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가 바꿔 놓은 美-中 ‘협상의 룰’] [李, 미국 3시-중국 9시.. ]
[희토류가 바꿔 놓은 美-中 ‘협상의 룰’]
[李, 미국 3시-중국 9시 사이에서]
희토류가 바꿔 놓은 美-中 ‘협상의 룰’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을 봉합한 10일 제2차 고위급 무역협상은 겉보기엔 사이좋게 하나씩 주고받은 모양새였다. 중국은 전기차 반도체 스마트폰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했고, 대신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를 풀었다. 하지만 뜯어보면 미국의 판정패다. 희토류 수출 재개는 6개월의 한시적 조치일 뿐이고, 미국은 국가 안보 사항이라 절대 협상 불가라던 기술 수출 통제를 테이블에 올려야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희토류가 협상 규칙을 크게 바꿔 놓았다”고 평가했다.
▷4월 미국이 중국에 145%의 초고율 관세를 물리자 중국은 곧장 보복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금지에 들어갔다.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디스프로슘, 사마륨 등 7종의 중(重)희토류를 틀어막았다. 당장 미국 제조업에서 곡소리가 났다. 전기차 모터가 돌아가지 않아 공장이 문 닫을 위기에 몰렸고, 휴머노이드 로봇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공권 장악의 핵심인 F-35 전투기도 뜨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교역 대상국들에 “최선의 제안을 가져오라”며 고자세를 보였던 미국도 다급해졌다. 협상의 물꼬를 튼 5일 미중 정상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요청해 성사됐다.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사실 이름처럼 희소하진 않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광물과 섞여 있어 분리·정제가 어렵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도 유발한다. 1980년대부터 선진국들이 손을 떼기 시작하자 막대한 매장량을 보유한 데다 환경 규제, 노동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중국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당시 일본을 상대로 처음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섰다. 일본이 단 3일 만에 굴복하면서 전략무기로서 희토류의 힘을 실감했다. 이후 중국은 전략자원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당시도 희토류 수출 금지를 만지작거렸던 중국은 이번에는 참지 않고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내 채굴·가공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호주, 캐나다 등과 함께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맺고 그린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도 희토류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공급망 전환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희토류를 얻으려고 심해와 달까지 노리는 시대다.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공급처 다변화, 희토류 저감·대체 기술 개발 등 공급망 독립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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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미국 3시-중국 9시 사이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우리 외교의 위치를 시계 방향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미국이 3시라면 중국은 9시다. 미중이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미국에 가까우면서 중국과 아주 멀지 않은 1시나 1시 반으로 좌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동맹인 호주와 일본은 2시 반과 2시, 미국 견제용 브릭스와 중국 견제용 쿼드에 참여하는 인도는 12시 반 정도로 봤다. 그가 방향과 함께 강조한 건 일관성이었다. 시침이 크게 왔다 갔다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 쪽을 설득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방향·일관성 다 불안정했던 韓 외교
불행히도 우리 외교는 방향과 일관성 모두 불안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진핑, 푸틴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것은 논쟁적이었다. 12시 방향에 가까웠다. 오래지 않아 한중 관계는 사드 배치로 악화 일로였다. 초장부터 우리 안보 문제라고 당당히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중국에 ‘뒤통수 맞았다’는 비난의 빌미를 줬다. 시침은 크게 흔들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 방중 때 중국에 저자세였다. 사드 갈등을 봉합했지만 미국에 친중 정권이라는 의심을 남겼다. 시침은 다시 12시를 바라봤다. 임기 말 한미 정상회담 성명에 대만, 남중국해 문제가 들어갔다. 중국 견제 동참으로 해석된 이 변화에 중국은 “불장난하지 말라”고 발끈했다. 시침은 다시 크게 흔들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시침을 거의 2시까지 돌렸다. 미국의 중국 포위에 적극 동참했다. 그의 대만 문제 발언에 중국은 “불장난하면 반드시 타 죽는다”며 거칠게 반발했다. 자유 진영의 든든한 일원이 돼야 중국과 당당히 상대할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정작 중국을 대화 상대로 설득할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이 10년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기였다. 그 한복판에서 외교 좌표를 설정해야 할 때였지만 정권마다 한쪽으로 경도되거나 오락가락하며 허약한 실력을 드러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의심이거나 압박이었고, 중국의 반발이거나 보복이었다.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의 처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우리도 ‘외교의 마지노선’을 갖자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일본 중국 순으로 정상 통화를 했다. 한미일 협력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중국 때리기에 앞장서지는 않겠다는 방향이 엿보인다. 그런 이 대통령도 지난날 언행을 되짚어 보면 외교 시침이 크게 요동했다. ‘셰셰’ 발언, 한미일 협력 및 한일 관계에 대한 거친 비판은 그 지향이 12시를 향하는 것으로 비쳤다. 대선 과정에서 변침한 것은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일 테지만 일관된 원칙이 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 각기 상대의 영향력을 밀어내려는 미중 대립의 강한 척력(斥力)은 한국을 각자의 방향으로 끌어당기려는 인력(引力)을 더욱 억세게 만들고 있다. 안미경중은 안 된다는 미국의 경고엔 한국에 안보와 경제 모두 중국 억제 전선에 적극 동참하라는 다그침이 깔렸다. “상호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존중하라”는 시진핑 발언엔 대만 문제 등 중국 때리기에서 벗어나라는 압박이 보인다.
이럴수록 일관성이 중요하다. 1시든 1시 반이든 방향을 정했다면 진폭이 커선 안 된다. 미국 앞에선 미국에 부응하고, 중국 앞에선 중국에 영합하는 임기응변의 줄타기 외교는 불신을 자초한다. 시침을 크게 흔들지 않으려면 특히나 대만, 주한미군 등 민감한 현안마다 원칙을 정교하게 세워야 한다. 그 원칙에 디딘 유연한 외교가 반복될수록 무게감이 생기고, 우리도 ‘여기만큼은 넘지 말라’는 외교의 마지노선이란 걸 가질 수 있다. 그래야 우리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존중받고 설득할 수 있다. 그 무대에서 대통령의 언사 하나하나가 대선 전과 달리 천금같이 무거워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윤완준 논설위원, 동아일보(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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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란 폭격 후 커지는 ‘또 하나의 전쟁’ 공포. “대통령 되면 모든 전쟁 끝”이라던 트럼프의 약속은?
-팔면봉, 조선일보(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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