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역사... ] [우리 시대의 '개돼지'들]
-동아닷컴(24-12-15)-
[대통령 탄핵 역사... 노무현 기각·박근혜 인용, 헌재 심판서 갈려 ]
[우리 시대의 '개돼지'들]
대통령 탄핵 역사... 노무현 기각·박근혜 인용, 헌재 심판서 갈려
盧, 2004년 국회 탄핵안 가결
사유는 '정치 중립 의무 위반'
고건 대행... 63일 후 헌재 결정
朴, 2016년 국회 탄핵안 가결
국정 농단 사건이 발단 돼
황교안 대행... 91일 후 결정
국회의 고위 공무원 탄핵 발의
정부 수립 후 총 49차례
그중 28차례가 윤석열 정부
‘탄핵(彈劾)’은 고위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이를 국회가 소추하여 파면하는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헌법에 근거해 제도화됐다. 제헌 헌법 제46조에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이 직무 수행에 관하여 헌법·법률에 위배된 때엔 국회가 탄핵소추를 결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진 미합중국 헌법을 참고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탄핵은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으로 나뉜다. 탄핵소추권은 국회에 있고 , 탄핵심판은 1987년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담당한다. 9차례 개헌이 이뤄지는 동안 탄핵소추 대상은 바뀌었지만 대통령은 그 대상에서 제외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회에선 총 49차례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이 중 28차례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이번 윤석열 대통령 사례를 포함해 19번이다. 이 가운데 18번은 보수 정부 각료나 판·검사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진보 성향 인사가 탄핵소추당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소추 사유는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2004년 2월, 17대 총선을 두달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사 합동 인터뷰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고, 이후로도 유사한 발언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속적으로 위반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3월12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주도로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 271명 중 193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탄핵 제도에 의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첫 사례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노 대통령은 탄핵소추됐지만, 여론은 이를 주도한 야당에 비우호적이었다.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4월15일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과반인 152석을 얻었다. 헌법재판소는 7차례의 변론, 11차례의 평의(評議)를 거친 뒤 5월14일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노 대통령이 헌법·법률에 위배된 행위를 한건 맞지만 파면을 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국회 탄핵소추에서 헌재의 기각 결정까지 63일이 걸렸다. 노 대통령은 헌재 결정으로 즉시 직무에 복귀해 2008년 2월까지 임기를 채웠다.
두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는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그해 10월 터진 ‘최순실(최서원) 국정 농단 사건’이 발단이 됐다. 박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최씨가 적법 절차 없이 대통령의 중요 의사결정과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의혹이 확산되자 이른바 ‘촛불집회’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에서 “하야를 원한다면 탄핵을 해야할 것”이라며 맞섰다. 결국 민주당, 국민의당 등 당시 야당들은 그해 11월부터 탄핵소추 준비에 나섰다. 여기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동조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12월9일 재적 300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여론은 노 전 대통령 때와 다르게 흘러갔다. 노 전 대통령 때는 탄핵소추를 주도한 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올랐지만, 박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엔 여당(새누리당) 지지율은 반등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1월 새누리당의 비박(非朴)계 의원 31명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분열했다. 새누리당은 그해 2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헌법재판소는 17차례의 변론과 8차례의 평의를 거친 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국회 탄핵소추 이후 91일만이었다. 박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두달 뒤 치러진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양승식 기자, 조선닷컴(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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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개돼지'들
권력에 빌붙는 者, 外勢에 굽실대는 者, 탐욕·음탕한 者, 의리를 버린 者…
역사가는 말한다 "그들이 개돼지"라고
한 공무원 때문에 '개돼지'란 말이 오남용되고 있다. 옛 사관(史官)들에게 '개돼지'는 그렇게 값어치 없는 말이 아니었다. 개 구(狗), 돼지 체(彘). 민중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을 향해 "구체"라고 손가락질했다. "개돼지 같다(有同狗彘)"고 했다. 극단적 탐욕에 대해선 "개돼지만도 못하다(不如狗彘)"고 했다. 당대엔 왕에게 직접 호소했고, 후대엔 실록에 그대로 기록했다.
조선의 사관은 최고 교양인이었다. 그런 이들이 쓴 조선왕조실록의 문장이 이렇게 험한 줄 몰랐다. 조선 중기 고위 관료를 지낸 고맹영(高孟英)에 대한 평가를 읽으면 섬뜩하다. 이름 석 자가 나올 때마다 날을 세운다.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혹평에도 성이 안 찼는지 "쥐와 여우 같은 존재" "구미호"라고 했다. 홍문관 부제학까지 지낸 사대부를 향해 왜 이런 극언을 서슴지 않았을까.
권력에 붙어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다. "노예처럼 권력자를 섬겨 요로(要路)에 기반을 잡았다"고 했다. 고맹영이 요직에 오르자 "식자(識者)들이 침을 뱉었다"고 혹평했다. 같은 권력자에게 줄을 댄 문신 이감(李戡)도 '개돼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권력자는 상전처럼 섬겼다"고 했다. 같은 계파의 이령(李翎)은 "법관 때 음란한 짓을 행하고 외교 사절로 나가 욕심을 채웠다"는 이유로 '개돼지' 대열에 합류했다. 문신 이의(李艤)에 대해선 "권력에 벼룩처럼 달라붙어 재상까지 마구 깔아뭉갰다"는 이유를 들어 역시 '개돼지'로 분류했다.
내부 권력만이 아니다. 바깥 권력에 빌붙는 사람도 사관 눈엔 '개돼지'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중국은 하늘 같은 나라였다. 하지만 중국에 빌붙은 조선인 통역관을 "저잣거리에서 이익을 꾀하는 개돼지만도 못한 자"라고 기록했다. "나라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이롭게 하기만 힘쓰며 조금이라도 뜻에 안 맞는 일이 있으면 몰래 중국 사람에게 부탁해 제 분을 푼다"고 했다. 중국과 반대로 당시 일본은 원수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 국가 대표로 가서 '적정을 탐색하고 의(義)를 지키지 못한' 외교관도 짐승 대접을 받았다. "서계(일본과의 외교 문서)는 거칠었는데도 고치지 못했고 백금(白金)은 명분이 없는데도 물리치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 받아옴으로써 개돼지 같은 모욕을 당했다." 체면을 지키지 못한 죗값이었다.
실록에서 첫 '개돼지' 타이틀을 얻은 인물은 조선 초 무관 유은지(柳殷之)다. 물려받은 권력과 금력으로 음행을 일삼다 일가(一家)가 탄핵당하고 역사의 낙인까지 찍혔다. "행실이 개돼지 같은 일가가 윤리를 멸망시켰다"는 혹평을 받았다. 조선 후기의 뛰어난 문신 오도일(吳道一)이 '사람 짐승'으로 찍힌 건 말년의 음행 탓이다. "취하면 문득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됐고 기생들도 발가벗겨 쫓아다니며 희롱하다가 '사람 짐승' 소리를 들었다"고 낱낱이 기록했다. 사관들은 재산을 탐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그를 때린다. 부(富)를 탐해 '개돼지 같은' 종친과 사돈을 맺었다는 것이다. "같은 당파조차 더럽게 여겼다"고 했다.
의리를 버린 사대부도 '개돼지'로 불렸다. 조선 중기의 문신 송질(宋軼)은 연산군 치하에서 판서에 올랐으나 등을 돌려 반정(反正)공신이 됐다. "임금을 배반한 죄로 논하면 먼저 참(斬)해야 마땅한데 뻔뻔스레 하늘을 속이는 죄를 짓고 있다." 사관은 그를 향해 "자못 개돼지만 한 부끄러움도 없다(殊無犬豕之恥矣)"고 했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통틀어 이들만큼 의리를 버려 '개돼지'가 된 인물이 없다. 이완용·박제순 등 을사오적이다. 구한말 언론인 장지연(張志淵)은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에서 이들을 "개돼지만도 못한(豚犬不若)신하"라고 했다.
역사와 언론의 신랄한 비판에도 권력의 품 안에서 일생 편히 살다 가는 '개돼지'도 있다. 실록엔 이에 대한 사관의 무력감과 탄식도 담겨 있다. "상(임금)이 깨닫지 못하고 이들을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흙더미가 무너지는 위태한 형세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임금을 탓하지 않는다. "아, 간쟁하는 신하 중 원수처럼 악을 미워하며 매가 참새를 쫓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임금에게 대든 자가 있었던가."
실록을 만든 조선 역사가의 눈에 오늘은 어떻게 비칠까. 권력과 금력에 빌붙는 자, 탐욕과 이익에 눈이 먼 자, 음행에 몰두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자…. 실록을 읽으면 연상되는 얼굴이 적지 않다. 권력을 앞세워 여론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세태도 비슷하다. 조선의 역사가라면 이렇게 근심하지 않을까. 이러다 다시 을사오적 같은 '개돼지'가 나타나 나라를 말아먹을지 모른다고.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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