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라 스칼라' 반가운 이유] [음악 대가들의 명언]
[정명훈의 '라 스칼라' 반가운 이유]
[음악 대가들의 명언]
정명훈의 '라 스칼라' 반가운 이유
만약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고, 류현진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휘자 정명훈의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음악 감독 선임은 흡사 이런 가정이 현실이 된 것과도 같다. 라 스칼라 극장은 베르디와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들이 초연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종가(宗家)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이 자리를 거쳐간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 지휘자가 이 중책을 맡는 것은 240여 년 극장 역사상 처음이다. 이 이례적 사건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국내외 언론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않았던 배경이 있다. 지난 2023년 이탈리아에서는 국립 오페라극장의 행정을 책임지는 극장장의 정년을 70세로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그 뒤 극장장의 연쇄 이동이 일어나면서 일종의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을 이끌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 극장장 역시 최근 라 스칼라로 자리를 옮겼다. 정명훈이 “나보다 베르디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격찬할 만큼 음악적 조예가 깊고 우의도 두터운 극장장이다. 정명훈의 라 스칼라 입성(入城)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음악계의 연쇄 이동은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다. 정명훈은 다음 자리를 내다보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거나 권력 지향적인 지휘자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무려 15년이나 머물렀다. 또한 서울시향도 10년간 이끌면서 한국 음악계의 체질 변화를 진두지휘했다. 정명훈이 “세계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지만 서로 이해하는 사이가 아니면 (지휘)하기 싫어진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72세인 정명훈의 음악 인생을 절반으로 나눌 때 ‘중간 반환점’에 해당하는 해가 36세 때인 1989년이다. 당시 정명훈은 프랑스 파리의 명문 오페라극장인 바스티유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다. 눈부신 ‘초고속 출세’였다. 그 뒤 직책만 놓고 보면 부침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드뷔시·라벨·메시앙까지 프랑스 관현악의 권위자였고, 베르디의 오페라에서도 이탈리아 거장들 못지않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흔히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정명훈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2002년 일본의 거장 오자와 세이지(1935~2024)가 빈 슈타츠오퍼(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 소식을 접한 뒤 ‘우리는 언제쯤 저런 날을 보게 될까’ 탄식한 적이 있다. 그 질문에 해답이 나오기까지 꼭 23년이 걸렸다. 정명훈은 “2027년 부산에 오페라극장이 문을 열면, 그때 개관 연주회는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오페라 교류’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정명훈의 라 스칼라 입성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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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대가들의 명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명언은 끝없는 훈련이 연주자 숙명임을 표현
토스카니니·루빈스타인의 명언에선 작곡가의 의도를 중시하는 철학 보여
추석 명절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 화장실에 들르면 훌륭한 인물들이 남긴 명언이 붙어 있을 때가 많죠. 음악가 중에도 교훈과 재미가 담겨 지금까지 입에 오르는 명언을 남긴 인물이 많아요. 자신의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예술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이죠.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음악가였어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악보도 몇 시간 만에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그의 재능에 놀라고 부러워했죠. 정작 본인은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성실하게 연습했다고 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중년의 나이인 45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작곡, 피아노 연주, 지휘를 병행하는 바쁜 날들이 이어졌어요. 시간을 쪼개 가며 부지런히 무대를 준비했던 그는 어느 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음악은 인생을 위해 충분하다. 하지만 인생은 음악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작곡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작업 중인 악보를 살펴보다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오죠. 모차르트의 악보 어느 곳에도 잘못 써서 고친 표시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완벽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을 두고 사람들은 '하늘의 천사가 불러주는 음악을 받아 적은 듯하다'고 표현했죠. 하지만 모차르트도 시행착오와 고민을 거듭하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작품을 썼답니다. 모차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품을 쓴다고 착각한다. 그렇지만 선배들의 음악 가운데 내가 연구해 보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1888~1963)는 신시내티 심포니, 피츠버그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등을 지휘하며 명성을 쌓았는데, 가는 곳마다 완고한 자세와 타협을 모르는 독선적인 성격으로 단원들을 불편하게 했어요.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에서 라이너의 뛰어난 역량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수가 적어 눈빛만으로 단원들을 이끌었던 라이너였지만, 이 두 마디 말은 빼놓지 않고 자주 했다고 합니다. "음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이너 이상으로 강한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지녔던 지휘자가 이탈리아 출신의 대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였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청중의 박수가 연주자들이 아닌 작곡가에게 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작곡가의 의도, 즉 악보에 쓰인 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으로 작품을 왜곡하는 연주를 싫어했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을 지휘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휘대에 올랐던 그의 음악관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1악장을 설명한 이 문장으로 설명됩니다. "어떤 이는 이 곡이 나폴레옹을 가리킨다고 하고, 어떤 이는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 곡은 단지 알레그로 콘 브리오(생기 있고 빠르게 연주하라는 지시어)일 뿐이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은 폴란드 태생으로, 동포인 쇼팽의 작품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대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루빈스타인도 토스카니니처럼 작곡가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젊은 시절인 20세기 초 피아니스트들이 쇼팽을 지나치게 연주자의 주관대로 해석하는 경향에 반대했죠. 당시에는 그의 쇼팽 해석이 지나치게 무미건조하다고 비판받았지만, 노년에는 그의 쇼팽 연주를 전 세계가 인정했습니다. 그는 쇼팽 탄생 150주년이었던 1960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쇼팽은 고상한 감성으로 연주되어야 한다. 그는 달빛에 펜을 적셔 작곡하는 걷잡을 수 없는 로맨티시스트가 결코 아니었다."
집시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을 떠오르게 하는 명곡 '치고이너바이젠'을 작곡한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데 사라사테(1844~1908)는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아요. 10세 때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 앞에서 연주하고서 여왕으로부터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물로 받기도 했죠. 바이올린의 모든 기교를 자유자재로 발휘한 그는 타고난 천재로 불렸어요. 그렇지만 사라사테가 남긴 말은 연주자에게 숙명인 '끝없이 훈련하는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7년간 하루 14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해 왔는데,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천재라고 부른다."
["행복하지 않으면 왜 음악하죠?"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 마의 말]
중국계 미국인 요요 마(64)는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첼로 연주자일 듯합니다. 첼로로 연주할 수 있는 모든 작품을 종횡무진으로 다루는 요요 마는 지난 30여년 동안 50장이 넘는 앨범을 발매했고, 15번이나 그래미상을 받은 우리 시대의 수퍼스타입니다. 그는 "음악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다면, 당신은 왜 음악을 합니까?"라는 명언을 남겼죠.
첼로를 연주하는 요요 마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첼로 소리를 청중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지난 8일 내한 공연에서 요요 마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였습니다. 작년 8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번 연주회는 전 세계 6개 대륙 36개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죠. 첼로 한 대로 쉬지 않고 2시간 30분 동안 바흐를 연주한 요요 마에게 5000여명의 청중은 마음을 모아 귀를 기울였습니다. 요요 마는 시종일관 눈을 감고 집중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연주를 이어나갔죠. 평소 그가 늘 강조하는 이 단순한 원칙은 누구에게나 삶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닷컴(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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