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타서 쓰는 피? 인공 혈액 개발 각축전] [O형 혈액은 왜.. ]
[물에 타서 쓰는 피? 인공 혈액 개발 각축전]
[O형 혈액은 왜 늘 부족한가]
물에 타서 쓰는 피? 인공 혈액 개발 각축전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개발 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실온에서 보관 가능한 분말 형태의 인공 혈액을 개발하는 데 지난해 4600만 달러(약 634억 원)를 지원했다. 군사용 신기술을 연구하는 DARPA가 인공 혈액에 투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쟁뿐만 아니라 대형 재난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대비해 혈액의 안정적인 보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2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혈액 보유량이 급감해 국가 혈액 위기를 선포한 적이 있다.
▷DARPA가 투자한 프로젝트는 산소를 구석구석 나르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 대체재를 만드는 것이다. ‘에리스로머(Erythromer)’라고 하는데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해 지질 막을 씌운 입자다. 혈액은 최장 42일간 냉장 보관이 가능하지만, 동결 건조된 분말인 에리스로머는 2년간 실온 보관이 가능하다. 냉장 시스템이 없어도 되고, 식염수와 섞어 쓰므로 보관과 배달이 용이하다. 혈액형과 상관없이 투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일본에서도 최근 에리스로머와 같은 원리의 인공 혈액이 개발됐다. 나라현립 의과대 교수팀은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진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한 뒤 역시 지질 막으로 씌운 입자를 만들었다. 폐혈액을 활용하고 혈액 보관 기간이 15∼16배 늘어난다는 점에서 혈액 부족을 해결할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헤모글로빈을 대체한 인공 혈액은 산소 공급만 가능한 ‘반쪽’ 혈액이다. 몸속에서 진짜 혈액이 충분히 생성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인공 장기보다 인공 혈액 개발이 뒤처진 것은 혈액의 구성이 그만큼 복잡해서다. 혈액의 절반은 액체인 혈장, 절반은 고체인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진짜 혈액을 모방한 인공 혈액은 추출한 줄기세포로 적혈구를 배양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2022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이 방법으로 건강한 성인 2명에게 찻숟가락 정도의 수혈에 성공한 적이 있다.
▷선진국은 저출산 고령화로, 저개발국은 헌혈 인프라 부족으로 전 세계 국가의 60%가 만성적으로 혈액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인공 혈액 연구는 임상실험 전 단계로 10년 이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의 잠재적인 독성을 해결했는지가 상용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범부처 ‘세포 기반 인공 혈액 제조 사업’이 출범하는 등 국내서도 인공 혈액 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인공 혈액 개발에 성공한다면 장기 이식용 혈액, 항암제용 혈액 등 맞춤형 혈액이나 희귀 혈액 생산까지도 가능해진다. 보건 안보로 접근해도, 인공 혈액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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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 혈액은 왜 늘 부족한가
저출산에 헌혈자도 감소, 수급 불균형 더 악화 우려
서울 광화문 헌혈의 집에 붙어 있는 안내문은 아우성 같았다. 'O형 급구(急求)! A형 급구!'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혈액 보유량은 O형 3.2일분, A형 3.6일분, B형 4.6일분, AB형 5.4일분이다. 적정 보유량은 5일분 이상. AB형을 빼곤 모든 피가 부족한 셈이다.
O형 재고는 사실상 1년 내내 경고등이 깜빡인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다. 헌혈의 집 간호사는 "O형이시군요?" 반기며 "전혈을 400mL 하겠다"고 말했다. 적혈구·백혈구·혈장·혈소판 등 혈액의 모든 성분을 뽑겠다는 뜻이다. 채혈하는 동안 고르라며 사은품 목록을 건넸다.
한국 사람은 A형이 34%로 가장 많다. O형 28%, B형 27%, AB형 11% 순이다. 연간 헌혈자 약 300만명의 혈액형 분포도 이 비율과 비슷하다. 그런데 왜 O형이 A형보다 더 만성적으로 모자랄까? O형인 사람은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 더 자주 빠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O형 혈액 부족'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현옥 교수는 "보건 당국과 학계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도 "O형 피가 가장 많이 출고되는데, 모든 혈액형에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출혈이 심한 환자가 들어올 경우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은 없다. 이런 응급 수혈에선 일단 O형 피를 투입한다. 김 교수는 "농축 적혈구 보존 기간은 채혈 후 35일이고 반품(환불)이 안 된다. 작은 병원들은 그래서 O형 피를 비축해두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효 기간이 지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쓰임새가 많은 O형 혈액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가 혈액형별 수급 불균형에 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진 못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21일 "응급 환자에게 수혈할 때 O형을 준다는 점, 혈액형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장기를 이식하는 이형 이식 수술이 증가(2008년 19건→2017년 544건)한 점 등이 O형 혈액 수요가 많은 배경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저출산·고령화는 혈액 수급 전망을 더 어둡게 한다. 만 16~69세면 헌혈이 가능하지만, 국내 헌혈자는 70% 이상이 10~20대일 만큼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수혈이 필요한 노인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헌혈 가능한 고교생·대학생·군인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022년엔 필요한 혈액의 77%만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수급 불균형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헌혈 실적은 2015년 308만여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고 2016년 286만여건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292만여건으로 약간 회복됐다. 류춘배 적십자사 혈액진흥팀장은 "초·중·고교 헌혈 교육을 강화하고 예약 헌혈제 확대, 헌혈 약정 단체 관리 같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혈자에 대한 포상도 높일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은 헌혈자 분포가 10~20대와 40대, 두 그룹에서 높게 나타나는 낙타 등 모양"이라며 "우리나라도 중장년을 헌혈로 이끌어 혈액 수급의 위험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1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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