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만원 관중, 여성은 어디에] [사우디의 '와하비즘']
[사우디 만원 관중, 여성은 어디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
사우디 만원 관중, 여성은 어디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팬들이 31일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관중석에서 여성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뉴스1
한국 대표팀이 31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8강에 합류했다. 승부차기 끝에 얻은 힘겨운 승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12명이나 된다. 이런 한국을 상대로 사우디는 나름 선전을 한 셈이다.
사우디 선전의 바탕에는 최근 이어진 전폭적인 투자가 있을 것이다. 사우디는 자국 스포츠, 특히 축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같은 스타 선수를 돈으로 쓸어담다시피 하며 자국 리그로 끌어왔다. 이미 2034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유치도 확정지었다. 자국 스포츠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사우디 국민은 신이 나겠다 싶다.
다만 신이 나는 것은 국민의 절반밖에 안 되겠다는 의구심도 든다. 이날 경기에서 3만여 관중석 전체가 녹색(사우디 유니폼)이나 흰색(사우디 전통 의상)으로 가득 차 물결을 이뤘지만 유독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카메라가 100여 명의 대규모 관중을 비춰줄 때면 간혹 한두명이 눈에 띄었을 뿐, 경기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우디 여성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20여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알려진 한국 관중석은 절반 가까운 사람이 여성이었고, 이들은 슛 하나 패스 하나에 환호하며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사우디 관중석의 모습은 사우디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우디는 대표적인 여성 인권 ‘후진국’이다. 이 때문에 세계 스포츠를 장악하다시피 하며 자국 홍보에 열을 올려도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난에 늘 직면한다. 여성 차별, 반체제 인사 탄압 등 자국 인권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눈을 돌리기 위해 스포츠에 투자한다는 논란이다.
실제 사우디의 여성 인권은 처참한 수준이다. 축구장에 여성 관중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6년 전이다. 여전히 남성 후견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후견인 제도가 남아 있다. 여성들은 가족의 관습이나 남성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의료 서비스 접근도 제한적이다. 이에 반발하면 구금되거나 징역형을 산다.
이쯤 되니 아무리 ‘프로는 돈’이라지만 선수들도 반발한다. 테니스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크리스 에버트가 지난주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쓴 것이 대표적인 예다.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만 18번씩 한 이들은 여자 프로 테니스(WTA) 투어의 왕중왕전 격인 경기 ‘WTA 파이널’이 사우디에서 열릴 수 있다는 소식에 “여성 전체에게 퇴보를 의미한다”며 반발했다.
축구에선 손흥민이 사우디를 거절했다. 그는 지난해 40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안받고도 왜 사우디로 이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 축구의 자부심과 제가 좋아하는 리그에서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조성호 기자, 조선일보(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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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
275년 지속되어 온 '칼 가진 자'와 '코란 든 자'의 연합
18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자 '와합' 우상 숭배·여성 사회활동 금지 주장
"신도들 타락… 코란 그대로 해석해야"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들의 해외여행 제한을 해제하기로 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그동안 마흐람(남성 가족 후견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결혼과 취업은 물론 해외여행도 떠나지 못했는데, 이 중에서 해외여행만큼은 풀어주기로 한 거예요.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여성 인권이 낮은 편이에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의 뿌리가 된 '사우디 제1왕국'이 와하비즘이라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과 뿌리 깊이 얽혀 있어서예요.
◇이슬람 근본주의 외친 '와합'
사우디아라비아는 와하비즘 국가입니다. 와하비즘은 쉽게 말해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적힌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작년에 처음으로 여성도 운전할 수 있게 했어요. 지난 2일에야 성인 여성 혼자 외국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했을 정도로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따르는 나라입니다. /EPA 연합뉴스
와하비즘은 18세기 이슬람교 학자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1703~1792)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에요. 와합은 지금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인 리야드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당대의 이슬람교 신자 대다수가 타락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내세우는데도 많은 사람이 알라신이 아닌 이슬람교 성인을 숭배하거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어요.
그래서 그는 초기 이슬람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복고주의 운동을 펼쳤어요. 무함마드가 처음 이슬람교를 창시했던 7세기 이슬람 교리가 정통이라는 주장이었죠. 그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친구로 토착민들에게 성인으로 추앙받던 이의 무덤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나무도 우상 숭배라며 잘라버렸습니다. 여성의 사회활동도 금지했죠. 와하비즘에 찬동하지 않던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죠. 와합은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와합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후원해줄 현실 권력자를 찾아나서죠.
◇칼 가진 자와 코란을 든 자의 연합
당시 아라비아반도는 명목상으로 오스만제국 땅이었어요.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국력이 떨어져 혼란스러운 상태였죠.
당시 아라비아반도 중부 디리야(현재의 리야드)를 지배하던 무함마드 빈 사우드(?~1765)는 와하비즘에 매력을 느낍니다. 사우드와 와합은 1744년 군사력은 사우드가, 종교적 통치 이념은 와합이 맡기로 합의하고 힘을 합칩니다. 사우디 제1왕국의 탄생이죠.
이후 사우드는 아라비아반도를 '진짜 이슬람'의 깃발 아래 통일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1780년대부터 빠른 속도로 영토를 넓힙니다. 1805년에는 이슬람교의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모두 정복하고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손에 넣었죠.
하지만 오스만제국도 호락호락하진 않았어요. 오스만제국의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반격에 나서면서 사우드 가문은 메카를 비롯한 영토 대부분을 잃고 재기를 노리게 됩니다. 사우드 가문은 20세기 초 다시 와하비즘을 주창하며 아라비아반도를 차지합니다. 무함마드 빈 사우드의 5대 손인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1876~1953)가 아라비아반도를 다시 통일하고 1932년 건국을 선포합니다. 사우디 제3왕국, 우리가 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율법으로 다스리는 나라
사우드 가문과 와합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혼인에 혼인을 거듭했어요. 나라는 사우드 가문에서 다스리지만, 종교 지도자는 와합의 후손이 맡는다는 원칙도 지켜지고 있고요. 이런 가운데 와하비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사회·교육·법의 기준이 됐습니다. 코란과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관습법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게 됐고요.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마흐람 제도도 샤리아에 따른 것입니다.
책 '와하비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쓴 데이비드 코민스 미국 디킨슨대 교수는 "종교적 사명과 정치적 힘이 결합한 1744년 협약은 2세기 반이 지나도록 지속됐다"고 했어요. 2019년 지금까지 275년 동안 현재진행형입니다.
[사우디 국기 속 글씨, 무슨 뜻?]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는 초록색 바탕에 '알라 외에 신(神)은 없고, 무함마드는 예언자다'라는 코란의 한 구절이 적혀 있어요. 초록색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가장 선호한 색이에요. 이 국기는 압둘 와합이 주도했던 '와하비 운동'에서 사용했던 깃발이기도 하죠.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양지호 기자, 조선일보(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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