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피자 데이]
비트코인 피자 데이
“피자 보내줄 사람 아무도 없나요? 1만 비트코인이 너무 적은가요?” 2010년 5월 21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에 사는 프로그래머 라슬로 핸예츠가 사흘 전 자신이 올린 글에 별 반응이 없자 다시 물은 것이다. 그의 제안은 다음 날인 22일 받아들여졌고, 첫 실물거래가 이뤄진 이날은 ‘비트코인 피자 데이’란 이름의 기념일이 됐다. 핸예츠가 피자 2판을 산 1만 비트코인은 당시 시세로 41달러 정도였지만 지금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2009년 탄생 초기에 비트코인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프로그래머 스테펀 토머스는 2011년 가상화폐 관련 영상을 제작해준 대가로 비트코인 7002개를 받았는데, 이를 전자지갑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10년이 지나 비트코인 가격이 수천 배 오르자 전자지갑을 찾았지만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전자지갑은 비번이 10번 틀리면 아예 접근을 차단하는데 토마스는 비번을 8번 틀렸다. 그는 새로운 암호 해제 기술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하우얼스는 2013년 비트코인 8000개가 들어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버렸다가 10년 넘게 쓰레기장을 뒤지는 인생이 됐다. 그는 하드디스크가 140만톤의 쓰레기가 모인 매립지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하며 수년째 발굴 중이다. 영국 당국이 매립지를 폐쇄하고 태양광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하우얼스는 아예 땅 전체를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그가 버린 비트코인 8000개의 현 시세는 1조2000억원쯤 된다.
▶비트코인에 대한 회의론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가상화폐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했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 시카고대 교수는 비트코인 가치가 “10년 내 제로(0)가 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주식·채권 등과 달리 실질 가치가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내재 가치가 없어도 많은 사람이 신뢰하며 ‘교환 가치’를 인정하면 화폐가 될 수 있다는 금융 원리를 비트코인이 보여주고 있다.
▶비트코인 피자 데이인 22일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11만달러(약 1억5200만원)를 돌파했다. 금처럼 경제가 불안하면 돈이 몰리는 안전 자산으로서 가치가 부각된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회의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트코인은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글로벌 화폐의 지위를 굳혀 간다. 이제 비트코인 1개로 2만5000원짜리 피자 6000판을 살 수 있다.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김성민 기자, 조선일보(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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