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젊은이 따라 어른까지 잘못 쓰는 지점이란 표현] ....

뚝섬 2024. 1. 19. 09:39

[젊은이 따라 어른까지 잘못 쓰는 지점이란 표현] 

[서비스업과 사물 존칭]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젊은이 따라 어른까지 잘못 쓰는 지점이란 표현

 

어제는 언론 보도에서까지 부적절하게 쓰인 ‘지점’이란 표현을 보게 됐다. 존 플럼 미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정찰위성과 관련해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구절이다. ‘그들의 전쟁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지 여부’란 부분이 영어로는 ‘if there are things that enable their ability to do a war fight’로 돼 있다. 왜 ‘things’를 굳이 지점으로 번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뒤 기자들이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가 잇따르는 사태에 대해 묻자 “우려 지점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할 점’이라고 하면 될 것을 우려 지점이라고 해 어색했다.

▷지난해 말 방한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가 한 방송사 라디오 PD가 올린 영상을 보게 됐다. 지점이란 표현을 수차례 사용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적절하지 않았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그의 커리어가 가능했던 지점은 그가 전형적인 콩쿠르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의 지점은 이유라고 써야 한다. ‘30개의 곡(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의미)을 그냥 갖다 붙여놓은 것 같은 연주가 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그런 지점들을 상쇄시키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의 지점은 그냥 점으로 쓰면 된다.

 

▷한 위원장은 51세다. 앞의 라디오 PD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50세로 나와 있다. 지점(地點)은 글자 그대로는 땅의 한 점이다. 흔히 사고가 난 지점과 같은 말을 쓴다. 출발 지점, 도착 지점이라는 말도 쓴다. 사실 이런 말만 해도 ‘지’를 빼고 출발점, 도착점이라고 쓰면 된다. 그러나 거꾸로 언제부터인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포인트(point)할 만한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까지 지점이란 표현을 마구 갖다붙이는 버릇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더니 이제는 젠체하는 50대들까지도 무반성적으로 그런 말을 쓰고 있다.

▷이제 상당수가 60대가 된 ‘86세대’들은 부분이란 표현을 유행처럼 사용했다. 지금도 그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독일 헤겔 철학에서 전체와 부분의 동일성에 기초해 만들어진 표현이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쓰이다가 1980년대 운동권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그런 부분’은 ‘그런 점’ 혹은 ‘그런 측면’으로 해도 부족할 게 없고 오히려 더 적절하다. 요새 ‘지점’의 용례는 ‘부분’의 용례보다 훨씬 부적절해 보인다. 언어를 무반성적으로 쓰면 내가 말하지 않고 말이 말을 하게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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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과 사물 존칭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고객님의 불편 사항이 접수되셨습니다” 등 사물을 높이는 말투를 ‘사물 존칭’이라고 한다. 주체 높임 원칙에 어긋나는 잘못된 존대법이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에도 서비스 현장에서는 이러한 말투가 여전하다. 젊은 세대가 제대로 국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고 기성세대가 핀잔을 주는 세대 갈등 소재이기도 하다.

 

일본어에는 사물 존칭과 유사한 ‘미화어(美化語)’라는 개념이 있다. 명사 앞에 접두사 ‘오’나 ‘고’를 붙이는 어법으로, 가네(돈)를 ‘오카네(お金)’로, 사케(술)를 ‘오사케(お酒)’로 말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화어는 상대를 높이는 존경어나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 등과 달리 정중하고 품위 있게 말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는 화법으로 규정된다.

 

일상적으로 쓰는 어법이지만 근래에는 오·남용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가타카나 표기 외래어에는 미화 접두사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오토이레(おトイレ·화장실)’ 정도가 예외지만, 요즘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오비루(おビ-ル·맥주), 오코히(おコ·커피) 등 외래어까지 마구잡이로 미화어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처지에서는 사물 존칭 지적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예약받을 때 “예약자명이 어떻게 되는지요?”보다 “예약자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라고 말하는 편이 안전하다. 전자는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사모님을 남발하는 호칭 인플레가 있듯이 사물 존칭도 손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무조건 높이고 보는 일종의 ‘존댓말 인플레’ 현상이다. 존댓말에 민감한 사회적 특성이 서비스업에 왜곡되어 투영되면서 형성된 약자의 언어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못 배운 말투라고 매도하기보다는 그 뒤에 숨은 사회 구조적 배경도 감안하면서 언어 변화 관점에서 문법적 허용 등을 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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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었나 보다 

 

또 등장한 국민, 정작 짐 지운 적 없다는데. 무거워 보이니 되레 내려놓으라는데.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습니다. … 여러 사안 외면하지 않고 성찰하겠습니다." 실제로 꾸지람이 계속됐다. 보통은 그러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한 1년은 죽어 지낸다. 공인(公人)이라는 연예인 그러는 거 많이 봤다. 그는 달랐다. '질책 달게 받겠다'는 그냥 흘려듣겠다는 말이었나 보다. '성찰(省察)'은 '남들이 잘못됐다고 나무라도 뜻을 굽히지 아니함'이란 뜻인가 보다.

"두 가지 실천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제 처와 자식 명의 펀드를 모두 기부…." 의심할 줄 알았다는 듯 덧붙인다. "단지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잠시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일을 돕고자 재물을 대가 없이 내놓는 일이 '기부(寄附)'라고 사전은 풀이하는데. 하필 흘기는 눈 많아지자 펀드도 학원(學園)도 내놓겠다 한다. '실천'과 '눈속임'이 비슷한말이었나 보다. 기부는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일'이란 뜻인가 보다.

"국민들께서 제가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점 뼈아프게 받아들이겠습니다. … 짊어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또 등장한 국민, 정작 짐 지운 적 없다는데. 무거워 보이니 되레 내려놓으라는데. 본인은 한사코 안 된다 한다. 꽤 눈치 보는 줄 알았던 국민보다 무서운 누가 있나 보다. 국민이 주인이란 말, 빈말이었나 보다.
 

 

"과분한 이 자리 외에 어떤 공직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위에서 잘한다고 등 두드려주며 권해도 손사래 치는데. 그러다 '과분(過分)하지만' 하며 마지못해 받아들이는데. 아무래도 당신 분수에 넘친대도 물러서지 않는다. '~도 유분수(有分數)'라는 말, 들어보지 못했나 보다. 아무튼 그 자리는 기어코 차지하고 싶은가 보다.

어떤 이가 거든다. "그만큼 모든 걸 가질 수 없었던 명문 대학 출신의 많은 기자가 분기탱천해서…." 역성이란 걸 들다 보면 분별력이 떨어지는가 보다. 아니, '공분(公憤·공적인 일로 느끼는 분노)'이랑 '시샘'은 구별하기 어려운 말인가 보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조선일보(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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