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축' 무력화하고 '부의 축' 구축하는 트럼프] ....
['저항의 축' 무력화하고 '부의 축' 구축하는 트럼프]
[산업용 전기료 美의 절반… 빅테크가 中東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짓는 이유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우리 태도에 따라 야누스 되는 AI]
['AI 민주주의' 제대로 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저항의 축' 무력화하고 '부의 축' 구축하는 트럼프
[新중동천일야화]
/EPA 연합뉴스
지난달 중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걸프 3국을 방문했다. 5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필두로 2박 3일간 카타르와 UAE(아랍에미리트 연합)에서 잇따라 정상회담을 했다. 막대한 금액의 투자 협약이 쏟아졌다. 사우디는 6000억달러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고, 엔비디아는 사우디 기업 휴메인에 AI 칩 1만8000개를 수출하기로 했다. 카타르는 첨단 무기 및 보잉 민항기 210대 구매를 포함해 향후 1조2000억달러 규모까지 투자를 확대하기로 하고, UAE는 AI 가속화 파트너십을 비롯해 2000억달러 규모의 협력을 약속했다. 미국은 세 나라와 모두 2조달러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 협약을 맺었다.
2차 대전 종전 이래 미국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국은 영국, 캐나다, 멕시코 중 하나였다. 동맹국 또는 접경국을 우선하는 관례였다. 예외는 딱 한 번, 2017년 트럼프의 사우디와 이스라엘 방문이었다. 화제였다. 당시 트럼프는 사우디와 3800억달러 규모의 경제 협약으로 ‘거래 외교’의 성과를 자랑했다. 다른 대통령들은 해외에 파병이다 개발이다 돈을 쓰지만 자신은 오히려 벌어 온다며 흐뭇해했다.
4년 만에 백악관에 복귀한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 첫 해외 순방지로 또 중동을 정했다.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거래 외교의 연장이다. 트럼프에게 미국의 패권 유지나 지정학 판세만큼 중요한 국익은 구체적인 수치, 즉 달러로 환산되는 이익이다. 가자 및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가 지지부진하고 관세 논란으로 곤란한 상황이다. 중동 외교에서 첫 성과물을 얻었다. 물경 2조달러다.
이번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달라진 중동 외교의 일단을 보여줬다. 협력 분야를 확대했다. 미국과 걸프 국가들은 AI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 협력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걸프 국가들은 자국의 국부 펀드를 활용, 미국 최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파트너가 되어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려 한다.
또 다른 변화는 핵심 파트너의 변화다. 첫 임기 때 트럼프는 네타냐후와 손잡고 중동 정책의 판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빈살만이 부상해 네타냐후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임기 때 트럼프와 가장 가까웠던 지도자는 네타냐후였다. 하지만 지금은 껄끄럽다. 이번 순방지에서 이스라엘이 빠졌다. 네타냐후는 트럼프 취임 후 두 차례 워싱턴을 방문, 정상회담을 한 터라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가자 휴전을 압박하는 트럼프와, 이를 미루는 네타냐후 사이에 묘한 긴장이 있다.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이란 핵 시설 합동 공격 요구도 거부하고 오히려 이란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면에는 트럼프 재선 실패 때 네타냐후가 해외 정상 중 가장 먼저 바이든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던 탓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두 지도자 간 관계와는 별개로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여전히 견고하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반면 빈살만은 트럼프에게 밀착했다. 바이든 임기 내내 각을 세웠고, 재선 실패 후 곤란에 빠졌던 트럼프의 사업을 은연중 도왔다. 그사이 빈살만의 무게감은 확연히 달라졌다. 왕실 내 권력을 공고히 했고, 개혁 정책으로 젊은이와 여성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중동에서의 입지도 높아졌다. 트럼프는 빈살만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휴전 중재를 리야드에 요청했다. 빈살만은 시리아 신정부의 알샤라 대통령을 트럼프에게 소개하며 관계 개선을 요청했다. 트럼프는 중동의 핵심 현안들을 빈살만과 논의하는 모양새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 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를 성공적으로 타격했다. 이란이 주도해 온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거의 무력화했다. 작년 말 이란의 복심이었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까지 붕괴하면서 중동 지정학 구도는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빈살만과 손잡고 소위 ‘부의 축(Axis of the rich)’을 구축하는 중이다. 미국을 설득해 시리아 제재를 해제했고, 이란 핵 협상도 조건부로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보수 연립 정부는 당황하고 있다. 순방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사우디보다 강력한 파트너는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간다. 격변하는 국제정치의 본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번 트럼프의 중동 순방은 미국과 거래해야 하는 우방국들에 일종의 부담을 남겼다. 첫째, 기준을 너무 높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일 달러를 가진 걸프 국가와의 경제 협력 수준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미국과 상대하는 국가들이 양자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면 금전 외의 가치를 찾아내 트럼프를 설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선호다. 거액 투자를 바로 결정하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도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트럼프는 여론과 야당을 달래가며 절차를 밟아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질 법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미국은 가까운 동맹국 지도자도 멀리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편들어 온 이스라엘마저 그렇다. 겉으로는 예우하지만 정작 절실한 이스라엘의 요구들은 받아주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럴진대 다른 우방국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및 참모들과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던 격렬한 설전을 어쩌면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미국이 아니다. 동맹과 민주주의보다 달러를 더 앞세우려는 미국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무겁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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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 추방 불만 LA 시위 확산, 트럼프는 州방위군 투입. 폭력 시위도 무리한 군 투입도 ‘선’은 넘지 않기를.
-팔면봉, 조선일보(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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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료 美의 절반… 빅테크가 中東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짓는 이유다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美 전력 소비 중 데이터센터 비율 2024년 4%서 2030년 12%로 급증
전력망 개선에 7200억달러 들고 송전망 허가에 수년… 美 감당 못해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은 단순한 외교 행보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와 마찬가지로 캐나다나 멕시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UAE 3국을 첫 순방지로 선택했다. 순방지는 동일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과거처럼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를 앞세우는 대신,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오픈AI CEO 샘 올트먼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을 대동하고 최첨단 AI 칩을 들고 왔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중동 국가들은 스스로 번영과 변화를 만들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발언에 3국은 총 2조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로 화답했다. 핵심은 UAE와 사우디에 엔비디아 최첨단 AI 칩 수십만 개를 공급하고, 미국 외 지역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합의였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유지했던 첨단 AI 칩 수출 제한을 전격 철회한 것으로, 미국 외교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준다. 에너지와 안보 중심이던 미·중동 관계가 첨단기술 중심의 실용적 협력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투자 규모는 숨이 막힐 정도다. 사우디는 국영 AI 기업 휴메인을 통해 100억달러 AI 펀드를 조성하고, 최신형 GB300 블랙웰 칩 1만8000개 이상을 구매해 500M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했다. 향후 5년간 수십만 개 칩을 추가해 세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로 확장할 계획이다.
UAE의 계획은 더 파격적이다. 2019년부터 AI 전용 국부 펀드를 운영해온 UAE는 미국 기업이 UAE에 투자하는 만큼 미국 내 AI 산업에 상호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표적 AI 칩인 H100을 100만 개 이상을 확보해 26㎢ 면적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의 스케일은 놀라웠다. 1단계로 2026년까지 10만 개 칩으로 200MW 규모로 시작해 최대 5GW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H100 칩이 2000개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그 스케일을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이 중동과 AI 협력에 나선 배경엔 AI의 막대한 전력 소비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폭증한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4년 178TWh에서 2030년 606TWh로 급증해, 미국 전체 전력 소비 비율이 4%에서 12%로 세 배 늘어난다.
문제는 미국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전력망 업그레이드에만 720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송전 프로젝트는 허가와 건설에 수년이 걸려 AI 확장의 병목이 될 수 있다.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전력 인프라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가진 중동은 완벽한 파트너다.
중동 국가들의 AI 데이터센터 경쟁력은 탁월하다. 첫째,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업용 전력 요금은 kWh당 0.05달러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둘째, 중동이라는 지리적 이점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중동에 글로벌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두면 서비스 제공 시 지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신속한 의사 결정 체계다.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대규모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전통적 석유 수출국이던 중동이 이제 ‘AI의 연료’인 전력 공급자로서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중동의 결합이라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뒤처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모두 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00조원 규모 투자를 통한 AI 칩 확보와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공약을 내놨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정작 AI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지에 대한 구체적 구상은 부족했다. 막연히 대량의 전력을 공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AI 데이터 센터의 변동성을 감당할 수 있는 관련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빠르게 개선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산업용 전력 요금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위협받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은커녕 반도체를 포함한 기존 제조업도 에너지 비용 때문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명확하다. AI 시대에 에너지 안보는 곧 AI 안보이고, 나아가 국가 안보다. 한국이 AI 강국을 꿈꾼다면 에너지 전략부터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전력 산업 체계의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에 엉거주춤하게 머무르고 있는 현재의 전력 산업 구조와 경직된 전력시장으론 에너지 집약적인 AI 산업에 필요한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방안을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대외 관계에 있어서 첨단 기술과 결합한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중동처럼 양측과의 균형 잡힌 협력을 모색하고, 에너지와 기술 자원 확보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다변화해야 한다. 미국은 물론 일본, 대만과의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과 손을 잡은 중동 국가들과도 에너지-AI 협력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동이 ‘AI의 새로운 석유’를 무기로 글로벌 패권 게임에 뛰어든 지금, 한국은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에너지 혁신 없는 AI 혁신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겐 담대한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중동이 AI 강국으로 떠오르는 이유]
‘AI 서버’ 전력 소비량, 기존 서버보다 5~10배 많아
한곳에 대량의 서버 집중… 면적도 훨씬 넓어야
일반적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한다. CPU는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처리한다. 이에 비해 AI는 주로 GPU를 사용한다. 원래 컴퓨터 그래픽 카드용으로 제작된 GPU는 병렬적으로 대량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AI의 특성상 CPU보다는 GPU가 훨씬 적합하다.
AI는 주로 CPU가 아닌 GPU를 사용하는 만큼 AI 데이터 센터 역시 기존의 데이터 센터와 다르다. GPU를 사용하는 AI 서버는 기존 CPU 서버보다 5~10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CPU 서버 8개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에 AI 서버를 넣으면 전력 공급 문제로 2~3개밖에 설치할 수 없다. 대량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AI 전용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AI 데이터 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한다. AI는 작업 과정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서버들이 공간적으로 분산되어 있을 경우 데이터 이동 과정에서의 병목현상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한곳에 대량의 GPU 서버를 집중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한곳에 대량의 GPU 서버가 집중되면 발열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공랭식이 아닌 수랭식 설비가 필요하며, 냉각수가 이동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데이터 센터 내에 구축되어야 한다. 데워진 냉각수를 순환시켜 다시 냉각시켜야 하기 때문에 열교환기를 비롯한 대규모 열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AI 데이터 센터는 전력 소비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별도 전력 공급 설비가 필요하다.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의 경우 0.1초 이내에 수십MW 규모로 전력 부하가 변동된다. 기존 전력망 시설들은 이렇게 급격한 부하 변동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력망에 부담을 주거나 잦은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에너지 저장 시설(ESS)을 설치해서 부하 변동을 완화시켜야 한다. 대규모 ESS 시설과 냉각 시설을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하다. 넓은 땅과 풍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중동 국가들이 AI 산업에 유리한 이유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조선일보(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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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우리 태도에 따라 야누스 되는 AI
AI 기술을 대하는 세 가지 관점
단순 기술 넘어 사회적 존재 된 AI… ‘좋은 AI’는 인류의 미래 여는 열쇠
좋은 인간에 의해 개발-활용돼야… ‘나쁜 AI’는 통제나 살상 도구 위험
창의적이나 예측 불가 ‘이상한 AI’… 세 관점 조화 이뤄야 혜택↑위험↓
《2008년 개봉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재밌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 영화는 황량한 만주 벌판을 배경으로 세 남자가 보물지도를 쫓으며 벌이는 추격전을 담고 있다. 그러나 셋은 성격도, 보물에 접근하는 목적도 서로 다르다. 영화 속에서 보물은 약탈의 수단이자 정의의 보상, 폭주하는 혼돈으로 그려진다.》
챗GPT가 공개된 이후의 인공지능(AI) 역시 이 영화의 설정과 닮았다. 보물지도와 견줄 바도 못될 만큼 오늘날 AI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사회 전반을 바꾸는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AI가 누구에게는 인류의 미래를 여는 열쇠이고, 누구에게는 통제와 독점의 도구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그저 기묘한 존재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회적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AI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있고, 또 AI를 사용하는 우리는 셋 중 어느 캐릭터에 투영되고 있을까?
영화 속 ‘좋은 놈’처럼 ‘좋은 AI’는 인류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서는 정확한 진단과 맞춤형 치료법을 제시해 희귀병을 조기에 발견하게 하고, 교육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문제 해결에도 AI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이런 좋은 AI는 과학기술 진보의 정점이자 공공선을 위한 힘으로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정신노동의 자동화로 ‘주 1일 근무’ 시대가 온다면, AI는 유토피아 사회를 가능케 할 핵심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좋은 AI는 결국 좋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다면 좋은 AI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비영리단체들이 AI를 활용해 빈곤 퇴치나 질병 예방에 앞장서고,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은 더 싸고 유용한 AI를 목표로 삼으며 동시에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줄여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안전한 AI를 만들려고 해야 한다.
반대로 ‘나쁜 AI’는 나쁜 인간에 의해 탄생한다. 현재의 AI는 스스로 의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AI가 나쁜 행동을 보인다면 모두 인간 탓이다. 감시 체계 강화, 개인 정보 침해, 자동화된 살상 무기 등으로 AI를 악용하는 사례가 그렇다. 또한 허위정보 생성이나 딥페이크 기술을 통한 정보 조작은 여론을 조작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일부 국가와 기업이 AI를 통제의 도구로 사용해 독점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할 위험도 존재한다.
영화 속 ‘이상한 놈’처럼 AI는 종종 예측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매우 똑똑해 보이지만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인간이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때로는 감정이 있는 듯하고, 질문을 하면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방향으로 말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이 ‘이상한 AI’는 예측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는 AI의 학습 과정과 결정 방식이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AI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영역이 점차 늘면서 ‘이상한 놈’으로서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AI 전문가들도 때때로 ‘이상한 놈’처럼 비친다. 이들이 어떤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고, 딥페이크를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감정까지 모사하는 AI를 개발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AI를 만들겠다는 일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AI의 뛰어난 코딩 실력에 후배나 제자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해고되거나 취업하기 어려워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AI를 천사로 포장하고, 누군가는 악마처럼 경계하며, 또 누군가는 혼란스러운 존재로 인식한다. 이 세 이미지는 AI를 접하는 사람 저마다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AI가 사회에서 인식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의 기술이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지닌다는 것은 AI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AI는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에 따라 야누스처럼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지금 우리는 AI라는 지도를 손에 쥐고 있다. 영화 속 지도처럼, 그것이 보물로 가는 길이 될지 파멸로 가는 길이 될지는 이 지도를 누가 쥐느냐에 달려 있다. 영화에서 세 주인공이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료로 협력했듯이, AI 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 위해선 세 가지 관점 모두 필요하다. ‘좋은 놈’의 인본주의, ‘나쁜 놈’의 추진력과 효율성, ‘이상한 놈’의 창의성이 상승 효과를 낼 때 우리는 AI의 혜택을 극대화하고 위험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동아일보(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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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민주주의' 제대로 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우리는 6.3 대선 결과에 따른 새 대통의 탄생과 함께 AI 데모크라시(민주주의) 시대를 먼저 열어나가야 한다. 사실 우리는 이번 대선을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데모크라시 시대의 맹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AI 데모크라시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첫째, 지난달 29일 사전 투표일에 투표지가 투표소 밖으로 유출되는 이른바 ‘밥그릇 투표’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투표지 장외 유출은 아날로그 데모크라시 시대와 같은 릴레이 투표나 대리 투표에 악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릴레이 투표는 미국에서 지난 1940년대 초에 일부 나타난 부정 투표 방식이다. 특정 후보 측에서 어느 투표 예정자를 회유하여 미리 특정 후보에게 기표한 투표지를 주면서 투표 때 이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게 한다. 새로 받은 투표지는 기표하지 않은 채 갖고 오면 얼마를 준다. 이 과정이 릴레이식으로 계속된다. 그 20년 후 우리의 1960년 3.15 부정선거 때 한 릴레이 투표의 원조였다. 또 그 65년이나 지난 이번 대선에서도 그런 악몽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하게 했다.
둘째, 오늘날 디지털 데모크라시 시대에 지난 2012년의 댓글 사건이나 2017년의 드루킹 사건 같은 조짐이 다시 나타나 모두를 긴장시켰다. 댓글은 그 자체로서는 투개표를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아니어서 위험성이 덜하기는 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온라인 투개표는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약 250만명의 재외 국민 유권자 투표를 위해서만 e메일이나 팩스 또는 온라인 투표를 이미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각 정당 차원에서는 온라인 투표 등 디지털 투개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이나 총선에서는 하지 않고 있다. 투표 결과가 해킹 등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대선에서 디지털 개표와 손 개표를 병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다가올 AI 데모크라시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AI가 모든 난제에 대해 쾌도난마식으로 단숨에 실시간 해법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알고리즘(Algorithm) 체계를 국가나 최고 권력자가 독점하면 AI로 국민 의사를 좌지우지하고 정책 결정을 자의로 하는 AI 독재가 가능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도 신간 ‘넥서스‘(Nexus)에서 AI 독재가 초래할 수 있는 반유토피아(Distopia)적 현상 사전 대처를 경고한다.
현재 일부에서 실시하는 AI 은행 대출 과정에서 각 개인으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따라 1000가지가 넘는 항목에 대한 가점이나 감점 평가로 대출 여부가 결정된다. 최신형 스마트 폰으로 신청했느냐, 스마트폰의 충전 상태가 17% 이하였는가에 따라 가감이 달라지기까지 한다. 하물며 훨씬 복잡하고 더 큰 나랏일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이 거대한 AI 리바이어던(Leviathan)을 통제할 수 있는 철학과 제도와 과학기술 체계를 먼저 창출해 내는 나라가 곧 다가올 AI 데모크라시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번 우리 대선 결과가 이런 역사적 모멘텀이 됐으면 한다.
-이청수 관정이종환교육재단 고문/전 KBS 해설위원장, 워싱턴총국장, 조선일보(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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