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자살] .... [다시 반복돼선 안 될 ‘기국비기국(其國非其國)’]
[국가의 자살]
[영국과 러시아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다시 반복돼선 안 될 ‘기국비기국(其國非其國)’]
국가의 자살
영국, 브렉시트로 2류 국가화
미국, 트럼프 뽑아 위기 자초
투표로 '국가 쇠퇴'의 길 선택
한국도 이제 그 뒤를 따르는가
해외 출장 가거나 서울에서 영국인을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찬성했느냐.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영국인 대부분은 이에 대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도 있었다. 한 고위 관리 반응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노 코멘트.” 하지만 심각해지는 그의 얼굴에서 브렉시트에 불만인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은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했다. 51.9%가 찬성표를 던진 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경제 침체, 무역 위축, 금융 중심지 지위 약화…. 온갖 후폭풍이 이어지면서 브렉시트를 후회하는 ‘브레그렛(Bregret)’ 현상이 퍼졌다. 올 초 유고브(YouGov) 여론조사에서는 영국인 55%가 ‘브렉시트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올바른 선택’이라는 응답은 30%에 불과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며 ‘2류 국가로 가는 길’ ‘국가적 자살’에 비유되기도 한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트럼프는 압도적 지지로 다시 대통령에 뽑혔는데, 불과 6개월도 안 돼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트럼프 취임 후 100일 지지율은 39~41%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미국인 4분의 3은 그의 정책이 경기 침체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한다. 10명 중에 6명은 그가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다고 비판한다. 상호 관세 부과→90일 유예의 ‘트럼표 쇼’가 벌어지면서 미국은 주가·국채·달러화 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겪었다. 위기가 닥치면 미국 국채와 달러 가치 상승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작동해 왔는데,이게 고장 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한국을 찾은 미국 전문가들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다. 지난달 아산정책연구원이 서울에서 주최한 국제 회의에 참석한 미국인 전문가는 “트럼프가 미국을 고립시키며 몰락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맏형 같은 역할을 해왔다. 많은 나라가 미국을 신뢰하며 ‘캡틴 아메리카’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제 각국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신뢰할 수 없기에 ‘면종복배(面從腹背)‘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얼마 전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고,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며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의 쇠락을 우려했다.
국민의 투표를 통해 잘못된 지도자가 등장하고 국가가 몰락하는 역사는 최근 일만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에 빠진 독일의 국민은 히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은 뒤, 정적을 제거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 후 독일이 어떻게 파멸의 행진을 하며 파열음을 냈는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다.
두려운 것은 포퓰리즘에 기반한 선택이 초래하는 위험을 역사가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음에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은 명백히 예상되는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와 트럼프를 선택했다. 국가의 자살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정치인들의 선동과 감정적 선거 캠페인에 묻혀버렸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자멸(自滅)적 계엄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달 바로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조선일보(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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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러시아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
올 1월 우크라이나와 ‘100년 동반자 협정’을 맺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 사진)와 이런 영국을 강하게 견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19세기 유라시아 전체에서 패권 다툼 ‘그레이트 게임’을 벌였던 두 나라가 21세기에도 우크라이나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런던·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가 영국의 물, 가스, 전기 공급을 마비시키려 한다.”(토비아스 엘우드 전 영국 국방장관)
“스타머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긴장을 고조시켰다.”(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최근 영국과 러시아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가 서로를 향해 내놓은 발언이다. 두 나라가 교전 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날이 서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올 1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았다. 러시아 견제를 위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향후 100년간 두 나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100년 동반자 협정’도 맺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교장관 또한 지난달 초 세르비아, 코소보 등 동유럽 발칸반도 일대를 방문해 역내 국가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발칸반도 내 인종 및 종교 갈등을 부추기고 이로 인한 사회 불안정을 해소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개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더타임스는 핵미사일을 탑재한 영국의 ‘뱅가드’ 잠수함 4척을 감시하기 위해 러시아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가 영국 해역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러시아와 맞서려면 군사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게 엘우드 전 장관의 주장이다.
반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100년 동반자 협정’ 체결 당시 “우크라이나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려 한다”고 비판했다. 스타머 총리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력이 유한한데 그들이 물러나면 누가 이 협정을 기억조차 하겠느냐고 조롱했다.
최근 러시아 고위 관계자 3명 또한 로이터통신에 “이제 영국이 모스크바의 주요 적대 세력이 됐다”고 진단했다. 영국이 주요국 최초로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전차를 지원했고,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려 하며, 전 세계의 반(反)러시아 여론을 결집시키는 데 앞장선다는 점 등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 중국과의 패권 경쟁 등으로 바쁜 사이 영국과 러시아가 일종의 21세기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이고 있다. 그레이트 게임은 19세기 내내 대영제국과 러시아가 인도, 중앙아시아, 극동, 흑해 등 유라시아 전체에서 벌인 각축전이다.
이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21세기에도 재연되는 모양새다. 두 나라가 당시 가장 격렬하게 대립했던 크림전쟁(1853∼1856년)의 무대가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토 분쟁지인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그레이트 게임의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희생양이 됐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1885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했다. 이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숙적 러시아와 싸우는 일본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을 합방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한반도가 21세기 그레이트 게임의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모두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에 군대를 파병했음을 시인했다. 2023년 12월 워싱턴포스트(WP) 또한 그해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한 155mm 포탄의 수가 전 유럽 국가의 공급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를 놓고 한국과 북한이 일종의 ‘대리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개화파’와 ‘척사파’의 극한 대립에 시달렸으며 국제 정세에도 무지했던 구한말 조선은 오판과 실책을 거듭하며 망국(亡國)의 길로 들어섰다. 강대국 간 패권 다툼에서 희생됐던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제 정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국가 차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동아일보(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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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취임 100일 자축하며 “위대한 출발” 자랑. 140여 개 행정명령으로 세상 흔드니 백일이 5년 같네.
-팔면봉, 조선일보(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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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복돼선 안 될 ‘기국비기국(其國非其國)’
[김도연 칼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5월은 임진왜란 때
정치세력은 권력다툼, 선조는 明 피신 시도
왜-명 ‘조선 나눠먹기’ 전쟁에 대응도 못해
정치권, 역사 교훈 받아들여 반목 청산해야
5월을 맞으면 초등학교 교정에서 모두가 함께 불렀던 어린이날 노래가 떠오른다. 반세기도 더 전의 일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그리고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란 노랫말이 참 정겹다. 그러나 이어지는 2절 즉,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에서는 조금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 당시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대한민국 발전을 어린이들에게도 다짐받는 모양새인데, 실제로 그 시절의 우리는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그토록 절실했다.
태산보다도 넘기 어렵다는 보릿고개를 만나는 계절이 5월이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자리 잡고 지내 온 긴 시간 동안, 이 무렵은 민초들에게 한 번도 편안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끼니를 거르고 굶는다는 것에 대해 체중 조절을 위한 다이어트로만 받아들일 만큼 풍요롭게 되었지만, 북녘 동포들은 이번 5월을 과연 어떻게 지낼까? 남북이 이렇게 완벽히 분단돼 서로 적대하며 지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한반도 분단은 사실 임진왜란 때 그 뿌리를 내렸다. 16세기 말이 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왜(倭)는 명(明)을 정복하러 갈 테니 길을 내달라는 요구를 했고, 이는 당연히 조선이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임진왜란은 조선을 침입한 왜와 이를 막겠다고 나선 명의 전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왜와 명 두 나라의 한반도 ‘나누어 먹기’ 전쟁이었다. 왜는 조선의 남쪽 4도를 먹기 위해 진력했고, 명은 왜의 침략을 한강 이남에서 막아 북쪽 4도를 먹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당시의 조선은 율곡 선생께서 말한 대로 ‘기국비기국(其國非其國)’, 즉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정치 세력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권력 다툼에 몰두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국가의 전반적인 대응 능력은 크게 약화돼 있었다. 실제로 전쟁 발발과 더불어 선조는 평안도 의주로 일찌감치 도망갔고 몇 안 되는 우리 군사들은 굶주려 힘이 없었다. 활과 몽둥이를 들고 왜군의 조총을 상대해야 하는 조선군은 도망만이 살길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5월은 바로 1592년이다. 왜군은 그해 5월 23일에 부산에 상륙했고 6월 10일에는 서울에 들어왔다. 즉, 나라의 수도가 점령되는 데 걸린 시간이 20일도 채 안 되었다. 전투다운 전투는 어디에도 없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냥 걸어서 올라오기에도 20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시 개성을 거쳐 평양을 점령한 것이 7월 23일, 그렇게 조선의 3도인 서울과 개성 그리고 평양이 두 달 만에 모두 함락됐다.
선조는 아예 명나라로 피신해 스스로의 안녕을 택하고자 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의 병조판서 류성룡은 단호히 반대했다. 이순신 장군도 똑같은 의견이었다. 만약 선조가 명으로 피신했더라면 조선은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류성룡은 육지에서 그리고 이순신은 바다에서 각각 나라를 구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2007년에 펴낸 ‘위대한 만남’에서 “류성룡과 이순신, 만일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떤 우리로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도 ‘중국말 쓰는 우리’ 혹은 ‘일본말 쓰는 우리’로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참되고 역량 있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우리 민족을 구했다.
16세기 말에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이 밖의 세상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에 철저히 대비했다면 적어도 전란의 피해는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지도층은 한반도 주변 열강의 움직임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조선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진력했다. 서양의 속담 “역사는 스스로 반복한다”는 무서운 경고다.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율곡 선생이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시면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독일 그리고 캐나다 등에서는 집권당과 야당이 정쟁을 멈추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권력을 잡고 반대파를 쓸어 버리기 위해 한결같이 반목하고 투쟁하는 일뿐이다. 대화와 협력 없는 민주정치는 완벽한 거짓이다. 6월 3일에 선출되는 새로운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필히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기국비기국’이 반복돼서는 결코 안 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동아일보(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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