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휴대용 재떨이] [재떨이 든 김여정]

뚝섬 2024. 6. 10. 06:12

[휴대용 재떨이] 

[재떨이 든 김여정] 

 

 

 

휴대용 재떨이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흡연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길에 꽁초 버리는 걸 볼 수 없다. 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넣는 장면만 나온다. 온갖 나쁜 짓 다 하던 야쿠자가 꽁초만은 휴대용 재떨이에 담아 가져가는 조폭 영화도 있다.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는 생활 태도가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결과다. 우리는 그 반대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은 드라마 흡연 장면조차 모자이크 처리하는 나라가 현실에선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리는 걸 보고 놀란다고 한다.

 

▶결국 나라 밖에서 망신을 샀다. 일본 쓰시마 섬의 한 신사가 한국 관광객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 신사에서 흡연은 조례로 금지돼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담배 피우고 꽁초를 버렸다. 일부는 침까지 뱉었다고 한다. 여러 번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아 “한국인 출입 금지를 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일본 곳곳에서 일부 한국인의 꽁초 투기 행태가 손가락질당한 지 오래다. 오사카의 어느 음식점 사장이 “꽁초를 버리는 한국 손님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한국도 꽁초를 무단 투기하다 걸리면 처벌한다. 그러나 벌금 5만원이 고작인 솜방망이 제재고 실제론 못본 척 눈감아 준다. 나라 밖에서 그랬다간 큰 봉변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미국 일부 주와 싱가포르에서 꽁초를 버렸다가 걸리면 우리 돈 약 200만원을 내야 한다. 일본은 처음엔 우리 돈 1만원 정도로 가볍게 제재하지만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 최대 1억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으로 엄벌한다.

 

▶2022년 여름 홍수 때 서울 시민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비가 많이 온 탓도 있지만 꽁초가 빗물받이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 서울에는 약 55만개의 빗물받이가 있는데 담배꽁초가 배수로를 막아 제 구실을 못 한다. 배수로 쓰레기의 70%가 담배꽁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빗물받이 3분의 2가 막히면 침수 높이가 그렇지 않을 때의 두 배로 올라간다. 이는 반지하 가구에 큰 위협이다. 꽁초 투기를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악습으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연간 담배 소비량의 절반인 320억개가 꽁초로 버려진다. 일부 흡연자는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도록 쓰레기통을 충분히 설치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담배 쓰레기통은 주변을 흡연장화하고 악취를 뿜는다는 이유로 반발도 크다. 애완견이 늘면서 휴대용 배변봉투가 정착했다. 꽁초도 휴대용 재떨이를 지니고 다니며 각자 처리하는 시민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6-10)-

_____________

 

 

재떨이 든 김여정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방명록에 남긴 글을 보고 한 여당 의원이 "균형감이 있다"고 추켜세웠다. 김정은 글에는 '역사(歷史)'가 두 번 나오는데, 앞에는 북한식으로 '력사'라 쓰고 뒤에는 한국식으로 '역사'라고 썼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흘림체 글씨 때문에 혼선이 빚어진 것일 뿐, 김정은은 뒤 글자도 '력사'로 썼다. 그걸 보고 '김정은의 사려 깊음'을 부각했으니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는 말을 들을 만했다.

▶엊그제 김정은이 베트남으로 가는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동생 김여정이 커다란 재떨이를 받쳐 들고 서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꽁초에 묻은 생체 정보 노출 방지를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많은 사람은 거기서 북한의 '왕'을 보았다. 그런데 정부 자문위원인 전직 통일부 장관은 "가다가 내려서 담배 피우는 게 상당히 인간적" "동생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평을 내놨다.

▶김정은의 담배는 지난 판문점 정상회담 때도 화제가 됐다. 당시 김정은은 도보 다리 회동이나 만찬 때 공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러자 청와대는 "애연가인 김정은이 연장자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참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담배를 꺼내 물면 '인간적 면모'이고, 안 피우면 '고도의 절제력'이다. 그렇다면 과거 김정은이 임신부와 유치원생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 연기를 뿜어댄 것은 어떻게 포장할까. '미리 면역력을 주려는 지도자의 배려'라고 할까.

▶66시간 열차 행군이라는 괴상한 행보를 두고 청와대 전 의전행정관은 "탁월한 선택과 판단" "역사에서의 사열" "두근거린다"고 했다. 한 친여 매체는 "66시간 열차 이동으로 '정상 국가'의 모습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이쯤 되면 거의 아첨, 아부다. 작년엔 아동 학대 논란을 빚는 북한 집단체조를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한 지자체장, "북한 주민은 부러움 없이 살고 있다"는 여당 의원도 있었다.

▶지금 여권 인사들은 북한 정권과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게 예뻐 보이는 것 같다. 핵 개발, 3대 세습, 인권 탄압도 다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콩깍지가 벗겨지면 과거 했던 말과 행동이 부끄럽고 창피해 이불을 걷어차기 마련이다. 남북 관계에서 때로 북한을 띄워줄 말도 필요하겠지만 정도가 있어야 한다. 하긴 미국 대통령도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니 할 말 다했다.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19-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