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2025년, '대행 정부'가 우선해야 할.. ] ....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2025년, '대행 정부'가 우선해야 할 3가지 외교안보 과제]
[미국, 윤석열에 혀를 차고 이재명을 의심하다 ]
[트럼프에게 줄 서는 세계… 우리만 오판할까 두렵다]
[21세기 親中 사대주의가 더 치욕적인 이유]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국제정세전망'의 '불확실' 언급
작년 12회→올해 37회 3배 증가
8년 전 朴 탄핵 때보다 훨씬 엄중
위기 때 黨派 초월해야 국가가 산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2월 7일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만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오는 20일 재취임하는 트럼프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지난달 7일 프랑스를 방문한 트럼프는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회동했다. 그는 마크롱과 나란히 서서 “세상이 분명히 약간 미쳐가고 있다”며 “이를 마크롱과 논의하겠다”고 했다.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트럼프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미친 세상’을 언급한 것이다.
1977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교수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펴낸 지 40년이 되는 2017년 트럼프 1기가 시작됐다. 그러자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는 이를 ‘초(超)불확실성의 시대’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스스로 “세상이 미쳐 가고 있다”며 8년 만에 다시 임기를 시작하는 올해는 ‘초초(超超)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립외교원의 2025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엔 ‘불확실’이 총 37회 언급됐다. 2024년 국제정세전망의 12회에 비해 3배 이상 ‘불확실’이 증가한 것이다. 중국, 일본에 대해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장기적으로 미·중 관계는 물론 국제정치와 경제에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도전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일본 정치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시바 정권의 국정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유럽은 어떤가. “유럽이 동부 유럽과 지중해 지역의 안보 위협 고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전 세계가 불확실하다는 사실만 확실하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17년 트럼프 1기 때는 ‘평화 시기’로 규정해도 될 정도다. 대통령 첫 임기를 막 시작한 트럼프는 아직 발톱을 드러내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없었다. 그랬기에 북한을 제외하고는 우려했던 만큼의 외교안보 위기는 없었다.
그로부터 8년 후 지금은 어떤가. 트럼프는 1기 때와는 달리 백악관과 내각에 자신의 어떤 지시도 충실히 이행할 ‘예스 맨’만 기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북한군까지 끼어들어 더 격화되고 있다. 중동에선 간헐적으로 휴전 얘기가 나올 뿐, 언제쯤 전쟁이 끝날지 알 수 없다.
국제사회를 거래적 관계에 기반한 대형 투전판으로 보는 트럼프에게 상대방의 위기는 기회다. 캐나다에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하고, 덴마크령의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넘기라는 협박을 예사로 하는 트럼프다.
대한민국 행정부의 넘버 원, 투가 잇달아 직무정지된 상황에서 평소 한미 동맹을 경시하고 주한미군을 빼내고 싶어하던 트럼프가 강수를 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前) 정부 시절 그는 어떻게 해서든 문재인 대통령을 따돌리고 김정은과 둘이서만 만나고 싶어 했는데, 오히려 한국 대통령 부재를 반기지는 않을까.
그래서 제안한다. 윤 대통령의 자폭(自爆) 계엄 및 탄핵 문제로 정치권이 피 튀기는 싸움을 하더라도 한미 동맹, 북한 도발, 중·러 견제 등의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만큼은 당분간 하나 된 대응을 하는 비상기구가 필요하다.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국제사회에서 정부와 여야의 일치된 대응만이 2025년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연초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게 바로 이 문제라는 인식을 정치권이 가져주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온전(穩全)해야 당파싸움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조선일보(2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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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행 정부'가 우선해야 할 3가지 외교안보 과제
[朝鮮칼럼]
우선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 시급
미북 정상회담 졸속 개최 등
우리 이익 반하는 정책 막아야
두 번째는 당분간 북한 자극 말라
국내 정국 불안… 소탐대실 피할 것
가을 경주 APEC 회의도 마찬가지
야당 포함 초당적 대표단 파견
우려·의구심 없도록 만전 기해야
대한민국은 지금 내우외환의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12·3비상계엄 선포’는 내정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순간에 외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모델로 칭송받으며 7대 선진 경제 대국 클럽인 G7 가입까지 꿈꾸던 한국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가 즉각 해제 결의를 통과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이 문명국가 대열에서 ‘바나나 공화국(정정이 불안한 중남미 국가)’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간신히 막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충동적 광기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막을 제도적 장치조차 없는 허술한 국가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만으로도 한국의 국제적 신인도와 평판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정이 정상화될 때까지 외교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려고 줄 서 있던 외국 장관들은 갑자기 사라졌다. 한시적 대행 정부를 상대할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 우방들조차 대행 정부와 현안을 논의하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고, 반일·친중 정부가 출현할 경우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체제와 동아시아 전략 지형에 미칠 영향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행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 가운데 세 가지만 짚어보겠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당장 20일 후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소통 창구를 여는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하는 대로 바로 조태열 장관이 방미하여,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북한 문제를 담당할 리처드 그레넬 특임대사 등을 만나 미국이 우리의 사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특히 미·북 정상회담의 졸속 추진을 막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국내 재계와 종교계 인사들도 있지만 이들에게 복잡하고 민감한 외교·안보 문제를 아웃소싱 할 수는 없다. 주미 대사의 카운터파트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되는 데는 수개월이 소요되고, 주한 미국 대사도 장기간 공석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은 외교장관뿐이다.
만약 향후 권력의 향배에 따라 정부의 외교 기조가 친중·반일 노선으로 돌아가는 변고가 발생한다면 중국 견제를 최우선 대외 정책 목표로 설정한 트럼프에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없어진다. 트럼프가 미·북 협상에서 우리의 국익을 희생하는 딜을 추진하더라도 한국이 이를 막을 레버리지도 없어진다. 외교부는 향후 발생할 모든 상황에 대비하되 윤석열 정부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3자 협력 체제를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둘째, 당분간 북한을 자극할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단속하고, 전방의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해야 한다. 라디오와 TV 방송으로 훨씬 더 효과적인 대북 정보 유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북한을 자극할 수단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 정권은 지금 내부적으로 불안하고,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포탄과 병사들의 목숨을 팔아 급전을 조달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에서 국지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할 여력이 없고, 그렇다고 정권의 운명을 걸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민간 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도 오물 풍선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인기가 평양 심장부까지 진입하여 전단을 살포해도 GPS 교란 이상의 보복을 자제한 것도 북한이 처한 딜레마의 일단을 보여준다. [북한의 수세적 자세가 북한 체제를 흔들 절호의 기회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국내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을 더욱 키우는 것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길이다.
끝으로, 금년 가을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APEC 정상회의를 반납할 것인지 여부를 대행 정부가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 만약 금년 중반까지도 국내 정국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참가국들은 불안해하며 초조해질 것이고, 국내 정치적 혼란이 종식되지 않으면 정상회의 개최가 국위 선양과 국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칫 우리 정치의 후진성만 부각시킬 위험도 없지 않다.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 강행을 결정한다면,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야당 의원을 포함한 초당적 고위 대표단을 참가국들에 파견하여 이들의 우려와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조치도 서둘러야 한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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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윤석열에 혀를 차고 이재명을 의심하다
[강천석 칼럼]
尹: 12·3 계엄 때 핵심 병력 이동 미국에 통보 안 해 트럼프의 美軍 한국 주둔 회의론 자극
李: 탄핵안 통해 한-미-일 共助 비난하고 '北-中-러'로 기울며 노골적 反日로 후퇴해 정체성 의문 불러
트럼프 머릿속에 든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에 이런 나라가…’ 하며 혀를 차지 않을까. 2016년 11월 5일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박근혜 한국 대통령에게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한 달 뒤 한국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8년 만에 대통령 당선자로 돌아온 트럼프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잘 듣고 있다’고 덕담(德談)을 건네며 ‘미국 조선업(造船業)은 한국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7일 뒤 트럼프는 ‘한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는 긴급 브리핑을 받았다.
그 후 트럼프의 입에선 한국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2월 16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시바(石破茂)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름을 들먹였다. 그는 이날도 ‘김정은과 유일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동북아 3국 가운데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과 세계 기자들도 중동·우크라이나·대만해협 등등 모든 문제를 물었으나 어느 누구도 한국 묻지 않았다. 한국은 ‘미움받는 나라’보다 못한 ‘지워진 나라’였다.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재임 때 ‘왜 한국에 미군을 둬야 하느냐’를 수시로 공공연히 물었다. 그때마다 원숙한 군(軍) 장성 출신 대통령 안보보좌관, 국방장관 등이 이유를 설명하며 대통령을 다독였다. 주한 미군은 한국 방위만 하는 게 아니라 일본을 지키고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前哨)기지 노릇도 한다는 ‘3중 역할론’이다. 지금 트럼프 곁엔 주한 미군 축소·철수론을 전파하고, 한국 등 너머로 미국-북한 양자(兩者) 직접 교섭을 주장하던 인물뿐이다.
한국은 12월 3일 전선(戰線)과 수도 방위 핵심 전력인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전사 병력을 이동하면서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통보도 하지 않았다. 40년 전 12·12 사태 때와 같았다. 당시 미국은 분노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한국에서 ‘2만8500명 주한 미군 생명을 무엇보다 우선한다’로 나타난다. 미국은 한국군 핵심 병력 이동이 주한 미군 안위(安危)와 직결된다고 간주한다.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침묵 속엔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다.
비상계엄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은 12월 4일 제출한 1차 탄핵안 결론에서 윤 대통령의 죄상(罪狀)을 이렇게 요약했다.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傾倒)된 인사를 정부 주요직에 임명하는 정책으로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 국민 보호 의무를 내팽개쳤다.”
백악관·국무부·국방부와 맞닿은 미국 연구소들이 먼저 반응했다. ‘심각한 착각’ ‘한국이 중국-북한, 러시아-북한 동맹의 하위(下位) 들러리 국가로 가는 길’ ‘한·일 관계가 문재인 시대로 후퇴하면 주한 미군 주둔 필요성도 그만큼 손상될 것’이란 내용이다. 한·미·일 공조(共助) 회복을 최대 외교 치적으로 여겨온 바이든 정부 뒤통수를 치고 일본 중시론(重視論)을 펴온 트럼프 얼굴에 주먹을 날린 거나 다름없다.
입을 다문 일본은 정부 안팎이 술렁댄다. 일본의 동요는 그대로 워싱턴에 전달된다. 민주당은 2차 탄핵안에선 문제 부분을 삭제했다지만 이 불발탄(不發彈)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계속 따라다니며 정체성을 물을 것이다.
2016년 대통령 탄핵 당시 후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6개월을 넘긴 2017년 6월 29일에야 회담을 가졌다. 아베(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 9일 후 뉴욕에서 90분 동안 회담했다. 트럼프를 만난 첫 외국 정부 수반이었다.
당선자로 돌아온 트럼프는 이시바 총리의 회담 요청을 밀린 일정을 들어 거절했다. 그러자 아베 전 총리 부인 아키에(安倍昭恵) 여사가 비서 한 사람을 데리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 부부와 만찬을 했다. 다음 날 트럼프는 ‘이시바 총리를 빨리 만나고 싶다’고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아키에 여사는 남편의 정적(政敵)이던 이시바 총리를 위한 미국 방문 비용을 사비(私費)로 지출했다.
트럼프 취임 100시간 안에 한국 국익과 관련된 주요 정책 윤곽이 나올 거라고 한다. 트럼프를 만나러 누굴 보내야 하나. 쥐덫에 갇힌 못난 정치가 나라 목숨을 갉아먹고 있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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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韓 탄핵’ 카드, 다른 손엔 ‘與野政 협의체’ 카드. 냉탕·온탕을 오가는 거대 야당의 진심은?
○동짓날 큰눈 이어 한파 예보. 엄동설한 세월도 오늘부터 밤은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는 이치 못 막아.
-팔면봉, 조선일보(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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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게 줄 서는 세계… 우리만 오판할까 두렵다
[朝鮮칼럼]
트럼프 미국우선주의 정책, 각국이 성토하고 비방하지만
세계 도처 국제정치적 난제들 트럼프 희망대로 해결되는 중
중동은 이스라엘로 권력 몰리고 유럽은 너도나도 국방비 증액
이제 美는 대중 패권 경쟁 집중… 우리만 친중 굴종할까 두렵다
한국이 탄핵 정국의 혼돈에 휩싸여 세상사와 동떨어진 나라가 된 시기에, 나라 밖 국제 정세는 세기적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대외 정책을 다들 성토하고 비방하면서도,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채 출범하기도 전부터 세계 도처의 어려운 국제 정치적 매듭들이 트럼프의 희망에 순응해 스스로 풀어지고 있다. 다들 트럼프가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앞뒤 안 가리고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오직 미국의 국가 이익을 앞세워 돌진하는 그의 공격적 현실주의 외교 행태는 군사력보다 무서운 미국의 새로운 힘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변혁의 현장은 오랜 대립의 역사로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중동 지역이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강렬한 친이스라엘, 반이란 성향을 띤 트럼프 대통령이 미처 취임도 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앞장서 중동의 친이란 세력을 소탕 중이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하마스와의 보복 전쟁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중동 전문가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시리아 등 친이란 세력의 협공으로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처하리라 예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력 앞에 맥없이 몰락했다. 북한에 버금가는 잔혹한 독재 정권이라는 시리아의 친이란 아사드 정권도 지난주 반군 세력에 의해 소멸했다. 이제 세력권을 잃고 홀로 남은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여부만이 남은 현안이다.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탈퇴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막으려는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1990년대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 재무장과 국방 예산 증액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간 휴면 중이던 유럽의 무기 산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나토 전체 군사비를 70%나 부담하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3500억달러를 지출하는 동안 유럽의 지출액은 1000억달러에 불과한 불공평성을 비판한다. 미국이 나토에 잔류하려면 유럽이 안보 무임승차에서 탈피해 미국과 동등하게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토 회원국들은 이에 부응해 GDP 대비 국방 예산을 현재의 2% 미만에서 3%로 증액하고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 유럽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중동과 유럽의 이 같은 선도적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대로 대외 군사 개입을 줄이고 대중국 패권 경쟁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의 도래를 의미한다. 제반 상황은 제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보다 미국에 한결 유리하다. 당시엔 중국이 2027~2028년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등극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어서 미국이 시간에 쫓기는 처지였으나, 그간의 대중국 경제 봉쇄와 중국의 연이은 경제 정책 실패로 이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또한 당시엔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 일부가 미국의 적국인 중국과 밀착하는 일탈적 외교 행태를 보였으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냉전의 도래를 계기로 자유 민주 진영의 총결집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전개해 나갈 대중국 패권 경쟁은 경제적으로는 관세 전쟁과 공급망 통제를 통한 디커플링, 군사적으로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견제라는 형태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미국의 그런 대중국 견제는 중국의 패권 도전 잠재력이 소멸할 때까지 장기간 계속되겠지만, 특히 2026년 전후로 예상되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외교·군사적 움직임이 활발할 전망이다. 한국은 대만 문제에 개입되기를 원치 않겠지만, ‘상호 방위’ 의무를 지닌 미국의 동맹국이자 주한 미군의 대중국 전초기지 소재지로서 미·중 대결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한국은 갑작스러운 국내 정치 혼돈으로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미·중 대결의 시대에 임하는 큰 틀의 전략적 결단은 물론, 눈앞에 닥친 방위비 분담금 문제, 주한 미군 감축 문제, 미·북 정상회담 문제 등에 대한 대응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그 혼돈의 터널 끝자락엔 더욱 큰 외교적 재앙의 싹이 도사리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삼엄한 체스판 위에서, 어쩌면 한국은 국가 정체성과 동맹 의무를 망각하고 또다시 친중 굴종 외교로 회귀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외교적 일탈을 과거처럼 참고 방치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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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원들 15년 만의 연봉 인상 소식에 앞다퉈 “동결” 요구. ‘여의도 문법’으로는 해독 불가한 마법 같은 이야기.
-팔면봉, 조선일보(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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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親中 사대주의가 더 치욕적인 이유
우리 외교 안보가 길을 잃은 건 진짜 위협이 어디서 오는지 분간 못 하는 '위협 인식 오류' 때문
북한·중국이 '실존적' 위협인데 이를 제대로 못 보거나 안 보니 대북정책 왜곡과 한미관계 파탄
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고 유례없는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고 세계 12위 경제 대국의 국제적 존재감은 사라졌다.
중국과는 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주권 국가의 기본권을 제한당하는 '3불 합의'의 치욕을 자초했고, 이러한 중국의 패권적 횡포에 맞서기 위해 손잡고 공조해도 모자랄 일본과는 명분도 실리도 승산도 없는 싸움에 함몰되어 있다. 한·미 동맹은 불통과 불신으로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국민이 평화의 환상에 도취해 있는 동안 북한은 평화 파괴 능력을 증강하는 데 어느 때보다 광적으로 매달려 왔다. 이런 북한을 위해 제재를 해제 못 해 안달하고 남북 군사 합의서로 북한군의 동향에 대한 감시 정찰까지 포기했는데도 북한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노골적 능멸과 조롱으로 보답하고 있다. 한때 G20 정상회의와 핵 안보 정상회의를 주최한 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발언권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가 이 지경으로 추락하게 된 원인은 많지만 위협 인식(threat perception) 오류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위협 인식이란 우리의 생존과 안위에 대한 위협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인식'하는 것인데 여기에 오류가 생기면 적과 동지를 혼동하고 경계할 나라와 공을 들여야 할 나라를 분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외교 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실제적 위협이 아니라 위협 인식이다. 그 때문에 실존하는 위협과 인식하는 위협 간 괴리가 커지는 만큼 정책은 안보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결정된다.
우리에 대한 당장의 실존적 위협은 북한에서 오지만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혀 보면 역사적으로 우리의 자주독립을 유린한 세력은 예외 없이 역내 신흥 패권 국가였다. 히데요시의 일본, 홍타이지의 청나라, 메이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한 것은 그들이 당시 패권을 장악하는 데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조선이 혼자서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동아시아 패권국은 중국이고 21세기 중에 일본이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보 이해관계는 구조적으로 중국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고 일본과는 일치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 친중 굴종을 추구하는 것은 메이지 시대에 친일을 선택하는 것과 대세 편승(bandwagon)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하나는 조선이 개방과 개화의 길로 나가는 데 메이지 일본에서는 배울 것이 있었다면 현대 중국에서는 본받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제는 동맹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고 중국의 패권에 위협을 느끼는 다른 국가들과 손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역외 강대국과의 동맹이 불가능한 시대에는 역내 패권 세력의 속국이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대안이 있다. 21세기 친중 사대주의가 지난 세기의 친일보다 더 치욕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실존하는 중국의 위협을 직시할 능력을 마비시키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중국의 현실적 위협보다 우리의 인식 속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의 침탈이 남긴 트라우마가 여전히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여기에 조선시대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의 잔재가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의 유령이 위협 인식을 결정하도록 방치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버리지 못하면 과거가 미래를 가로막고 국민 정서가 국익을 지배하는 해악을 막을 수 없고 우리의 외교 안보 정책은 바로 설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초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도 잘못된 위협 인식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말로는 비핵화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비핵화를 저해할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정부가 평화 경제란 이름으로 제재를 허물고 경협을 재개하여 북한 경제에 숨통을 열어줄수록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고 비핵화를 거부할 체력만 키워준다는 단순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이 북한의 핵무장이 아니라 이를 되돌리려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서 온다는 주사파의 위협 인식 오류가 결국 대북 정책을 왜곡하고 한·미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근본 원인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前 외교안보수석, 조선일보(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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