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국가 佛,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의 자유’ 명시] ....
[가톨릭 국가 佛,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의 자유’ 명시]
[낙태 처벌 금지]
가톨릭 국가 佛,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의 자유’ 명시
여권 운동의 역사는 낙태할 권리 쟁취사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가장의 권위, 중세엔 신에 대한 도전으로 근대 형법에 이르기까지 금지됐던 낙태는 1968년 프랑스 68혁명과 1973년 미국의 ‘로 대(對) 웨이드’ 연방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여성의 권리로 널리 허용되기 시작했다. 2022년 미 연방대법원이 다시 그 판결을 뒤집고 낙태권을 제한하자 프랑스가 16년 만에 헌법을 개정해 낙태는 ‘보장된 자유’라고 못 박고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헌법 국새 날인식을 열기로 했다.
▷헌법상 낙태할 자유를 보장한 나라는 프랑스가 처음이다. 이미 법으로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어 달라지는 건 없다. 낙태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막는 효과는 있다. 낙태의 ‘권리’와 ‘자유’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현지 법조계에선 별 차이는 없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치적 수사를 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초당적 지지로 성사된 개헌에 대해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의 자부심”, 총리는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라는 역사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에 낙태죄가 등장한 건 혁명기인 1791년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적 형법이다. 1차대전으로 인구가 줄자 1920년 피임과 낙태 금지법을 제정했고, 2차대전 후 베이비붐이 일고 워킹맘이 늘면서 돌봄 공백에 방치되는 아이들이 생기자 1967년 피임, 1975년엔 낙태를 허용했다. 낙태 합법화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 1971년 ‘343명의 선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프랑수아즈 사강, 카트린 드뇌브 등 저명한 여성 343명이 ‘나는 낙태했다’는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후 낙태 허용 기간은 점차 확대됐고, 2013년부터는 비용 전액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무상 낙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29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프랑스가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로 낙태하기 좋은 나라로 꼽혔다. 4명 중 1명이 낙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선 낙태가 나라를 두 쪽 내는 이슈이지만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성인 86%가 개헌에 찬성했다. 1905년 정교분리의 세속주의 ‘라이시테’를 법제화해 시행해 온 영향일 것이다.
▷한국에선 출산 장려와 산아 제한의 수단으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해 오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낙태죄가 폐지됐다.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는 무조건, 15∼24주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대체 입법안을 냈으나 국회에 제동이 걸려 있다. 낙태 가능 시기와 비용이 병원마다 제각각이어서 여성들만 위험에 내몰려 있는 상태다. ‘프랑스의 자부심’이라는 이번 개헌이 입법 공백의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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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처벌 금지
1972년 재선을 준비하던 닉슨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집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2년간 풀어줬던 군 병원의 낙태 시술을 다시 제한하도록 지시한 뒤였다. "여러 법원이 검토하고 있지만 내 개인적·종교적 신념에서 낙태는 허용될 수 없는 인구 통제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낙태 권리를 허용하느냐 마느냐 심리 중인 연방대법원에 들으라는 거였다.
▶닉슨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듬해 미 대법원은 '일률적인 낙태 처벌은 위헌'이라고 했다. 제소인과 검사의 이름을 딴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다. 위헌 판결문을 쓴 대법관 앞으로 항의 편지 수만 통이 쏟아졌다. '신의 분노가 내리기를' '당신은 영아 살해범' 같은 내용이었다. 20년 뒤 퇴임할 때까지도 "당신 부모가 당신을 낙태했어야 한다"는 저주가 이어졌다. 어느 나라든 낙태 찬반은 정치적 이념까지 드러내는 예민한 이슈다. 미국 대법관 후보는 청문회 때 대답해야 하고, 정치인도 자칫하면 곤욕을 치른다.
▶헌재가 어제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7년 전 합헌 결정을 뒤집었다. '태아 생명권을 앞세우던 입장'(pro-life)에서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본다'(pro-choice)로 바뀌었다.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만 절대적 우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고대(古代)에도 인공 낙태는 있었다. 임신부가 배를 때리거나 특별한 식물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쌍둥이를 낳으면 한 아이를 희생시키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한 입이라도 덜어야 했던 시절 배 속 아이를 지우려 천으로 배를 감고 간장 단지를 들이켜기도 했다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누구도 좋아서 하는 낙태는 없다. 대부분 태아와 자신 모두 더 불행해지는 걸 막으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생명은 여전히 인간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장 고귀한 가치란 사실이 달라질 수는 없다. 이런 신념을 가진 국민도 적지 않다.
▶어떻게 보면 법으로 판단하고 규율할 문제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기왕 헌재가 기준을 내놓았으니 태아 생명권은 물론 임신부 건강과 선택권을 두루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성이 충분히 숙고한 뒤에 결정할 수 있게 교육과 상담 기회를 줘야 하고, 결정 뒤에는 안전한 시술을 받도록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 미혼모라도 손가락질받지 않고 아이를 기를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와 국회가 어려운 숙제를 받았다.
-이명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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