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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장의 전두환 사진] .... [삼지연 관현악단]

뚝섬 2025. 2. 15. 07:04

[중국 축구장의 전두환 사진] 

[북한 선수 10명에 악단 140명... 이상하지 않은가?] 

[삼지연 관현악단]

 

 

 

중국 축구장의 전두환 사진

 

유튜브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미국 대학 농구 경기에서 자유투를 얻은 선수가 슛을 준비하자 상대팀 치어리더들이 골대 밑에 도열해 온갖 선정적 자세로 춤을 췄다. 골대 뒤에 앉아 있던 응원단도 정신 사나운 얼룩말 무늬 대형 천을 마구 흔들었다. 이런 훼방 탓인지 슛은 빗나갔다. 상대팀의 이날 자유투 성공률은 평소의 80%에서 60%로 주저앉았다. 그런데도 심판은 반칙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규정도 없겠지만 응원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격 모독, 신체 위협, 인종차별 같은 저질 응원이나 야유는 문제가 된다. 2006년 이탈리아 축구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팀 응원석에서 원숭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랬다가는 심각한 징계 대상이다. 국제축구연맹은 2002년부터 인종차별 행위를 징계했고 2019년부턴 2만달러의 벌금과 무관중 경기, 승점 감점, 대회 퇴출 등으로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지난 11일 중국에서 열린 축구대회에서 광주FC와 맞붙은 중국팀의 일부 팬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을 꺼내 들었다가 제지당했다. 이웃 나라의 비극적 사건을 이용해 상대팀 선수들을 자극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비신사적 응원이 처음도 아니다. 재작년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중전 때는 일부 중국 관중이 손흥민과 이강인의 얼굴에 레이저 불빛을 쐈다. 레이저 빔은 선수의 시력을 손상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국내 일부 축구 팬 사이에서 “우리도 중국 천안문 사태 당시 탱크 사진으로 응수하자”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도 잘못된 응원전을 펼친 사례가 적지 않으니 우리 응원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도 나온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 국내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 때 일부 한국 팬이 ‘일본의 대지진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적이 있었다.

 

10년 전 스페인에서 뛰던 흑인 축구 선수에게 관중이 바나나를 던지며 조롱한 적이 있다. 선수는 흥분하지 않고 바나나를 집어 들어 먹은 뒤 다시 경기에 임했고 동료들도 소셜미디어에 바나나를 들고 찍은 ‘바나나 인증샷’으로 점잖게 항의했다. 응원은 선수와 관객 모두에게 이롭다. 응원 함성은 선수의 남성 호르몬 수치를 70%까지 끌어올려 경기를 더욱 박진감 있게 만든다고 한다. 저질 응원이 이런 즐거움을 줄 리가 없다. 응원에도 정정당당히 겨루는 페어 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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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수 10명에 악단 140명… 이상하지 않은가?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통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자고 했다
그에게 '민족의 위상'은 물론 '핵강국' 북한이다
 

 

올림픽 때마다 '앰부시(ambush·매복) 마케팅' 논란이 일어난다. 규제를 살짝 피한 광고로 올림픽 후원자가 비싼 돈을 지급하고 누리는 홍보 효과에 올라타는 것이다. 한·일월드컵 때 이 방법으로 큰 재미를 본 SKT는 이골이 난 듯 평창올림픽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엔 족탈불급의 강적을 만났다. 북한이다.

이 나라는 눈치도 안 본다. 편승 정도가 아니라 주인 자리에 올라탈 태세다. 상대가 만만하기 때문이다. 먼저 태극기를 국적 불명의 한반도기로 바꿔 주최국 상징을 지웠다. 북한이 요구하기도 전에 한국이 알아서 했다. 중국 위력에 국기를 들지 못하는 대만 신세다. 정부는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 때도 그랬다"며 별일 아니라고 한다. 비교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나. 세계 32억명이 보는 동계올림픽이다.
 


북한이 보낼 수 있는 올림픽 선수는 10명이 안 된다. 그런데 '삼지연 관현악단'이란 악단을 140명이나 보내기로 했다. 이름이 비슷한 '삼지연악단'이 북한에 있다. 김정일·김정은 체제 선전곡을 부르고 연주하는 악단이라고 한다. 여기에 유명한 '모란봉악단'을 섞어 악단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모란봉악단 대표곡이 가관이다. '자나깨나 원수님 생각' '우리의 총창 우에 평화가 있다' '그이 없인 못살아'. 여기서 '그이'는 물론 '김정은 원수님'을 뜻한다. 그들이 한국에서 무슨 공연을 할지 깜깜하다.

'미녀' 수식어를 버릇처럼 붙이는 북한 여자 응원단도 또 들이닥칠 태세다. 이들이 배바지를 입고 펼치는 딱따기 응원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하지만 "하늘의 태양이신 수령님 영상(사진)을 썩은 통나무에 매달 수 있느냐"며 광분하던 집단 히스테리는 정말 괴로운 광경이었다. 북한에선 선수나 악단이나 응원단이나 모두 '수령님 명령을 수행하는 혁명가(革命家)'라고 한다.

북한은 한국을 잘 부린다. 2002년 연평해전 석 달 뒤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여자 응원단 288명을 보냈다. 북한 TV는 "평양의 미녀 응원단이 남녘을 사로잡았다"고 떠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청년 6명이 산화한 참수리호 비극을 누구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평양 미녀에게 홀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때 기가 살았는지 이듬해 다시 들이닥친 북한 응원단은 현수막 집단 히스테리까지 일으켰다. 이번엔 어떤 방식으로 '북핵(北核)'을 잊게 할까.

한국에서 열린 세계적 스포츠 잔치는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은 여객기를 떨어뜨렸다. 114명이 사라졌다. 월드컵 땐 연평해전을 일으켜 축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과거 두 차례 모두 폭력으로 답했다. 그것도 잔인무도한 폭력이었다. 세 번째도 핵으로 위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소를 보냈다면 일단 저의(底意)를 의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사일을 쏴 잔치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는 것만도 황공하다. 자진해 국기(國旗)를 떼겠다더니 수령님 찬가도 눈감아줄 판국이다. 이게 '핵(核) 인질'이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의도를 정확하게 밝혔다. 2017년을 핵 강국을 달성한 해로 정했다. 2018년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해로 규정했다. '민족의 위상'이 한국의 위상일 리 없다. 핵 강국 북한의 위상이다. 이를 과시하는 기회로 김정은이 거론한 이벤트가 '공화국 창건 70돌'과 '남쪽의 겨울철 올림픽'이다. 남의 올림픽에 올라타 핵 강국의 위상을 과시하겠다는 소리다. 변변한 선수가 없으니 '미녀'를 동원한다. 역사에 남을 '앰부시 마케팅'이라 할 만하다. 중학생이 들어도 알아들을 이런 문맥(文脈)을 정부만 못 읽는다. 화해의 신호라고 한다.

악몽은 북한의 정상이 평창에 오는 것이다. 정권 일부에선 현실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극적이다. 가능성이 작지만 실현되면 민족의 일대 이벤트로 포장돼 많은 사람이 환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다르다.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나라, 사람 목숨을 개털처럼 여기는 나라다. 그 정상이 우뚝 선 올림픽에서 세상은 무엇을 느낄까. 1936년 열린 베를린올림픽, 1940년 열릴 뻔한 도쿄올림픽을 떠올리면 된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선수 10명과 코치 몇 명이면 족하다. 수상한 악단, 괴상한 응원단, 우리 청춘의 꿈을 빼앗는 낙하산 선수는 제발 오지 마라. 평창에서 열리는 잔치는 쇼가 아니라 올림픽이다.
 

 

-선우정 사회부장, 조선일보(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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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 관현악단 

 

2012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북한 은하수관현악단이 연주회를 가졌다. 정명훈이 지휘한 라디오 프랑스 필과 은하수관현악단의 브람스 교향곡 1번 합동 연주가 메인이었다. 하지만 은하수관현악단 지휘자 리명일·윤범주가 이끈 1부 연주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요와 북한 가요를 편곡한 관현악 네 곡이 연주됐다. 해금과 가야금·장구·꽹과리 같은 전통 개량 악기를 서양 악기와 섞은 '주체 음악'이었다. '민족 악기와 서양 악기의 배합'은 김정일이 주창한 것이다. 프랑스 언론은 이날 공연을 '남북 관계를 음악으로 다시 잇는 사건'이라고 치켜세웠다.

▶은하수관현악단 악장은 서른 갓 넘은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었다. 그가 쓴 악기도 화제였다. 18세기 최고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였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줘도 살 수 없는 귀한 악기를 그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이듬해 뜻밖의 뉴스가 나왔다. 문경진이 '풍기문란' 혐의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기관총으로 처형당했다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북한이 보낸다는 '삼지연관현악단'의 실체가 오리무중이다. 만수대예술단 산하 '삼지연악단'이 관현악단으로 확대된 건지, 우리 걸그룹 같은 모란봉악단 비슷한 것을 포함시켜 만든 프로젝트성 단체인지 불분명하다. 어쨌든 정명훈이 "기량이 뛰어나다"고 했던 은하수관현악단급(級)은 아닌 것 같다. 북은 공연 내용에 대해 "통일 분위기에 맞고, 남북이 잘 아는 민요, 세계 명곡 등으로 구성하겠다"고만 밝혔다.

 

▶"음악은 나의 첫사랑이고 영원한 길동무이며 혁명과 건설의 무기다." 김정일에게 음악은 '혁명의 무기'였다. 이는 김정은 체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 노동신문은 작년 8월 1면에 '괌 포위사격'을 거론하며 '어머니 당에 드리는 노래' 악보와 김정은 친필서명을 실었다. 북한에서 음악은 정치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다.

▶은하수관현악단이 2012년 파리 공연 때 연주한 관현악 중 '비날론 삼천리' '매혹'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북한 가요를 편곡한 것이었다. '기악 작품은 인민이 널리 부르는 노래를 기반으로 창작해야 한다'는 김정일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번 '삼지연관현악단'엔 오케스트라 80명에 노래와 춤을 맡은 '예술단' 60명까지 따라온다. 우리가 '북에서 온 미녀 응원단'을 화제 삼을 바로 그 시기에 북은 핵·미사일을 만들고 있었다. 북 공연단의 풍악 안에 감춰진 비수를 봐야 할 때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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