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커진 걸까?] [로봇 과로사] [전류·압력으로 조절하는.. ]
[뇌는 왜 커진 걸까? ]
[로봇 과로사]
[전류·압력으로 조절하는 인공 근육... ]
뇌는 왜 커진 걸까?
[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지금 이 순간 주변을 한번 살펴보자. 물론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이 글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독자들은 아마 집, 카페, 회사 같은 실내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인간이 상상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로 가득한 현대사회. 약 1만년 전 정착하기 시작한 인류는 문명과 기술을 만들어냈고, 어느덧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인간을 통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리모델링되어 버린 지구. 그런데 사실 우리는 지구를 우리 마음대로 바꾸어 놓아도 된다는 허락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지구 생명체 중 가장 똑똑하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지구 소유권을 넘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질문을 할 수 있다. 지구 모든 생명체 중 몸 크기에 비해 가장 큰 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왜 이렇게 커진 걸까? 처음부터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뇌가 커지지는 않았을 거다. 불을 발견하고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뇌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혼자서는 절대 생존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이기에, 우리 조상들은 협업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더 큰 뇌를 기반으로 더 효율적으로 소통과 협업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뇌가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호모 하빌리스,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 시절부터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는지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인간의 뇌가 최근 다시 작아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만큼은 과학계에서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큰 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문명과 기술 덕분에 더 이상 뇌를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인류 문명 최고의 기술인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있는 오늘날, 바로 그런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한 “자연지능”이 다시 퇴보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현상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조선일보(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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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과로사
“삼가 고철의 명복을 빕니다.” 최근 경북 구미 시청의 ‘1호 로봇 주무관’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파손되자 네티즌들 사이에 ‘로봇 과로사’라는 말이 번졌다. 구미시는 작년 8월에 행정 서비스 로봇을 도입해 공무원증도 붙여주고 임명식까지 했다. 우편물과 행정 서류 등을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입 1년도 안 돼 계단에서 추락해 부서지니 “일이 너무 힘들었나 보다”라며 감정이입을 한 댓글이 많이 붙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물류 창고에 ‘채용’돼 시험 운행 중인 2족 보행 로봇 ‘디지트’는 ‘과로사 로봇’으로 일약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3월 시카고에서 열린 물류 박람회에서 20시간 연속 작동하다 픽 쓰러지는 영상 때문이다. 충전만 하면 벌떡 일어나는 로봇인데도 ‘측은하다’는 동정론을 받았다. 로봇도 과로하면 쓰러지는데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냐며 많은 이가 감정을 투사했다.
▶2015년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4족 보행 로봇 ‘스폿’을 공개하면서 발로 강하게 밀치는 테스트 영상을 올렸다. 로봇 기술력을 자랑하는 영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로봇 학대’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호주에서는 술 취한 여성이 로봇 개 ‘스탬피’를 걷어찬 영상에 공개됐다. 일부 네티즌이 ‘스탬피를 위한 정의’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그 여성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야당 대표가 로봇 박람회에서 4족 보행 로봇을 뒤집었다가 로봇 학대 논란이 일어났다. 그는 “(나를) 난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로봇일 뿐인데도 일본에서는 반려견 로봇 ‘아이보’의 합동 장례식까지 열린다. 절에서 문상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지 스님이 불경까지 낭독한다. 아이보는 일본 소니가 1999년 출시해 2006년 생산 중단한 반려견 로봇이다. 15만대가량 팔렸는데 수리마저 중단되자 아이보 주인들이 낙담했다. 외로운 노인들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소니 출신 엔지니어가 수리 회사를 차리고 전국에서 고장난 아이보를 기증받아 그 부품으로 다른 아이보를 수리한다. 더 이상 작동 안 하는 아이보를 해체하기 전에 2015년부터 장례식을 치러주기 시작했다. 로봇이 아니라 아이보에 의지해 외롭게 살아온 사람들을 위로하는 절차다.
▶요즘 주부들 사이에 “우리 집 이모님”으로 불리는 존재는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다. 가사 도우미처럼 집안일을 척척 해주기 때문이다. 로봇도, 가전제품도 놀랍게 똑똑해지니 절로 의인화되는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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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근육
수천 개의 근세포로 구성된 근육, 부드러운 동작·강력한 힘 만들어
美, 근육 구조 이용한 인공 근육 개발… 모터 없이 물건 들어 올리는 데 성공
로봇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팔이나 다리·손가락이 다 갖춰져 있는데도 어딘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움직여요. 로봇은 인간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사람처럼 관절(뼈와 뼈를 연결하는 부분)을 붙들고 있는 '근육'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근육 때문에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고, 필요할 때 강한 힘을 낼 수 있어요. 하지만 로봇은 모터나 피스톤 같은 기계 장치로 힘을 얻어 작동하기 때문에 딱딱하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데 최근 로봇을 비롯한 기계 장치에 '인공 근육'을 적용하는 첨단 기술이 등장하고 있답니다. 인공 근육 기술이 완성되면 로봇도 진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날이 올지 몰라요.
◇수축하며 힘을 내는 '근육'
근육은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움직임을 책임지는 기관이에요. 근육세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힘줄이 근육이지요. 뇌에서 명령을 받아서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골격근(骨格筋)'과 사람 의지에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내장근(內臟筋)'이 있어요. 골격근은 피부 바로 밑에 있고 뼈와 연결돼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해주지요. 내장근은 심장이 뛰거나 위 같은 장기가 운동하도록 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요.
우리가 팔이나 다리,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골격근 덕분이랍니다. 이런 근육은 가로무늬를 가지고 있어서 '가로무늬근'이라고 불러요. 하나의 근육은 여러 근육세포가 모인 '근육 섬유 다발'인데요. 근육세포가 마치 실처럼 길게 생겼기 때문에 근육 섬유라고 하는 거예요.
근육 섬유 한 가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1000여 개의 미세근육으로 이뤄진 걸 확인할 수 있어요. 각각의 미세근육은 또다시 '액틴'과 '마이오신'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지요. 액틴은 상대적으로 가늘고 밝은 색깔이어서 '가는 근육 미세섬유'라 하고, 마이오신은 두께가 굵고 어두워서 '굵은 근육 미세섬유'라 불러요. 둘은 서로 번갈아 교차 배열돼 있는데, 우리 뇌에서 '움직여'라는 신호를 보내면 액틴이 마이오신 중앙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면서 근육의 길이가 짧아지고 근육이 수축하는 거랍니다. 이때 물건을 들거나 움직이는 힘이 생기는 거지요.
◇사람 근육을 닮아가는 '인공 근육'
액틴이나 마이오신 같은 단백질이 없더라도 근육이 오므라들게 하거나 늘어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근육의 구조'를 이용하는 것인데요. 최근 과학자들이 개발 중인 '인공 근육'도 이런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예요.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크리스토프 케플링거 교수팀은 최근 유력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사람의 근육처럼 부드럽고 탄력 있게 움직이는 '소프트 인공 근육'을 개발했다고 밝혔어요.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 근육은 두께가 0.5㎝도 안 되는 얇은 고무 껍질 안에 액체를 가득 채운 모습이에요. 이 인공 근육의 양 끝에 양(+)극과 음(-)극을 연결하고 전류를 흘려주면 양극에서 음극 방향으로 전기장이 생기면서 액체를 가장자리로 밀어내요. 이때 고무 껍질 중앙은 쪼그라들면서 마치 사람의 근육이 오므라드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 된답니다. 반대로 전류를 끊으면 액체가 다시 가장자리에서 흘러나와 고무 껍질 안을 채우기 때문에 원래 모양대로 돌아와요.
실제 연구팀은 소프트 인공 근육을 장착한 로봇 손이 작은 라즈베리 한 알을 전혀 망가뜨리지 않고 집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실험에 성공했어요. 또 전압을 좀 더 높이면 인공 근육을 더 많이 변형시키고 더 강력한 힘을 내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어요.
지난해 말 미국 MIT와 하버드대에서도 인상적인 인공 근육을 개발했어요. 종이접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기술이었는데요. 공기의 압력을 이용해 움직이는 이 인공 근육은 자기 무게보다 최대 1000배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셌답니다.
이 인공 근육은 금속과 아크릴·고무 등 여러 가지 소재로 일정한 뼈대를 만들고, 이 뼈대를 피부 역할을 해주는 플라스틱이나 섬유 주머니에 밀봉한 것이에요. 연구진이 주머니 안쪽을 진공 상태로 만들면 뼈대에 맞춰 피부가 종이처럼 구겨져 들어가면서 움직이는 방식이랍니다. 사람이 손을 대거나 외부 자극을 주지 않아도 뼈대 모양에 맞춰 접히고 늘어나는 모습이 마치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낸 거죠.
◇사람 장기 모방한 '인공 장기' 개발 활발
인간의 신체 기관을 모방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기술은 인공 근육 외에도 많아요. 대표적인 게 '인공 장기'예요.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장기가 망가진 환자들은 새로운 장기를 이식받아야 살 수 있지만, 기증자가 적은 데다 인체에서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장기이식은 그리 쉽지 않답니다. 그래서 환자 몸에서 뽑아낸 줄기세포(여러 신체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를 이용해 필요한 장기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요.
3D(3차원) 프린터로 살아있는 세포를 원하는 형태로 찍어내는 '바이오 프린팅 인공장기' 기술도 있는데요. 인공 다리나 인공 손, 관절 등을 넘어 간이나 혈관을 찍어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답니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 등에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심장을 인쇄하는 실험에 성공했어요.
이처럼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로봇 기술도, 우리 몸을 더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생명 과학 기술도 모두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요.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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