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직원들이 거둔 '겨자씨의 기적'] [고수와 하수] ....
[젊은 직원들이 거둔 '겨자씨의 기적']
[고수와 하수]
[브랜드도 디자인도 거품을 뺀 소박함]
젊은 직원들이 거둔 '겨자씨의 기적'
화장품 팔아 4.7조 신화
대기업 이름 연연 안 하고
中企 브랜드 적극 껴안아
젊은 그들이 위기 뚫었다
어떤 위기는 기회가 된다. 많은 기업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되짚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1999년 서울 신사동에 첫 매장을 연 지 25년 된 올리브영과 1997년 1호점을 낸 다이소 얘기다.
업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말 올리브영은 매출 4조7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추세라면 내년엔 연 매출 5조원을 넘길 듯하다. 매출로는 CJ그룹 계열사 중 제일제당·대한통운 다음가는 3위 규모다. 올해 영업이익은 대한통운보다도 클 수 있다고 업계는 전망한다. “고작 1~2만원짜리 화장품 모아서 판다”는 말을 듣던 작은 계열사가 눈 비비고 보니 최강자가 된 것이다.
결이 다른 업체이긴 하지만 다이소의 성공 스토리도 있다. ‘1000원짜리 상품’을 파는 곳으로 알려졌던 이 업체는 작년 매출 3조원을 넘겼고 올해는 4조원을 향해 간다.
두 회사의 시작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도약을 위해선 오래 참고 버텨야 했다. 올리브영의 경우엔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까진 17년이나 걸렸다. ‘접어야 한다’ ‘망할 것이다’란 말도 중간중간 무성했던 17년이었다. 이후부턴 가속이 붙었다. 2조원을 넘기기까지 5년 정도 걸렸고, 3조원이 되는 데는 2년이 채 안 걸렸다. 1년 후엔 다시 4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다이소도 매출 1조원을 넘기기까지 꼭 17년이 걸렸다. 1000원~5000원짜리 제품을 연간 8억개 넘게 팔면서 달성한 기록이다.
강자가 되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올리브영의 경우엔 2009년쯤 날벼락을 맞았다. 당시 국내 유명 화장품 대기업이 자사 로드숍을 키워야 한다며 올리브영에 물건을 넣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매장에서 팔 물건이 없을 지경이었다. 올리브영은 이때부터 말 그대로 ‘살아남으려고’ 중소기업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판매 채널 없고 자본력 부족한 중소기업 브랜드들을 찾아다녔고 이들과의 협업을 강화했다. 역설적으로 올리브영의 경쟁력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다.
메디힐, 닥터지 같은 중소기업 브랜드가 ‘메가히트’를 쳤다. 대기업 화장품보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중소기업 제품에 소비자가 열광했고, 덕분에 올리브영과 중소기업은 동시에 몸집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올리브영이 현재 협업하는 브랜드는 2300여 개 정도. 이 중 80%가 중소기업 상품이다. 지난해엔 클리오 같은 중소기업 제품은 올리브영을 통해 연 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
다이소도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와 손잡고 움직인다. 국산 제품은 중국 같은 해외 제품보다 단가가 비싼 편이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비율을 줄이지 않았다. K제품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내 중소기업들과 손잡을 수 있었던 데는 젊은 직원들 역할이 컸다. 대기업 이름에만 연연하지 않고 품질과 아이디어가 좋으면 과감하게 들여올 줄 아는 20~30대 직원들이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올리브영의 전 사 평균 연령은 32세(정직원 기준), 상품 기획자 평균 연령은 29세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젊은 20~30대 직원들이 중소기업과 협업을 강화하며 새 시장을 뚫어냈다”고 했다. 대기업 우선주의, 기존 손님을 붙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지 않고 새 고객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유연함이 ‘비즈니스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던 피터 드러커 말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저렴한 상품을 주로 팔고” “어린 직원들이 일하며” “중소기업 제품을 취급하던” 이 회사들은 이제 그랬기에 더 막강해졌다. 씨앗 중에서는 가장 작다는 겨자씨로 거둔 기적. 어떤 ‘괄목상대’와 ‘전화위복’은 그렇게 시작됐다.
-송혜진 산업부 차장, 조선일보(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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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와 하수
“하수는 어렵고 복잡하다
고수는 쉽고 단순하다”
모든 역사를 통해 단순함은 복잡함을 이겨왔다. 애플과 이케아, 무지(MUJI)가 그랬고,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그랬다.
초대박 신제품은 늘 조작이 쉽고 단순한 제품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함(simplicity)이란 경지는 말처럼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이에 비해 소위 먹물 계층은 말이나 글이 대개 어렵고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재미는 아예 기대 난망이다.
아인슈타인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충분히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진짜 고수의 세 가지 특징은 가장 쉽게 말하고, 복잡한 걸 단순하게 처리하며, 엄청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조선일보(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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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도 디자인도 거품을 뺀 소박함
노브랜드(No Brand)가 주목받고 있다. 상품에 특정 브랜드를 붙이는 대신, 쌀·비누·우유 등 일반적인 제품 이름과 법률로 정해진 사항만을 기재하는 노브랜드 상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노브랜드 업계의 원조 격인 무인양품(無印良品)은 1980년 세이유 백화점이 40가지 저가 생활용품과 식품에 MUJI(일본어로 노브랜드)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1983년 그래픽 디자이너 다나카 잇코(田中一光)와 유통 전문가 쓰쓰미 세이지(堤淸二)가 MUJI라는 상호로 도쿄에 직영점을 연 뒤 크게 번창해서 1989년 세이유로부터 독립했다. 1991년 런던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 24개국의 930여 개 매장에서 700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MUJI의 기업 포스터 ‘지평선’(Horizon), 아트 디렉터: 하라 겐야, 2003년.
MUJI의 목표는 고객들이 '최고는 아닐지라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 창업자이자 초대 디자인 책임자였던 다나카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싸게 팔 수 있게 해주는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2001년 제2대 디자인책임자로 선임된 하라 겐야(原硏哉)도 제품·매장·광고 등을 간소하게 디자인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가 부임 초기에 디자인한 '지평선'이라는 기업 광고 포스터에는 그런 간소함이 묻어난다. 남미 볼리비아의 드넓은 사막에는 흰색 MUJI 로고와 한 사람의 검은색 뒷모습이 대비를 이룰 뿐 깨끗하게 비워져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MUJI의 디자인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꼭 필요한 데만 집중하여 거품을 모두 빼내는 MUJI의 '비우는' 디자인은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과 간소함을 추구하는 미술)과 일맥상통한다. 보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듯한 장황스러운 설명이 없어서 제각기 나름대로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조선일보(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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