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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

뚝섬 2024. 2. 21. 11:36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이승만·박정희는 반역자?... 대법원 '백년전쟁' 판결 유감] 
['백년전쟁'과 대법원] 
[청와대에 입성한 '백년 전쟁']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김윤덕 칼럼]

건국전쟁’ 100만 관객 육박하는데 침묵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김구의 이중성 지적에도 조용
4·19세대, “이승만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
‘난 왜 여전히 홀로 서있나’ 묻는 이승만에게 국민이 답할 차례

 

1962년 하와이에서 병상의 이승만 곁을 지키고 있는 프란체스카. 1960년 4월 하야한 이승만은 같은 해 5월 하와이로 간 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눈을 감았다.

 

영화 ‘건국전쟁’은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지만, 586 세대를 사로잡은 건 4·19혁명 당시 이승만 모습이다. 4·19가 일어나고 나흘 뒤, 85세의 이승만이 부상당한 학생들을 찾아가 북받치는 눈물을 삼키는 장면이다. “내가 맞아야 할 총을 귀한 아이들이 맞았다”며 울먹이는 영상에 객석은 당황한다. 골수 운동권이었던 민경우는 “나는 4·19를 그렇게 많이 공부했으면서도 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을까. 어느 독재자가 자신을 몰아내려는 학생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눈물 흘리며 위로하겠는가” 탄식했다.

 

한강다리 옆에 설치된 부교 사진도 놀랍다. 6·25 때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통령 혼자 서울을 탈출했다는 건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영화는 한강다리 폭파 전 부교를 설치해 피란민들이 한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고 주장한다. ‘런승만’이란 멸칭을 낳은 이승만의 라디오 연설 또한 날조라고 했다. CIA 소속 해외방송정보국(FBIS)이 감청한 라디오 음성 원본을 곧 공개할 예정이라는 김덕영 감독은 전화로 연설문의 한 대목을 읽어주다 울음을 터뜨렸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란 말은 연설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자님도 원문을 꼭 읽어보세요.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문장입니다. 70년 동안 우리는 거짓을 믿고 살아온 거예요.”

 

‘건국전쟁’이 제기한 이슈들에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의문은 ‘백년전쟁’의 침묵이다. 2013년 제작돼 수백만이 시청한 이 다큐물은 이승만을 하와이 깡패, 테러리스트, 백인 미녀들과 놀아난 플레이보이로 원색 비방한 ‘이승만 죽이기’의 결정판이었다. 그런데 조용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100만 관객 몰이 중인 ‘건국전쟁’의 기세를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특히 김구의 이중성을 지적한 대목엔 발끈할 법한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를 이승만과 직접 맞섰던 4·19 세대가 설명했다. 서울대 1학년생으로 4·19 시위대에 있었던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은 건국전쟁이 우리가 기억하는 이승만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울먹이는 장면은 당시 모든 언론에 보도됐다. 장례식에 수백만 인파가 몰렸듯이 이 박사에 대한 국민 반감도 크지 않았다. 이승만에 대한 증오는 이승만 시대를 살지 않은 586 종북 세력이 80년대에 만들어낸 것이다.”

 

4·19 주역 중 한 사람인 이영일 전 국회의원은 오히려 ‘건국전쟁’이 놓친 부분을 지적했다. 조병옥의 사망으로 대통령에 무투표로 당선된 이승만이 3·15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하야하는 대목에 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나는 지도자는 세계 정치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우리 정부가 휘둘리면서 이승만 혐오를 방치했다.” 범민련 사무총장을 지낸 민경우는 주사파가 성공시킨 최대 프로젝트가 ‘이승만 죽이기’라고 고백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판타지가 강고히 작동하는 사회, 민중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들려는 삼류 다큐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 절실한 건 객관적 사실이다. 그레그 브레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1950년대를 증언할 수준 높은 자료들이 한국엔 턱없이 부족하다. 더 많은 역사적 자료를 찾아내 거짓과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김덕영 감독도 “객관적 사실, 날것으로만 이승만 다큐를 만들기 위해 문서, 사진, 영상, 증언들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의 진심은 적중했다. 70년간 은폐돼온 이승만의 공(功)을 증언하는 사료들을 발굴, 표현의 자유란 명분으로 현대사를 멋대로 왜곡해온 좌편향 영상물들에 경종을 울리며 국민을 사로잡았다.

 

1920년 이승만의 중국 밀항을 도왔던 절친 보스윅이 이승만 영결식에 남긴 절규는 그래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내가 자네를 안다네. 내가 자네를 알아. 자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네가 얼마나 억울한지를 내가 잘 안다네.”

 

‘Why I Stood Alone?’은 휴전협정을 서두르는 아이젠하워 정부에 맞서 홀로 분투하던 이승만이 1953년 8월 미국 유력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70년 뒤 그는 똑같은 질문을 대한민국에 던진다. ‘왜 나는 여전히 홀로 서 있는가?’ 이제 국민이 답할 차례다.

 

미국 유력지 '이브닝 스타'의 일요판(1953년 8월16일자)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기고문 'Why I Stood Alone?'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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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는 반역자?… 대법원 '백년전쟁' 판결 유감

 

아침 신문에서 대법원 판결 내용을 읽으며 내가 대학에 있을 때 친구 교수들과 나눈 얘기가 생각났다.

같은 학과에 있다가 교육부 장관을 지낸 E 교수의 말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공자, 맹자보다 훌륭한 사상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많은 후배 학자들이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2000년 이상 지났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들은 신과대학 S 교수는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구약의 정의로운 하느님보다 신약의 사랑의 하느님을 깨닫지 못해, 교회 안 분열과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구약은 정의의 규범이 중요한 민족신앙이지만, 신약은 인간애의 질서를 위한 인류신앙임을 망각하기 쉽다는 걱정이었다. "정의만 믿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윤리와 인간애의 존귀성을 배제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만에 빠져 정의를 내걸고 행복의 질서까지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은혜를 갚는 것은 선이고 원수를 갚는 것은 의무라는 관념 때문에 편 가르기를 일삼는다. 있어서는 안 되는 분열과 적개심을 만들기도 한다. 끼리끼리 작당하면 망국의 역사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잘못된 종교의 불행도 마찬가지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구약과 코란의 교훈 때문에, 두 민족은 2000년에 걸친 분쟁과 적대관념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탄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정치계의 현실은 어떤가. 모든 사회와 공동체에는 상식이 통해야 한다. 전 정부가 남겨준 것 중에 좋은 점은 계승하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 정부의 업적을 위해 지난 정부의 업적을 훼손시키려 한다. 정권이 바뀔 때는 더 심해진다. 적폐 청산 같은 개념으로 과거의 업적까지 파괴해 버리고 또 다른 적폐를 만든다. 뒤따르는 시련과 고통은 국민이 감수해야 한다. 법을 바꾸면 된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법 때문에 선한 질서가 무너지면 그 병폐는 국민들의 생활 질서까지 파괴할 수 있다.

국제 문제도 그렇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건설적인 미래 창출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아베 정권은 과거 100년 때문에 미래를 파괴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주변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불은 당사자들이 질러놓고 진화는 국민에게 맡기는 식이다. 정권을 위해 100년의 역사를 이용하는 불행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국민은 무엇 때문에 친일파 명단을 만들어 발표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애국적인 업적은 묻어두고 국가적 반역자로 심판할 특권은 누가 주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일파로 판결한 일도 그렇다. 후일에 사법부의 후배들과 역사학자들이 어떤 비판을 내릴지 걱정이다. 그런 판결을 대법원이 할 수 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선일보(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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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과 대법원
 

 

좌파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보이고 조롱하려고 제작한 영상물이다. 이를테면 광복 후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미친 듯이 러브레터를 썼다"며 하트 그린 편지지 위로 이런 자막을 내보낸다. "미국이 단독으로 한국을 점령해 주세요. 전 소련이 싫어요." 이런 연출에 더해 이승만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 반역자, 플레이보이, 하와이 깡패, 돌대가리, 썩은 대가리라고 했다. 이런 다큐를 두고 대법원은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 정도"라고 했다.

▶'백년전쟁'은 조작과 오역투성이다. 미국 CIA 보고서에 "이승만은 한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궁극적으로 그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목적도 포함돼 있었다"고 적힌 부분을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려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둔갑시켰다. 이승만이 "하와이 한인 학교는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일절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선생님들은 특정 민족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기엔 너무나 세계 시민적인 사람들"이라고 한 것을 "우리 학교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로 바꿔놨다. 대법원은 그런데 "사실 확인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그 내용도 사료에 기초했다"고 했다. 
 

 

▶이 다큐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이 친미 정권에 대한 미국의 원조 덕분이고 박정희는 꼭두각시였다고 했다. 미국 원조만 받으면 다 경제 기적을 이루나. 한국은 세계 유일의 성공 사례다. '백년전쟁'은 전쟁 후 폐허에서 나라를 일으킨 대한민국 어른들을 모조리 욕보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역사 논쟁은 인류의 삶과 문화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건전한 추진력"이라고 했다. 

 

▶'백년전쟁'이 대한민국 역사를 능멸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들의 조국(祖國)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말대로 이들의 '백년전쟁'은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다. 이것을 대법원은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대법원은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해석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누구나 특정 인물을 '플레이보이' '깡패' '돌대가리' '썩은 대가리'라고 매도하는 영상을 '역사 다큐'라고 방영해도 된다는 건가. 이것은 역사 논쟁이 아니라 역사에 오물을 끼얹는 행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누가 이런 영상물을 만든다면 대법원은 어떻게 판결할까. 이번 판결은 현 정권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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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입성한 '백년 전쟁'


이승만·박정희 욕한 '백년전쟁', '親日' 덧씌워 정통성 짓밟아
엉터리 史觀에 물든 文 정부 '대한민국 70년' 홀대
 

 

'백년 전쟁'은 성공했다.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이 동영상은 이승만을 '친일파' '하와이 깡패', 박정희를 '스네이크 박' '미국의 하수인'으로 조롱했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젊은 여자와 불륜이나 저지른 불한당이었고, 박정희의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은 미국 구상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백년 전쟁'은 한국 현대사 100년을 친일·협력 세력과 독립·저항 세력의 전쟁이라는 이분법으로 몰아갔다. '친일 세력'이 세우고 만든 대한민국이니 정통성이란 게 있을 리 없다. "북한은 친일파를 철저히 숙청했지만 남한은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쓴 거짓 신화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역사적 근거도 떨어지고 논리도 조악한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수백만 명이 봤다. 당시 원로 학자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우려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했고,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유영익 교수는 "현대사 연구를 게을리한 역사학계에 책임이 있다"며 탄식했다. '백년 전쟁'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파동, 국정교과서 파동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백년 전쟁 사관(史觀)'은 더욱 뿌리 깊게 내렸다. 이 정부가 만드는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홀대받고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백년 전쟁'의 승리. 영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에 댓글 조작 사건 주범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6년간 회원들과 2000만원 넘는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가 밝힌 기부 사유는 "백년 전쟁 같은 좋은 다큐를 만들어줘서".

'백년 전쟁'의 그림자는 청와대까지 어른거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 건 의미심장하다. 대통령 뜻을 잘 헤아린다는 어느 신문은 이를 보도하면서 '대한민국 주류(主流) 교체'라고 제목을 뽑았다. 대통령은 기회만 나면 2019년을 '건국 100'으로 삼겠다고 공언(公言)해왔다. 1919년 수립한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뿌리로 기념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1948 8월 출범한 대한민국을 '적폐' 보듯 하는 건 '친일파가 득세한 대한민국'이라는 '백년 전쟁 사관' 그대로다. 작년 말 야당의 끈질긴 항의 끝에 '예비비' 명목으로 겨우 막차를 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 예산 30억원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절반으로 삭감됐다. 하기야 '백년 전쟁 사관'으로 보면 이 나라를 자유와 평화, 번영의 땅으로 만든 출발점인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부끄러운 역사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출범 당시 흠도 있었지만 그 상처를 꿰매고 보듬어 여기까지 왔다. 70년을 맞아 산업화·민주화의 성취를 가져온 주역들에게 경의를 바쳐야 마땅하다. 몇 년 전 박정희와 5·16 '공모'한 황용주 전 MBC 사장 평전을 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고뇌한 그 세대 지식인들에게 위로와 경의를 표한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라고 했다.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이 정부 사람들이 '백년 전쟁' 대신 그의 사려 깊은 역사관을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언제까지 '우리 세대의 무지와 후속 세대의 경박한 오만'으로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을 패대기치고 모욕할 것인가. 보름 후 억지 시늉만 내고 지나갈 대한민국 수립 70주년이 안타깝다. '백년 전쟁'의 눈부신 승리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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