을 이탈했는데 관제사 등의 경고도 없었다고 한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국군 통수권이 불안한 상황에서 군의 기강 해이를 드러내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오폭 사고 발생 시각은 오전 10시 4분이었다. 군 작전을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가 이 사실을 최초 보고받은 것이 10시 24분이고 합참의장에게는 10시 40분에 보고했다고 한다. 최악의 오폭 사고가 났는데도 합참의장 보고까지 36분이나 걸린 것이다. 합참의장은 사고를 모르는 채 한미연합사령관과 훈련 관련 행사까지 마쳤다.

 

반면 소방은 수분 만에 오폭을 확인했다고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방부에서 보고받은 것도 사고 1시간이 지나서였다. 뉴스 속보보다 늦었다. 만약 이 지역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졌을 때 합참의장이 36분 뒤에 알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사람이 하는 일에서 불의의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대형 사고 보고가 30분~1시간 늦은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현대전에서 36분은 승패를 좌우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북한 장사정포는 10분 안에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다. 군 지휘부가 신속한 보고를 받아야 반격도 할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이 많은 장병과 국민의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 군은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사고가 났다고 실전 훈련을 아예 하지 않는 비전문적이고 안이한 결정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일보(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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