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와인 가져와 마시라는 패스트푸드점 vs. 병당 20만원 내라는.. ]

뚝섬 2025. 6. 1. 06:15

와인 가져와 마시라는 패스트푸드점 vs. 병당 20만원 내라는 레스토랑

 

'프리'부터 초고가까지
양극화하는 코키지

 

KFC 압구정로데오점에서 외부 반입 주류를 마시려면 키오스크 주문 시 ‘코키지 프리’를 다른 메뉴와 함께 선택한다. 매장에 와인잔은 없다. 탄산음료용 플라스틱잔이나 유리 맥주잔을 내주니, 와인을 와인답게 마시려면 잔을 챙겨 가는 게 좋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1: 백발에 흰 정장을 입은 창업자 ‘샌더스 대령’ 모형이 세워진 KFC 압구정로데오점 정문에 ‘CORKAGE FREE(코키지 프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 세계 KFC 최초이자 유일한 코키지 프리 매장이다. 챙겨간 와인 2병을 따서 잔에 따랐다. 바삭하고 기름진 치킨은 산미가 돋보이는 피노누아 품종 레드와인과 썩 어울렸다. 열대 과일향과 오크 뉘앙스가 도드라지는 샤르도네 품종 화이트와인은 따뜻한 비스킷과도 찰떡궁합. 매장 직원은 “와인이 대부분이지만, 위스키나 막걸리를 가져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2: ‘흑백요리사’로 유명해진 안성재 셰프가 영업을 임시 중단했던 자신의 레스토랑 ‘모수’를 지난 3월 다시 열었다. 식사비(저녁 코스 1인 42만원)만큼이나 비싼 코키지가 논란이 됐다. 와인 1병에 20만원. 레스토랑 컨설턴트 A씨는 “사실상 와인을 들고 오지 말고 매장에서 사 마시라는 뜻”이라고 했다.

 

코키지가 양극화하고 있다. 코키지는 ‘코르크 차지(cork charge)’의 줄임말로, 손님이 매장에 있는 술을 사서 마시는 대신 외부 주류를 가져와 마실 때 잔을 내주고 따라주는 등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말한다. 코키지가 ‘프리’라는 건 이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

 

밖에서 가져온 술을 마셔도 따로 돈을 받지 않는 ‘코키지 프리’ 식당은 2~3년 전부터 유행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던 코키지 프리 서비스가 삼겹살집 등으로 번져나갔고, 들고 가는 술도 와인·위스키 등 고급 주류뿐 아니라 소주·맥주로 대중화했다.

 

패스트푸드점인 KFC마저 도입할 만큼 코키지 프리가 확산한 이유는 외식업장에서 판매하는 주류 가격의 급등. 손님은 술을 저렴하게 마실 수 있으니 이득이고, 식당은 주류 매출을 포기하는 대신 더 많은 손님을 모아 음식 매출을 늘리는 게 낫다는 셈법이었다.

 

그런데 인기를 끌던 코키지 프리 서비스를 폐지하거나, 코키지를 올리는 식당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회사원 박성수(41)씨는 최근 서울 용산의 한 고깃집에 갔다가 당황했다. 저녁을 먹으며 마실 와인 2병을 챙겨갔는데, 식당 측에서 “코키지를 받기로 방침을 변경했다”며 병당 3만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고급 식당 중에는 코키지 값이 10만원을 훌쩍 넘는 곳도 많다. 외식 업계 관계자 B씨는 “안성재 셰프가 대중적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 대부분에서 비슷한 수준의 코키지를 받는다”고 했다. 올해 미쉐린 3스타로 새롭게 등극한 ‘밍글스’는 코키지가 와인 병당 10만원, 안 셰프와 결별한 CJ가 올해 초 새로 오픈한 ‘산’은 병당 15만원이다.

 

코키지 프리를 폐지하거나 요금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 식당들은 “주류에서라도 남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로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당 주인 C씨는 “식재료 가격이 급등한 데다, 코키지 프리를 하고도 손님이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며 “고민 끝에 코키지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요리사 D씨는 3년 전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부터 식당 와인 리스트에 올라 있는 와인일 경우 매장 판매가의 30%, 리스트에 없는 와인이면 병당 15만원의 코키지를 받고 있다. “통상 식자재비가 음식값의 30% 이하라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어요. 그런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원자재 비용이 40% 심지어 50%를 육박하는 곳이 많아요.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인력은 훨씬 많고요. 하지만 대중 식당처럼 코키지 프리를 한다며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도 없죠. 그러니 와인을 팔아서라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밖에요.”

 

#3: 지난달 한 식당 예약 사이트에 불만 후기가 올라왔다. 미쉐린 별까지 받은 유명 레스토랑에 와인을 가져갔다. 코키지 10만원을 감수하며 들고 간 와인은 1996년산 ‘샤토 슈발 블랑’. 170만~250만원에 거래된다는 프랑스 보르도 최고급 와인이다. 후기를 올린 이는 “소믈리에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100mL가량 따라 마셨다”고 주장했다. 23만~33만원어치 와인을 가져간 셈이다. 이어 그는 “손님이 직접 가져온 와인을 결함이 있을 경우 교체해줄 것도 아니면서 왜 시음하는지, 그것도 그렇게 많이 따라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항의했다. 레스토랑 측은 거듭 해명 글을 올렸지만, ‘소믈리에가 아니라 도둑이네’라는 비난 댓글이 달리는 등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해당 소믈리에를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와인 업계 관계자 E씨는 “손님이 가져온 와인이라도 결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믈리에가 시음할 수는 있지만 한두 모금 정도지 와인 한 병(750mL)의 10%가 넘는 100mL나 따르는 경우는 드물다”며 “코키지가 비싸지면서 손님들은 예전보다 엄격해지고 예민해진 듯하다”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5-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