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게으른 독일인'] [독일과 일본의 미래] ....

뚝섬 2025. 6. 2. 06:16

['게으른 독일인']

[독일과 일본의 미래]

[다음 대통령 앞날 험난하다..]

 

 

 

'게으른 독일인'

 

10여 년 전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 위기를 겪을 때, 독일 언론들은 모욕적 보도를 많이 했다. 시사 잡지 슈피겔은 춤추며 노는 그리스인 삽화를 표지에 싣고 ‘게으른 그리스인’이란 제목을 달았다. 포쿠스지(誌)는 그리스 문화의 상징인 밀로의 비너스상이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조롱 사진과 함께 ‘유로화 가족 중 사기꾼’이라고 쏘아 붙였다. 당시 독일인 사이에선 “그리스인, 이탈리아인, 포르투갈인이 술집에 들어가 술을 시킨다. 계산은 누가 할까? 독일인이 한다”는 농담이 유행했다.

 

유럽에서 독일인은 근면·성실 그 자체란 평판을 누려왔다. 그 배경엔 역사적·철학적 뿌리가 있다. 500년 전 마르틴 루터 신부가 종교 개혁을 통해 독일 국민에게 “열심히 일하면 천국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근면·성실”이라고 설파했다. 19세기 말 독일인은 하루 평균 14~16시간씩 일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때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됐지만, 근면한 국민이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1950~60년대 독일은 연평균 8%씩 초고속 성장하며 유럽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다. 독일 정부는 1964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3000만달러 차관을 주며 경제개발의 종잣돈을 제공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 모델을 기반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1990년 동·서독 통일에 따른 천문학적 재정 부담까지 극복하고 유럽 제1의 경제 대국 지위를 유지해 온 독일 경제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다툼은 러시아 천연가스,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해 온 독일 경제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23년(-0.3%)과 2024년(-0.2%)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늪에 빠지자 독일에서 ‘우리가 게을러졌나’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독일인들의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35시간 정도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다. 2023년 기준 연 1341시간으로, 미국(1811시간)보다 470시간 덜 일한다. 노조의 힘이 세 주 4일 근무제가 확산한 데다, 고용률을 끌어올리려 ‘미니잡’이란 단시간 일자리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메르츠 총리가 “마이너스 성장을 극복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면서 법정 노동시간을 ‘하루 최대 8시간’에서 ‘주당 48시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여론은 찬반으로 갈려 있다. 조만간 그리스 언론이 ‘게으른 독일인’ 특집 기사를 낼지도 모르겠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5-06-02)-

______________

 

 

독일과 일본의 미래

 

2차 세계 대전 동맹이자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 수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전쟁과 학살을 저지른 그들은, 전쟁에서는 패배했지만 경제 대국으로 부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오늘날 많은 세계인이 독일과 일본을 가장 본받을 만한 나라로 뽑고 있으니, 역사는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할 뿐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공통점은 여기까지인 듯했다. 여전히 과거사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일본과 달리 독일인들만큼은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교훈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이상한' 길로 이탈할 수 있는 일본과 달리, 독일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평범하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생겨난 정치, 경제, 사회적 믿음이 하나씩 무너져가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21세기에 독일과 일본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근대 유럽 역사는 독일이라는 신흥 국가의 정체성 문제에 대응한 일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영국·프랑스보다 늦게 통일된 독일은 강대국도, 그렇다고 소국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 버렸으니 말이다. 두 번 전쟁을 치르고도 풀리지 않았던 독일 정체성 문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와 유럽연합을 통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잊혀 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케건은 최근 질문한다. 그렇다면 만약 유럽연합이 해체되고 미국이 더 이상 룰 기반의 국제사회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국가와 민족이 다시 자기들의 생존만을 위해 각자 '뛰기 시작한다면?'

 

과거의 죄를 문책하고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미래다. 독일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위해 유럽 사회가 역설적으로 포옹과 화해를 선택했던 것과 같이 일본을 더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화해와 포옹 역시 우리가 사용해야 할 도구 중 하나여야 한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조선일보(19-05-29)-

______________

 

 

다음 대통령 앞날 험난하다..

 

대통령 자리 뜻 뒀다면 과거 족쇄 풀고 미래로 나갈 고민해야 

 

다음 대통령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답(答)은 '글쎄'와 '어렵다' 사이에 있다. 사실은 '어렵다' 쪽에 가깝다. 선거가 치러질지, 치러진다면 언제 치러지고 그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는 판에 무슨 초 치는 소리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돼 나라를 이끌어도 성공하기 쉽지 않으리라고 예측할 상당한 근거가 있다. 대통령이 어려우면 나라가 힘들고 국민 또한 고단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부딪힐 문제 리스트는 이미 나와 있다. 북핵과 미국·중국·일본에서 들이칠 외교 삼각파도, 두 손 동원해도 다 꼽기 힘든 경제 문제, 이제는 국민 심성(
心性) 차원으로 번져가며 회오리가 커가는 양극화 문제 등등…. 정책 선택 방향에 따라 나라가 몇 조각 날지 모를 민감한 문제들이다. 다음 대통령은 탄핵과 선거 그리고 전(前) 대통령 형사재판 과정에서 깊어갈 국민 분열 속에서 이 문제들과 씨름해야 한다.

워터게이트사건 은폐 의혹에 연루된 닉슨은 탄핵 결정 직전 사임했다. 사퇴한 닉슨을 태운 헬리콥터가 백악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사라진 직후 부통령으로 있다 닉슨 자리를 승계한 포드의 취임 연설이 시작됐다. 그는 탄핵 과정에서 빚어진 국민 분열이 '외국과 전쟁에서 입은 상처보다 더 고통스러웠고 국가에 더 큰 위해(
危害)를 끼쳤다'고 했다. 포드는 2주일 후 첫 기자회견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절감했다.

당시는 월남전 마무리,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가라앉는 대형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핵(
核) 군축 문제를 다룰 소련과 정상회담 등 국가적 난제(難題)가 쌓여가던 때였다. 그러나 기자회견 질문 10개 중 9개가 닉슨의 기소(起訴) 여부에 집중됐다. 포드는 훗날 '2억5000만 국민을 위해 써야 할 대통령 집무 시간의 25%가 닉슨 뒤치다꺼리에 허비(虛費)됐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특검 수사·국정 농단 재판·탄핵 심판·대통령 선거·전(前)대통령 형사 처벌 문제가 동시 또는 차례로 등장할 한국 사정은 그보다 몇 배 가파를 것이다.

다음 대통령 머리 위로 몰려오는 먹장구름이 외부(
外部) 요인 탓만은 아니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여섯 차례 대선 승리자 득표율은 최저 38.6%(1987년·노태우) 최고 51.6%(2012년·박근혜)였다. 이 투표자 대비(對比)득표율을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로 환산하면 최저 30.9%(2007년·노무현) 최고 38.8%(2012년·박근혜)였다. 전체 유권자의 6할에서 7할 가까이가 당선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다.

허약한 지지 기반을 딛고선 대통령은 이념이나 계층·지역 간 이해(
利害)관계가 대립하는 문제 해결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시늉만 하다 그치고 말았다. 지난 15년 세월 해답이 나와 있는 그러나 손대기는 힘든 문제들이 '미제(未濟)' 딱지를 달고 책상 서랍 속에 쌓여왔다. 다음 대통령 취임 무렵이면 탄핵 후유증은 더 곪을 것이다그의 앞날이 어둡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성공한 국가 지도자는 자기 국민의 장점과 단점을 꿰뚫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통일 독일의 아버지 아데나워는 총리 시절 "독일인은 육식성(
肉食性) 양(羊)떼 같은 민족이야. 과거의 바퀴를 다시 굴려선 안 된다고 거듭 일깨워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근면하고 질서를 지키는 독일인 기질(氣質)을 높이 사고 늘 북돋았다. 그러면서도 일순간 과격(過激)으로 치닫던 독일 역사의 일면(一面)을 항상 경계했다.

사냥꾼이 사냥감의 약점(
弱點)을 노려 덫을 놓듯 정치인은 국민 입맛을 돋우는 미끼를 공약(公約)으로 매단다. 공약을 보면 정치인들이 무엇을 자기 국민의 약점으로 파악하고 이용하는지가 드러난다. 친일(親日)·독재·기득권 세력을 대청소하겠다는 문재인 전(前)대표 선거 깃발도 그렇다. 독립한 지 70년이 된 나라, 발전의 기세(氣勢)가 꺾였다곤 해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간판 공약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한국인 기질 속에는 과거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걸 북돋아야 할 국민의 장점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설사 이런 공약을 밀고 나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대통령 직무(職務)의 첫 삽도 뜨기 전에 더 큰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들 것이다.

딱히 문재인씨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 자리에 뜻을 둔 인물 그 가운데서도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 인물이라면, 나라와 국민이 과거의 족쇄를 풀고 미래로 나아갈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 대통령이 자신의 형편과 나라 상황에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린 상황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그것이 다음 대통령 스스로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17-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