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대한민국을 훔치다] .... [비틀스의 잊혀진 멤버]
['퀸', 대한민국을 훔치다]
[한국의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비틀스의 잊혀진 멤버]
'퀸', 대한민국을 훔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돌풍… 한치 앞 안 보이는 위기에도
온갖 정치 쇼만 하는 나라에서 '퀸의 聖歌'로 위로받는 사람들
"나훈아 닮은 저 콧수염 남자는 왜 TV만 틀면 나오느냐"고 물은 이는 시어머니였다. 초등학생 딸이 알은체했다. "아~ 남자랑 뽀뽀하던 아저씨?" 12세 관람가에 동성애 코드가 있는 줄 모르고 딸과 함께 좌불안석으로 봤던 지난달 초만 해도, 이 영화가 돌풍을 넘어 한국 극장가를 제패하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딸은 운동회 때 들은 노래가 나오자 잠시 신났을 뿐이고, '미제(美製) 노래'인 팝송 대신 민중가요를 불러야 했던 '386끝물' 엄마는 불량한 행색의 로커에게서 파바로티 못지않은 천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새삼 감탄했을 뿐이다. 록밴드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얘기다.
방탄소년단의 뜨거웠던 인기를 단숨에 제압했으니, 가히 기(奇)현상이다. TV에선 뉴스, 예능 할 것 없이 퀸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갈릴레오·스카라무슈 등 퀸의 노랫말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동영상도 등장했다. 보세 가게엔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즐겨 입었던 가죽점퍼를 구하러 10대가 줄을 서고, 서점가엔 프레디 자서전이 재출간돼 팔려나간다.
별 셋 미만 낮은 평점을 준 식자(識者)들을 비웃으며 영화가 흥행한 건, 록 문외한의 귀에도 감겨드는 선율, 대중을 '갖고 노는' 퀸의 천재적 쇼맨십 덕분일 것이다. 도입부터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무수한 히트곡이 흐르다 마지막 20분 '세기의 퍼포먼스'라 불리는 '1985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니 작품성을 따질 명분이 사라졌다.
오페라와 팝을 절묘하게 결합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탄생 과정도 통쾌했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3주간 180번 오버더빙해 완성한 역작을 음반사 사장이 혹평하자, "음악에 공식은 없어. 똑같은 걸 반복하면 퀸이 아니지"라며 계약서를 찢는 오만과 패기는 기성세대 갑질에 치를 떠는 청춘의 심장을 저격했다. 이 노래는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들은 20세기 음악으로 등극했다.
아이러니는, 영국 식민지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45년 짧은 생을 노래와 마약, 동성애에 탐닉하다가 에이즈로 죽은 한 남자, 프레디가 건넨 '뜻밖의 위로'다. 동성애라는 형벌,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탈출할 수 없었던 '감옥'에서 "죽어도 좋아!"라는 절규로 써내려간 노래여서일까. 싱어롱 이벤트가 열리는 상영관에 가면 매우 기이한 장면과 마주한다. 두 손 높이 들고 퀸을 따라 부르는 군중의 풍경이 흡사 여느 대형교회의 부흥성회 같다. 이들의 합창이 '패자는 없어. 우린 모두 챔피언이니까'란 대목에 다다르면 '성회'는 절정에 오르고 사람들은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그들 중엔 수능을 망친 고3, 취직을 못 해 몇 년째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 명퇴를 통보받은 가장들이 섞여 있다. 한 치 앞 안 보이는 경제, 치솟는 실업률, 평화를 앞세운 가짜 쇼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들은 "퀸 음악만 들으라고 불 꺼줘도 극장에 남아 있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퀸은 그 답을 알려준다" "패배 앞에 무릎 꿇어선 안 돼,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해주는 프레디가 있어 행복하다"고 찬양한다. 생전의 프레디가 사랑했던 일본이 아닌, 옆 나라 한국에서 퀸 열풍이 번진 이유다.
1985년 7월,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록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가 열린 영국 웸블리 경기장. 퀸이 15만 관중과 함께 '위 아 더 챔피언'을 열창할 때, 무대 뒤에 있던 엘턴 존이 외쳤다. "그들이 쇼를 훔쳤다!" 그로부터 33년 후 이 전설의 록밴드는 어떤 정치 지도자, 어떤 종교인, 어떤 석학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훔쳤다.
-김윤덕 문화부장, 조선일보(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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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1980년대 음악 좀 듣는다는 10대들은 어김없이 '레드 제플린파(派)'와 '딥 퍼플파'로 나뉘었다. 하드록에서 양대 산맥 밴드를 각각 추종한 세대였다. 서로 자기네 밴드가 낫다고 입씨름했다. 그런데 집에 가서는 모두 퀸을 들었다. 퀸의 음악은 록인데 멜로디는 팝이어서 따라 부르기 좋았다. 그 밴드 정점에 록 오페라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었다.
▶이 노래는 1975년 발표됐지만 국내에선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 사유는 명확하지 않다. 살인을 노래한 가사 탓이라는 설, 보헤미아가 당시 공산국가였던 체코 지명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금지곡이라면 더 기를 쓰고 들으려고 했다. 해적판 LP와 카세트테이프, 음악다방을 통해 널리 퍼졌다. "엄마/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하다가 "어릿광대여 민속춤을 추겠나/ 갈릴레오 피가로" 하는 식으로 황당한 가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요령부득이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 600만명을 넘겼다. 영화 '아저씨'와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다.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퀸의 고향 영국이 흥행 1위, 한국이 2위다. 단순 음악영화도 아니고 밴드 일대기를 다룬 자전적 영화가 이런 대박을 터뜨린 적이 없다. 중년 관객들 중엔 영화 보다 눈물 흘리는 사람도 꽤 있다. 어릴 때 듣던 노래들을 쾌적한 극장에서 좋은 사운드로 들으며 추억에 젖는다. 아무리 그래도 놀랍고 특이한 흥행 성적이다.
▶어떤 작품이나 예술가가 유독 한국에서 인기 높은 현상은 여러 번 있었다. 감성 피아노를 대표하는 조지 윈스턴과 유키 구라모토는 본국에선 무명에 가깝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알랭 드 보통이 그들 나라보다 한국에서 인기 높다.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한국인의 어떤 감정선을 건드린 모양이다. '주말에 달리 할 건 없고 마침 경쟁 영화도 없고'가 흥행 이유라고도 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한국 영화 관객은 연 2억2000만명으로 국민 1인당 4.3편꼴이다. 일본(1.4편)은 물론이고 프랑스(3.9편)보다도 많다.
▶노래를 절대 광고에 빌려주지 않는 비틀스와 달리 퀸은 사용료만 내면 얼마든지 노래를 쓰게 해준다. 광고를 통해 노래를 접했던 젊은 관객들이 "그게 퀸이었어?" 하며 영화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이유야 어찌 됐든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이 부모와 자식 세대를 이어주고 있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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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잊혀진 멤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가 엉뚱한 상상을 했다. 영화 초반, 그룹의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는다며 보컬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한 멤버에 대한 생각 말이다. 그가 나갔기 때문에 그곳에 프레디 머큐리가 들어갈 수 있었고, 훗날 전설적 그룹 '퀸'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의 시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장면인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를 본다면 어땠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기 위한 그 기념비적 공연에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이 보여준 그 엄청난 에너지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면서 말이다.
1983년 음반 녹음 직전 쫓겨난 한 남자가 복수를 결심하며 록밴드를 결성한다. 그의 이름은 데이브 머스테인. 그가 만든 밴드 '메가데스'는 2500만장 이상 앨범 판매량을 올리며 최고 밴드로 등극한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인터뷰에서 자신을 '패배자'라고 말한 것이다. 문제는 그가 쫓겨난 그룹의 정체였다. 헤비메탈계의 전설이 된 메탈리카였기 때문이다. '메가데스'와 그는 넘치게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의 기준이 된 메탈리카(1억8000만장 이상 판매)만큼은 아니었다. 누가 뭐라든 데이브 머스테인은 평생 자신을 루저로 생각했던 것 같다.
비틀스의 잊혀진 멤버 '피트 베스트'에 대한 얘기도 기억할 만하다. 드러머였던 그 역시 비틀스에서 쫓겨났다.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 '링고 스타'와 비틀스를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흥미로운 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가 한 인터뷰 내용이다. 비틀스가 잘나갈수록 그의 인생은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그룹에서 쫓겨난 덕에 인기나 돈이 아닌 다른 것에 가치를 두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로 그는 지금의 단순한 삶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까칠한 비틀스 멤버 속에 낙천적 링고 스타가 없었더라면 '비틀스'의 역사 역시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다. '퀸'의 노래를 듣는 이 순간에도, 삶의 균형은 어떻게든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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