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 전쟁에 세계 GDP 7% 증발”… 수출 한국엔 쓰나미] ....
[“미-중 관세 전쟁에 세계 GDP 7% 증발”… 수출 한국엔 쓰나미]
['萬里방화벽' 안의 빅 브러더]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은]
[미·중 패권 경쟁]
“미-중 관세 전쟁에 세계 GDP 7% 증발”… 수출 한국엔 쓰나미
미국과 중국 간 ‘관세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이 “무역 갈등이 극에 달할 경우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본과 독일 GDP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과 맞먹는 규모의 손실이다. 미국이 최근 발표한 대중(對中) 관세 조치가 세계 경제 성장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IMF 대변인은 16일 이같이 밝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셈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앞서 14일 중국산 전기차, 범용 반도체, 태양광 전지,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한 관세를 2∼4배 올린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과 저가 제품의 과잉 생산을 경제·안보 위협으로 보고 ‘폭탄 관세’를 물리기로 한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보복할 뜻을 밝히면서 양국 간 무역 전쟁은 확전되는 양상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달 자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긴 국가에 동등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관세법을 개정했다.
미중 관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은 근시안적이다. 단기적으로 일부 중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어부지리를 누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중국 제품의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중국산 제품에 들어가는 한국산 부품과 중간재 수출이 줄어들고,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도 타격을 받게 된다. 미국으로 가지 못한 값싼 중국산 제품들의 국내 시장 잠식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유럽 일부 국가가 이를 우려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 같은 움직임 속에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되고 공급망 분열이 가속화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재집권하면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만큼, 한국은 차기 미 대통령이 누가 되든 관세 전쟁의 난기류를 헤쳐 나가는 게 급선무가 됐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미중의 후속 조치와 파장 등을 면밀히 파악해 공조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국내 현안에 매몰돼 팔짱 끼고 있다가는 최대 피해국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동아일보(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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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방화벽' 안의 빅 브러더
유튜브·페이스북 막는 '만리방화벽' 치고 他國 내다보는 감시탑 세우는 중국 인터넷
동영상 앱 '틱톡' 등 全세계 감시 가능한 '빅 브러더' 중국에 서방은 위기의식
미국도 감시 기술 개발하며 경쟁 뛰어들어… 의회가 안 나서면 '자유' 제약 받을 수 있다
지난해 말 미군(美軍)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육군에서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스마트폰에 틱톡 설치를 금지했다가 해군과 해병대 등도 뒤를 따르면서 틱톡은 중국 정부의 스파이 취급을 받게 되었다. 물론 군인이라도 개인 폰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정부에서 지급받은 폰으로는 미군 내부 통신망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금지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틱톡을 운영하는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중국 정부와 협조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 위험성을 처음 주장한 척 슈머 의원이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이기 때문에 미국 첩보기관으로부터 분명한 증거를 넘겨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 말은 미국 역시 중국 정부와 기업 간 통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미국이 그 첩보를 입수한 정황을 밝힐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中 감시 소프트웨어 이름은 '스카이넷'
이렇듯 경쟁국, 적대국 사이의 스파이 행위는 늘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IT가 미국을 앞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들이 갖는 위기의식의 근본에는 중국이 생각하는 인터넷의 미래가 이제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생각하고 그려왔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 있다.
가령 지금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애플에 암호화된 아이폰 속의 정보를 수사기관이 빼낼 수 있는 뒷문(backdoor)을 만들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애플은 굴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시민이 무단 횡단만 해도 감시카메라가 위반자의 사진을 찍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신원을 확인해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큰 문제없이 받아들인다. 심지어 감시 소프트웨어 이름을 버젓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감시하고 말살하는 인공지능인) '스카이넷'이라고 붙여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이제까지는 이런 인식 차이가 존재해도 각 문화에서 용인하는 자유와 프라이버시의 수준은 다르니 각 나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제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가 사용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대표적 예가 방범 카메라를 만들어 파는 중국의 하이크비전과 다화테크놀로지다. 이 기업들이 전 세계에 판매한 제품에 '뒷문'이 비밀리에 설치되어 있어서 소비자의 업소나 가정에 설치된 영상을 빼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너무나 광범위하게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라 사실상 제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하이크비전은 중국 정부가 지분 42%를 갖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요구할 경우 세계 곳곳에서 촬영되는 영상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고, 그 데이터에 안면 인식 등의 기술이 적용되면 중국은 사실상 전 세계 사람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슷한 일이 5G 네트워크에서도 일어날 것을 염려한 미국 정부가 작년 내내 중국과 힘겨루기를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틱톡처럼 전혀 무해해 보였던 앱마저 안전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 부모 사이에서는 우리 아이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빅 브러더'처럼 중국 정부가 다 알고 있다는 공포감마저 퍼지고 있다.
美中 안면 인식·감시 기술 개발 경쟁
아이러니한 것은 감시에 능한 중국 정부는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외국의 테크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서비스하지 못하도록 하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of China)'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그 안에는 장벽 너머로 아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감시탑을 세운 모양새다.
물론 미국에서도 정부가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례가 있고 기업이 개인의 데이터를 팔아 돈을 버는 일은 늘 존재한다. 다만 중국과 차이가 있다면 국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정부는 기업에 책임을 묻되 기업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민주적 구조, 그리고 '발언의 자유'라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다. 인터넷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미국이 고유의 문화와 규범을 반영하도록 조심스럽게 설계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0년대를 지나면서 인터넷은 소셜미디어와 IoT를 이용한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등의 기술과 결합하면서 지난 20세기에 우리가 그렸던 이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급격히 변화했다. 그런데 그런 기술 변화의 선두 그룹에 속한 중국이 고유의 중앙집권적 정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인터넷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감시 기술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하자 이제는 미국도 질세라 안면 인식과 감시 기술을 개발하며 새로운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감시를 연구하는 학자 앤드루 퍼거슨은 "중국에 존재하는 감시 기술이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다"면서 "의회가 규제하지 않고 있으니 중국과 똑같은 감시가 미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감시에 익숙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생각하는 프라이버시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기대치는 지금의 미국보다 중국의 기준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할 미래의 인터넷은 어쩌면 지금 중국이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조선일보(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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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선택은
201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19년 중반인 지금 그 깊이와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 혹은 체제 전쟁의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두 초강대국, 즉 미국과 소련이 서로 체제 경쟁을 했던 냉전 시대부터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적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어려웠던 소련의 공산주의는 붕괴하고 말았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일 패권국으로 군림했다. 즉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에 의해 형성된 양극 체제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체제 혹은 패권 체제로 바뀐 것이다. 미국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다른 강대국들은 모두 미국을 지지하는 외교정책을 펼쳤고, 미국을 극도로 혐오하는 중동 국가들은 테러리즘이라는 특수한 방식으로 미국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78년 개혁·개방을 이룩하고 미국의 적극적 지원 아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이 등장했다. 인구가 14억에 이르는 나라가 지난 30여 년 동안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 미국 다음가는 경제 대국에 오른 것이다. 경제 대국 모두가 그렇게 하는 일이지만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을 훨씬 능가하는 군사비 증강을 단행했다. 지난 20년 중국의 국방비 증가율은 (숨기거나 줄이기 때문에 서방 전문가들이 믿지 않는)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연평균 15% 이상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중국의 부상’은 국제정치 최대의 화두가 됐다. 21세기 국제정치의 핵심변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일 것이라고 예측됐다.
경제·경영학자들은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충격을 과소평가했다. 중국이 성장할 경우 중국은 민주화·자유화가 될 것이고, 중국이 지배하는 세상이 미국이 지배하는 세상과 별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조차 있었다.
이 같은 주장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무시한 것으로 이 세상 어떤 패권국도 자신의 지위를 도전자에게 평화적으로 물려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미국 패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고, 중국은 미국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아직 도전장을 내밀면 안 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관세전쟁 넘어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것
미·중 패권 경쟁의 영역은 그 폭과 깊이가 점차 깊어질 것이다. 작은 규모의 군사충돌이 발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전쟁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도 전쟁 없이 끝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우선 미국은 중국과의 싸움을 소련과의 싸움보다 유리하게 치를 수 있는 조건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과거 소련의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즉 미국은 소련을 압도하기 위한 경제적 레버리지(지렛대)를 별로 갖고 있지 못했다. 미·소는 경제적으로 상호의존적이기보다 독립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소련을 제압하는 데 45년이라는 오랜 시간(1945~90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반면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가장 중요한 배경은 미국과의 경제적인 교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해서 말하듯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은 미국에서 창출한 막대한 흑자 덕택에 수조달러에 이르는 달러화를 축적해 놓고 세계에 큰소리칠 수 있었다. 2018년 한 해만도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약 4200억달러(약 495조원)의 무역 흑자를 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경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할 것이다. 무역전쟁이 지금은 관세전쟁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 앞으로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중국이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난망(難望)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의 승패가 결정될 텐데, 미국이 승자가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만약 미국이 경제전쟁에서 승자가 되지 못한다면 미국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전쟁까지도 각오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전쟁에 지지도 않은 채로, 즉 평화적으로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도전자에게 양보할 수 있는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어떤 패권국도 도전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평화적으로 넘겨준 경우는 없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파멸시킨 전쟁부터 7년전쟁, 나폴레옹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인류사의 최대 비극인 이들 대전쟁들은 모두 패권국이 도전자에 맞서서 싸운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패권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 우선 중국의 국민이 너무 가난하다. 어떻게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평균에도 미칠 수 없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중국은 세계를 주도해 나갈 만한 이념이 없다. 미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자신을 상징하는 이념으로 내걸고 세계를 향해 미국을 따르라고 말했다. 중국은 어떤 이념을 내걸 것인가?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이념이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민족끼리’는 국제정치 현실을 무시한 발상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 국제정치의 처절한 논리에 무감하다는 사실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람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다투면 우리는 가운데서 중재자 혹은 균형자 노릇을 하면 되고,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할 수 있다는 정말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2015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은 천안문에서 행해진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자유진영국가의 국가 원수가 되었다.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한 국제정치학자는 중국이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을 때 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이후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필자는 이 일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을 더 이상 진정한 동맹국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고 믿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보인 친중적인 행보 역시 중국으로부터 진정한 이득을 얻어내기보다는 오히려 무시당하는 상황을 초래했을지 모른다. 대통령이 베이징 방문 중 혼자서 (한국 사람끼리) 밥을 먹어야 했던 경우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근거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리민족끼리’라는, 전혀 현실을 무시한 국제정치적 발상의 포로가 되었다. 한국은 국제정치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다. 국토가 분단된 것도 국제정치의 결과물이며 아직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이유 역시 국제정치 때문이다.
두 나라가 싸우면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은 우선 미국과 동맹을 깬 연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한 채 우리가 중립을 택하겠다면 중국이 그 말을 믿겠는가? 그리고 동맹국인 미국은 한국을 뭐라고 생각할까? 강대국 간의 싸움에서 약소국이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조선이 중립이 아니어서 한반도가 러일전쟁, 청일전쟁의 전쟁터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승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일일이 다 근거를 대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게다가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치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세계 많은 사람이 미국을 싫다고 말하면서도 압도적 다수가 중국보다는 미국이 패권국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 100년 전 조선 왕조 말엽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고종은 줄을 잘못 섰고,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21세기에도 그런 운명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셰일 혁명까지 보태 21세기를 주도하게 될 미국과의 동맹을 앞으로도 더욱 돈독히 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코노미조선(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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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
미국과 다른 가치로 도전하는 중국... 미국은 억누를 수밖에
“(미국의) 중국과 라이벌 관계는 미국이 이전에 겪지 않았던 진정 다른 문명, 다른 이데올로기와 싸움이다. 중국 체제는 서구의 철학과 역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미국이 백인(Caucasian)이 아닌 대단한 경쟁자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다.”
카이론 스키너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4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래안보포럼’에서 한 발언이다. 미국 주요 당국자가 중국과 관계를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한 ‘문명의 충돌’의 개념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키너 국장은 레이건 시대의 냉전 종식을 다룬 저서 ‘레이건, 그 자신의 손으로(Reagan, in His Own Hand)’로 유명하다. 워싱턴이그재미너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스키너 국장이 이끄는 정책기획국은 ‘레터(Letter) X’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충돌 관련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 봉쇄 전략의 토대가 된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의 ‘X 아티클(Article)’을 본뜬 것이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을 겨냥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5일 제1회 ‘아시아 문명대화 대회’ 개막 연설에서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며 “평등과 존중의 원칙으로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 다른 문명과 교류와 대화로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 “각종 문명은 원래 충돌이 없었다”면서 “문명 교류는 대등하고 평등해야 하며 강제적이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을 세계화에 편입시킨 건 민주화 바랐기 때문이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 서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일본의 탈아론(脫亞論)을 시작으로 세계 대부분 나라는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때 여럿 생겨나기도 했으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대부분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됐다.
많은 나라가 서구를 지향해 온 것이 그들이 가진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민주·평등·박애·인권·개방·관용·포용 등 서구가 추구했던 가치가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은 로마, 몽골,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초강대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건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나면서 서구의 보편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듯했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 국가들은 중국 역시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틀로 편입되면 서구 보편적 가치를 따를 것으로 봤다. 기든 라흐만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6월 3일 자 칼럼에서 “서방 세력이 중국을 세계화와 무역으로 포용한 것은 경제적인 결정만은 아니었다”며 “중국이 세계화를 통해 서구의 정치적 가치(자유·민주주의·인권 등)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사적 사례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적 요구가 분출해 민주화했거나, 민주화하지 못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쇠퇴했다. 그런데 중국은 정반대로 오히려 독재를 강화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인터넷 등에 차단벽을 설치해 검열하고 인공지능(AI)이나 안면인식 기술 등 새로운 도구를 통해 자국민을 감시하려 한다. 중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있다.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실망한 중국
하지만 중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안정, 공산당 리더십 유지다. 중국은 정치 체제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점진적으로 시장경제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고정환율제를 관리변동환율제로 바꾸고 시장 개방도 점진적으로 추진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진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식 시장주의 체제에서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유럽 재정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여론이 분열돼, 정치적 합의에 이르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서구식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느냐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와 정부 주도 경제가 자유와 민주를 억압하더라도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에 도움된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국내적으로는 ‘민진국퇴(民進國退·민간기업이 앞서고 국영기업은 물러난다)’ 기조가 시진핑 시대 들어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바뀌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장경제 방향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위 당·정·군 관료들이 부정부패로 사익을 추구했다. 그래서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마자 반부패 개혁을 추진하면서 엄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국영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돼 국진민퇴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영향으로 2013년 시진핑의 ‘9호 문건’에 서구 제도 중 중국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9월 칼럼니스트 우샤오핑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민영 부문은 국유기업을 돕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했으며 이제 사라지기 시작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후 시 주석이 민영기업을 시찰하고 민영기업의 역할이 언급되면서 논란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민영기업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국영기업을 통해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민간기업이라고 해도 공산당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방보험 창업자 우샤오후이가 2017년 6월 체포돼 지난해 1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지난해 7월 하이항그룹의 공동창업자 겸 회장인 왕젠이 프랑스 휴양지에서 실족사했고, 앞서 2017년 1월엔 밍텐그룹 샤오젠화 회장이 홍콩 호텔에서 갑자기 실종되기도 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새로운 상장사 관리 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새 준칙에는 ‘상장사가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따라 회사에 당위원회(당조직)를 설립해야 하며 당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필요한 조건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주요 의사 결정 때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 투자한 서방 기업은 회사 내부 공산당 세포(핵심당원)들에게 의사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역할을 부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중 패권 경쟁은 규범과 질서의 문제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 감시 통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매우 후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 독재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해낸 중국 모델은 매력적일 수 있다. 중국이 이란과 친하게 지내고 베네수엘라를 지원하며 아프리카 여러 독재 국가에 인프라 건설, 자원 개발 등을 추진하는 이유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에 나타난 ‘문명의 충돌’ 개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백인종·황인종 문명 또는 기독교·이슬람·유교 문명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지만 그 근간에는 어떤 규범과 질서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인류 역사의 발전은 그런 식으로 이뤄져 왔다.
시 주석과 같은 문화 상대주의자는 ‘각자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산다’는 식으로 자기 문명이나 문화의 특수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또는 태평양 지역의 식인 풍습을 받아들일 수 있나.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녀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할례를 용인할 수 있나. 자유연애 또는 여성의 자기표현이 친족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명예살인을 인정할 수 있나. 이 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서구 보편적 가치가 그 방향을 추구해왔고 대부분 나라가 이에 동의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우리나라 유신시대 때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식 민주주의’와 겹친다.
중국의 영향력이 자국 내에만 미친다면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이처럼 난리 칠 이유가 없다. 할례나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보기에 따라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세계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미·중 충돌의 근원이다.
plus point EU도 변수… 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결국 미국 편’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유럽연합(EU)의 입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패권 경쟁에서 큰 변수다. EU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미국 또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계속 유럽에 러브콜을 보내며 미국과 유럽 간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EU는 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불공정 경쟁을 문제 삼고 있는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유럽집행위원회(EC)가 3월 11일 내놓은 전략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명확히 나와 있다. 보고서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economic competitor)’이자 정치적으로 대안 모델을 추구하는 ‘체제적 라이벌(systemic rival)’로 규정했다. 또 “중국과 관련된 무역, 기술, 지정학적 우려에 대해 EU가 향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대중국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나라는 EU에 대한 발언권이 가장 강한 독일과 프랑스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가 중국과 갈수록 친밀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 또한 EU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중국 시장 개방 노력의 실패,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조금 지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행태, 기술 및 통신 부문을 장악하려는 시도 등 중국의 패권 추구와도 관련된다. 영국과 프랑스 등 EU 국가들은 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중국에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기도 한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해 군함 파견과 해군 훈련 증강에 나섰고,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이 같은 기류에 동참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4월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21차 중국·EU 정상회의에서는 “중국과 EU는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활력을 재확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면서 “양측은 다자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개방적이고 차별 없는 양자 무역 관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 보조금 등 외국인 기업에 대한 차별 폐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등 국제표준 준수를 약속했다.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다자주의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EU 역시 중국의 불공정 경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도 일단 말로는 받아들였다. |
-정재형 선임기자, 이코노미조선(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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