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인류 최초의 농경민은 누구였을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인류 최초의 농경민은 누구였을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1만4000년 전 묻힌 강아지의 뼈에 보살핌과 치료받은 흔적 남아있어
고고학은 아주 오래된 것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최신의 과학이기도 해요. 인간이 남긴 다양한 물질적 흔적들을 통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문화와 역사, 풍습과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이거든요. 그런데 오늘날의 고고학은 DNA 분석,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같은 최신 기술을 동원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밝혀내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오랫동안 상식처럼 여겼던 고고학의 가설들이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폐기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세계 4대 고대 문명설도 최신의 고고학을 통해 부정되고 있어요. 메소포타미아·인더스·이집트·황하 이렇게 4개의 지역에서만 고대 문명이 발원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인데요. 여기와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문명의 흔적이 너무나도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에요. 현재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최소한 20곳 이상이라는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남아 있다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어요. 이전에는 인간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그냥 멸종해버렸던 것으로 추측했거든요. 그런데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와의 이종교배를 통해 우리에게 DNA를 남긴 고인류가 네안데르탈인 외에 또 있었다는 사실도 최근에 밝혀졌어요. 데니소바인의 존재는 지난 2008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손가락뼈 화석이 발견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어요. 과학자들은 데니소바인이 약 40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에서 갈라져 나와 시베리아와 우랄알타이산맥, 그리고 동남아 지역에서 주로 살다가 3만~5만년 전에 지구상에서 멸종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데니소바인 유전자는 주로 태평양 섬들과 동남아시아 주민들한테서 발견되고 있다고 해요. 불과 16년 전의 발견이 오랫동안 상식처럼 여겨지던 고인류사를 고쳐 쓴 것이죠.
최신 고고학의 성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식이 부족해져 있을 수도 있겠어요. 이 책의 저자는 북방고고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교수예요. 누구라도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매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에요.
독일 베를린의 오베르카셀에서 약 1만4000년 전의 무덤이 발견됐어요. 여기엔 남녀가 묻혀 있었는데, 둘 사이에 19주 정도밖에 안 되는 강아지가 함께 묻혀 있었다고 해요. 뼈에 남은 흔적으로 볼 때 그 강아지는 보살핌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도 밝혀졌어요. 저자는 이를 두고 반려동물, 그중에도 개와의 감정적 교감은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확고했음을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해요. 이 밖에도 외계 문명설 등 고대 문명에 대한 다양한 음모론과 가짜 고고학까지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고고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지를 단번에 이해하도록 만드는 멋진 교양서입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 조선일보(24-08-08)-
_______________
인류 최초의 농경민은 누구였을까
고대인 DNA 분석해보니
'반월지대' 단일 기원설 뒤집혀
터키·이란 등 3곳서 전 세계 전파
기원전 1200년 무렵 이집트 무덤 벽화. 소에 쟁기를 매달아 밭을 가는 모습이다. / 위키미디어
인류사 최대의 사건은 1만년 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수렵 채집 사회에서 한곳에 정착하는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었다.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고대 문명이 탄생했다. 고고학(考古學) 증거들은 지금의 터키, 요르단과 이란에 걸친 낫 모양의 지역, 이른바 '비옥한 반월(半月)지대'에서 처음으로 농업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농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지금까지는 반월 지대에 살았던 한 무리 사람들에서 농업이 시작됐고, 이것이 서쪽으로 유럽, 동쪽으로 아시아에 전달됐다고 생각했다. 최근 고대인에 대한 DNA 연구를 통해 이와 다른 증거들이 잇따라 나왔다.
런던대(UCL) 가렛 헬렌탈 교수가 이끄는 영국·독일·이란 공동연구진은 지난 1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농업이 반월 지대의 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집단에서 기원했음을 고대인의 DNA를 분석해 밝혀냈다"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요르단의 예리코, 이라크의 자르모, 터키의 차탈회익 유적지에서 1만년에서 1만2000년 전 곡식농사와 양·염소의 가축화가 이뤄진 증거들을 찾았다. 헬렌탈 교수팀은 이란 자그로스 산맥의 웨즈메 동굴에서 발굴된 9000년 전 남성과 테페 압둘 호세인 유적지의 1만년 전 사람 유골 3구의 DNA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단단한 귀 뼈에서 원형대로 남아 있는 고대인의 DNA를 찾아냈다. 치아(齒牙)의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했더니 네 사람 모두 곡물을 많이 먹은 흔적이 나왔다. 농경민이었다는 말이다.
분석 결과, 자그로스 산맥에서 농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지금의 이란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유전자가 비슷했다. 즉 농업이 과거 이란 지역에서 시작해 남아시아로 퍼져간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 농업을 전파한 시조(始祖)로 알려진 아나톨리아 반도(지금의 터키) 서부인들과는 유전자가 크게 달랐다. 두 집단은 4만6000~7만7000년 전 같은 수렵 채집인들에게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로 추정된다.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은 인적 교류가 없었다는 말이다. 결국 농업은 동쪽의 고대 이란인과 서쪽의 터키인에서 각각 따로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졌다는 말이 된다.
다른 연구도 농업의 복수 기원설을 뒷받침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라이히 교수 연구진은 지난 2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만2000~1400년 전에 살았던 중동인 44명의 유전자를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와 비교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처음으로 농업을 한 사람들은 같은 시기 이란 자그로스 산맥의 사람들과 유전자가 달랐다. 또 두 집단은 나중에 유럽에 농업을 전파한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인들과도 유전자가 구별됐다. 자그로스 산맥의 간지 다레 유적지에서 발굴된 1만년 전 여성의 유전자 분석 결과도 이와 같았다.
과학자들은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농업의 전파를 세 경로로 추정했다. 지금의 터키인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살던 농경민들은 나중에 유럽으로 이주했고, 이스라엘·요르단 등에 살던 사람들은 남쪽 아프리카 동부로, 그리고 이란 자그로스 산맥에 살던 사람들은 북쪽 유라시아 초원 지대와 동쪽 남아시아로 퍼졌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 농업기술을 배운 것일까, 아니면 독자적으로 농경 기술을 발명했을까. 고고학 증거는 초기 농경민들이 지역마다 다른 도구와 곡물을 남겼다는 점에서 동시 발명설을 뒷받침한다. 반면 초기 농경민들이 석기에 필요한 흑요석(黑曜石)을 교역했다는 점에서 서로 농경 기술을 배웠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사 최대 사건에 대한 수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조선일보(16-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