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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기업 독보적 세계 1위 일본.. 하지만 왜 국가경쟁력은 추락하나]

뚝섬 2025. 1. 13. 11:22

[장수 기업 독보적 세계 1위 일본… 하지만 왜 국가경쟁력은 추락하나] 

[7 對 1만... 韓·日 100년 기업] 

[일본 강소기업] 

 

 

 

장수 기업 독보적 세계 1위 일본… 하지만 왜 국가경쟁력은 추락하나

 

핵심은 '연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佛 생고뱅의 역사를 보라
베르사유궁 '거울의 방'이 기원, 360년간 연매출 72조로 성장
제품 25%는 최근 5년 이내 개발… 생존전략의 핵심은 늘 '변화'다
 

 

1919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파리강화회의가 시작되었다. 1월 18일은 프랑스에는 치욕의 날이었다. 1871년 보불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프랑스의 자존심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Galerie des Glaces)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한 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대전 승전국 프랑스가 굳이 이 날짜를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파리강화회의의 결과 거울의 방에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며 48년 전 이곳에서 탄생한 독일 제국이 몰락했다. 이처럼 거울의 방은 정치적인 곳이지만, 한편으로 이곳을 만든 어느 회사의 이야기는 장수 기업의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1643년 다섯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의 어린 시절은 귀족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1661년 친정을 시작한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새로운 왕궁 베르사유를 짓기 시작한다. 권력을 위해서는 과학이 필요했다. 베르사유의 화려한 실내 장식은 사치로 보이지만, 장식 곳곳에 천체 관측 기구와 지구본을 새겼다. 또한 베르사유 방 배치에는 지동설에 해당하는 태양중심설을 반영했다. 갈릴레이가 가택 연금을 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대담한 시도였다. 베르사유에 1400개에 달하는 분수를 위해 하루 3200t의 물을 공급하는 장치를 만든 것도 과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과학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 경제의 걸림돌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비싼 제품들. 특히 베네치아가 독점하던 거울로 국부 유출이 심각했다. 거울 제조에는 유리 표면을 매끈하게 하는 연마와 같이 어려운 기술이 필요했지만, 당시 이런 기술이 없던 프랑스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1665년 왕실 자금을 투입해 공장을 세워 국산화에 도전한다. 베네치아의 필사적인 견제에도 1672년 드디어 국산화에 성공하며 더 이상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서 만들어낸 국산 거울로 1678년부터 베르사유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1684년 완성한 것이 거울의 방이다. 이처럼 거울의 방은 프랑스 과학의 자존심이다.

 

이후 왕립 거울 공장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민영화되었고, 이름도 생고뱅(Saint-Gobain)으로 바뀌었다. 왕실 지원이 사라지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신이 필요했다. 주력이던 거울을 중심으로 고성능 유리와 채광창 등으로 제품을 확장한다. 1851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영국 런던에 유리로 지어진 초대형 건축물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에 참여할 정도로 생고뱅은 민첩했다. 미국의 윌슨산 천문대의 대형 망원경 역시 생고뱅의 유리 기술로 가능했고, 여기서 빅뱅 이론이 탄생하며 인류는 우주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지난 360년 동안 변화를 거듭한 이 회사는 2023년 현재 직원 16만명에 연 매출 479억유로(한화로 약 72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장수 기업은 이처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은 경쟁력이 되고, 여러 고비를 넘기며 쌓인 위기 대처 능력은 소중한 경험 자산으로 이어진다. 장수 기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력이 강한 기업 생태계가 구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장수 기업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런 이유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장수 기업의 부족에서 찾기도 한다.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는 100년 넘은 장수 기업이 무려 3만3079개가 있고, 미국은 1만2780개, 독일은 1만73개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10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수 기업이 많다고 반드시 산업 경쟁력이 높은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8년 일본 상장사의 평균 수명은 89년으로 미국의 6배에 이르지만 회사당 시가 총액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오히려 미국 회사의 평균 수명은 줄고 있지만, 성장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일본 장수 기업의 81%가 매출액 10억엔 미만의 소기업이라는 점은 이들의 생존 전략이 변화보다는 연명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기업의 수명이 늘어가는 동안 한때 세계 1위였던 일본의 국가 경쟁력은 30위권으로 떨어졌다. 유독 일본에 장수 기업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성장 둔화의 원인으로 신문은 분석한다.

 

한편 미국 나스닥에 2024년 신규 상장된 회사 수는 192개였지만 상장폐지는 395개에 달한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S&P500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958년에는 61년이었으나 2018년에는 15년으로 줄었다. 반면 한국은 코스닥 신규 상장사가 폐지된 숫자의 3배에 이르지만 시장은 정체되어 있다. 한계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파산이 상대적으로 쉬운 미국에서는 경쟁에 뒤처진 기업들이 빠르게 정리된다. 이러면 한계 기업에 자금을 쏟지 않아도 되고, 기술과 인재는 새로운 기업으로 이어져 생태계는 더 건강해진다.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기업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장수 기업은 강한 기업이다. 그런데 장수 기업의 DNA는 하나의 기업에서만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으로 이어갈 수도 있다.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은 변하기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얼마나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가이다. 360년 역사의 생고뱅이지만 제품의 25%는 최근 5년 이내에 개발되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끊임없는 변화만이 생존 전략의 핵심이다.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조선일보(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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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對 1만... 韓·日 100년 기업

 

프랑스 파리에 '에노키안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200년 이상 지속한 장수(長壽)기업들이 모인 곳이다. '에노키안'은 성경 속 인물 '에녹'에서 따왔다.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고 나와 있다. 에녹이 오래 산 데다가 죽지 않고 천국에 갔다고 해서, 기업도 영속(永續)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 단체의 가입 조건은 까다롭다. 창업자 자손이 현재 경영자이거나 임원·대주주여야 한다. 신청 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덕분에 전 세계 장수기업 중 48곳만 회원사다. 이 에노키안협회 회장에 일본 기업 오카야코우키(岡谷鋼機)의 오카야 도쿠이치 사장이 올해 취임했다. 1669년 철물점에서 시작해 449년째 명맥을 이어가는 회사다.

일본은 장수기업 천국이다. 에노키안협회에 가입만 안 했지 일본에서 200년 넘은 기업은 3000곳에 이른다. 100년 넘은 곳은 1만개 이상. 578년 창업한 곤고구미(金剛組)라는 목조건축물 건설·유지·보수 전문회사가 가장 오래됐다. 이 곤고구미를 세운 게 백제에서 넘어간 유중광(일본 이름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이라는 사실이 얄궂다.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곤고구미 같은 회사를 지금껏 남길 수 있었을까. 창립 100년은 지나야 '장수기업'명함을 내밀 수 있는데, 한국엔 두산(1896년 설립)과 동화약품(1897년)·몽고식품(1905년) 등 7곳 정도다. 일본의 0.1%에도 못 미친다.

바로 옆 동네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공업과 상업을 천대하는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를 주범으로 많이 꼽는다. 문제는 요즘도 그런 인식이 한국에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기업을 '사회의 공기(公器)'로 대우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부의 밑천을 댄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한국에선 기업을 사리사욕의 소굴인 양 매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사회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전 세계 200년 이상 기업의 70%가 몰려 있는 일본·독일 장수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에노키안협회 회원사처럼 '가족 기업'이란 점이다. 그래야 사명감과 노하우가 단단하게 전승돼 기업 수명이 길어진다고 경영학자들은 분석한다. 일본·독일 정부는 그것이 결국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일정 기간(5~7년) 이상 기업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면 상속세를 80~100% 감면하고 유예해준다.

가업(家業)을 물려주고 싶은 한국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고민거리도 승계(承繼)와 관련된 세금 부담이다. 한국은 일본·독일과 비슷한 상속세 감면 제도를 2014년 도입했지만 조건이 너무 빡빡해 하나마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 가운데서도 에노키안협회 회원사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체적으로 기업에 대해 더 과감한 발상의 '전향(轉向)'이 절실하다.

 

-이위재 산업1부 차장, 조선일보(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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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소기업

 

창업 60년이 넘은 일본 중견 클리닝 업체 기쿠야(喜久屋)의 나카하타 신이치 사장은 10여 년 전 세탁물을 찾으러 온 고객이 던진 말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했다. 허겁지겁 매장을 방문한 이 고객이 주인에게 "늦게 찾으러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 당시만 해도 세탁을 맡기면 늦어도 다음 날엔 찾아가는 게 관행이었다. 세탁소 주인들은 세탁물이 쌓여 공간이 부족해지면 고객에게 "왜 빨리 찾으러 오지 않느냐"면서 독촉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카하타 사장은 "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 가정 환경을 고려할 때 옷을 오랫동안 맡아주고 원하는 날짜에 찾아갈 수 있게 하면 고객들이 좋아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형 창고를 마련해 6개월에서 3년까지 세탁물을 보관해주는 '시티 클로짓(City Closet)' 서비스를 출범시켰다. 이 서비스를 비롯, 새롭게 시도한 창의적 서비스들이 호평을 받으면서 기쿠야는 부진에 시달리는 클리닝 업계 실정과 달리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쿠야처럼 자신들만의 독특한 강점을 무기로 불황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강소 기업이 적지 않다. 일본은 '장수(長壽) 기업' 대국으로 통하는데 장수 기업 대부분이 강소 기업으로 분류된다. 전 세계에서 100년 이상 존속한 기업 중 80%가 일본에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이런 장수 기업은 創(창의), 執(집념), 變(변신)이란 화두를 기반으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면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오카다 고이치 메이지대 교수는 "일본 장수 강소 기업들은 창·집·변으로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면서 "여기엔 '산포요시(三方よし)' 정신, 즉 '파는 사람도 좋고, 사는 사람에게도 좋고, 세상에도 좋은'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 남이 생각 못 한 길을 찾아라

1986년 도쿄 주택가에서 창업한 우산 제조 회사 슈즈셀렉션은 장마가 끝나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번번이 부진에 시달리는 질곡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맑은 날에도 사고 싶은 우산을 만든다"는 구호 아래 다채로운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색상과 문양을 화려하고 다양하게 넣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수퍼 미니형, 150g 초경량형 등 별별 우산을 다 만들었다. 낙진으로 고생하는 가고시마현 주민을 위한 둥글고 긴 투명 우산 '사쿠라지마 파이어', 도야마현 폭설·강풍을 견디도록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한 '도야마 선더' 우산 등은 "새롭고 창의적"이란 찬사를 받았다. 슈즈셀렉션은 현재 일본 우산 시장에서 점유율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2000만개 이상 우산을 판매하고 있다.

: 있는 강점을 극대화하라

공중전화 부품 회사였던 유키정밀은 공중전화 수요가 줄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후 부품 생산 기술을 살려 항공우주 부품 생산에 뛰어들어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부품 제조 기술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집념과 결단, 이를 직원들과 전폭적으로 공유한 소통력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주물 제작 업체 노사쿠도 주물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며, 단순 하도급에서 직접 놋쇠 풍경(風磬·작은 종) 제작, 구부러지는 항균 재질의 주석 식기 '카고(KAGO)' 개발을 통해 프랑스·이탈리아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變: 과감한 변신으로 돌파하라

금속을 녹여 산업용 기기 부품을 주조하던 주물 업체 아이치도비는 지금은 일본 최고 밥솥 제조 업체로 통한다. 아이치도비가 만든 '버미큘라 라이스포트'는 8만엔(약 80만원)에 이르는 고가임에도 주문 후 제품을 받으려면 최장 15개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베스트셀러다. 이전에 만든 버미큘라 냄비 역시 명품 반열에 오른 상태. 아이치도비는 2000년대 초반 발주 감소로 고전하다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아보자"는 각오로 도전해 성공했다.

1967년 설립한 간판 제조 회사 코미는 우연히 블록 거울을 회전 간판에 붙인 걸 계기로 사각지대를 없애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특수 거울 제조에 뛰어들었다. 현재 항공기 수화물 유실 확인용, 도로 충돌 방지 반사경, 서점·편의점 도난 방지용 거울 등 일본 특수 거울 시장의 80%를 차지하면서 신천지를 개척했다.

일본의 강소 기업들은 20여 년간의 장기 침체와 고령화의 위기 속에서도 혼신의 노력과 독자적 노하우로 생존에 성공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강소 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기술력 향상과 철저한 서비스를 추구한다"면서 "이를 대변하는 신조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라고 말했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를 합친 말로 '혼신을 다해 최고 제품을 만든다'는 장인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이위재 차장/나고야·도쿄=이재은 기자/나고야·도쿄=이동휘 기자, 위클리비즈(1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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