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이었던 나는 왜 북한을 탈출했나]
외교관이었던 나는 왜 북한을 탈출했나
[朝鮮칼럼]
세뇌교육, 강요받은 충성심
반평생을 포로로 살아왔다
불평등한 북한 사회에 염증
北 미래에 대한 비관 깊어
남은 동료 생각하면 난 행운아
北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라도 다하고 싶다
이일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지난해 7월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이 집중 조명한 사건이 있었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치참사로 있다가 대한민국에 온 북한 외교관의 탈북 사건이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나, 이일규다.
내가 대한민국 땅을 밟은 것은 2023년 11월의 평범한 어느 날, 기내에서도, 공항에서도 누구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비밀리에 조용히 입국했다. 몇 개월 조사를 마친 후 사회에 나왔다. 그토록 갈망한 자유를 얻었지만, 50대를 넘긴 중년 나이에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폐쇄된 전체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세뇌 교육과 강요받은 충성심의 포로로 반생 이상을 살아온 나로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했다. 해외 유학, 외교부와 대사관 근무 등 수십 년간 해외와 외교가에서 생활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체험하고 내 나름대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 북한 주민보다는 훨씬 높다고 자부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나의 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지 현실로 깨우쳐 주었다.
나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런대로 잘나가는 부모 덕분으로 열두 살에는 알제리에서, 열여덟 살 때부터는 쿠바에서 거의 5년간 유학했다. 아버지가 권력 싸움의 희생물로 전락하면서 가문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나는 1995년 평양외국어대학에 입학했다.
1995년은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시련이 시작된 해로, 나는 정말 어렵게 대학을 다녔다. 북한의 엘리트 자녀들만 다닌다는 몇 안 되는 명문대인 평양외국어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렵게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체험했기에 대학을 졸업한 후 입직(入職)한 북한 외무성에서 받은 좌절감이 덜했던 것 같다. 간부집 아들, 딸, 사위가 대부분을 이루는 외무성에서 내가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우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 덕분이었던 것 같다.
입직 첫날부터 겨울 난방용 석탄 상차 작업에 동원되었고, 몇 년간은 거의 심부름꾼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동기와 후배들이 먼저 승진하고 해외에 파견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묵묵히 이겨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친 나는 비로서 2009년부터 지역정책국에서 쿠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책임 부원(과장급)’으로 실지 대외 활동을 하는 외교관이 되었다.
2011년 9월 주쿠바 북한 대사관 3등 서기관(대외 직급 1등 서기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임기 4년 4개월 동안 불법 무기를 실어 나르다가 파나마에 억류된 북한 선박 ‘청천강호’ 사건을 담당하여 승소하는 혁혁한 성과도 이룩하였고 그 덕분에 ‘김정은 표창장’도 받았다. 귀국 후에는 외무성 1국(정책종합국) 과장에 이어 아라국(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 담당) 부국장에 임명되어 북한의 대라틴아메리카 외교를 총괄하였다.
이 기간 쿠바 부대통령,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현장에서 지휘하면서 김정은도 만났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조직비서, 박태성 당시 노동당 과학교육 비서,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 등 고위급 인물들의 해외 방문도 주관, 동행하였다. 2019년 3월 나는 주쿠바 북한 대사관 정치참사 겸 당세포비서로 임명되었으며 2023년 11월 탈북 전까지 4년 8개월간 한-쿠 수교 저지, 북-쿠 혈맹 유지‧강화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아 수행하던 중 2023년 반생 이상을 살던 북한을 떠날 결심을 하고 어렵게 탈북에 성공하였다.
내가 탈북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평등한 북한 사회에 대한 염증과 미래에 대한 비관이다. 북한에 남았더라면 승진 일로를 걸을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 어떤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줄타기 인생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 와서 1년간 생활하면서 아쉬운 것은, 좀 더 빨리 자유를 선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북한에 남은 나의 동료들과 지인들을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 민주주의가 보장된 훌륭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을 앞당기는 데 나의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23년 이상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칼럼을 쓰려 한다. 북한이 하는 조치들의 함의와 국제사회의 대북 평가 등에 대해 정확한 실상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또한 과거 북한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의 배경과 진실 등에 대해서도 바로잡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일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조선일보(2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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