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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한 건축주가 더 좋은 집을 얻는다] [땅값만 주고 산 폐가… ]

뚝섬 2025. 4. 6. 05:50

[어리숙한 건축주가 더 좋은 집을 얻는다] 

[땅값만 주고 산 폐가… slow, small, simple 나만의 둥지로] 

 

 

 

어리숙한 건축주가 더 좋은 집을 얻는다

 

헌 집 사서 새집으로 고치기

 

아내에게는 스케일 큰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헌 집 사서 새집으로 고치기’다. 굉장하지 않은가. 집 수리라는 작업은 엄청난 자금과 에너지,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무시무시한 이벤트다. 사람들은 낡은 집을 대대적으로 고쳐 사는 게 싫어서 아파트나 연립주택, 빌라 등에서 사는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사람은 전생에 죄를 지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아내와 나는 벌써 이 짓을 세 번째 하고 있으니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아니라 집 수리야말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할 때마다 든다. 

 

또다시 충남 보령에 있는 낡은 주택을 사서 고치고 있다. /편성준 제공

 

그러면서도 우리가 계속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임 목수’라는 든든한 일꾼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파트를 떠나 개인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장독대 때문이었다. 지리산 ‘제철음식학교’에서 고은정 선생에게 장 담그는 법을 배워온 아내는 언젠가부터 ‘장독대가 있는 집’을 꿈꾸게 되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도대체 장이 익지 않기 때문이다. 간장·된장·고추장은 햇볕과 바람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공동주택은 아무리 공기가 잘 통하는 곳이라도 마당 장독대만큼의 햇볕과 바람을 얻을 수 없었다.

 

조그만 장독대 하나 얻고 싶은 이유로 고른 게 성북동 언덕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돈이 별로 없으니 언덕 위에 있는 낡은 집이라도 감지덕지였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서촌 등지에서 한옥을 짓고 고치던 임정희 목수님을 소개받았고 그와 함께 집 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목수가 되고 싶어 한옥학교를 다녔던 임 목수님은 손기술도 좋지만 전체 작업 일정과 인력을 고르게 배분하는 PM(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을 특히 잘했다. 목수님이 짠 팀은 우리 집을 멋지게 고쳐 주었고 우리 부부는 그 집을 ‘성북동 소행성’이라 부르며 4년을 잘 살았다.

 

두 번째는 성북동에 있는 한옥이었다. 성북동의 골목길을 할 일 없이 쏘다니다가 빈집을 발견한 우리는 덜컥 계약부터 하고 임정희 목수님을 불렀다. 면밀한 계획 없이 매매 계약부터 한 우리를 보고 임 목수님은 혀를 끌끌 찼고 나는 그날부터 공사비를 구하러 은행을 돌아다녔다. 마침 둘 다 회사를 그만둔 시점이라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현장으로 가서 임 목수님에게 작업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고 그때그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임 목수님은 판단이 빨랐다. 우리의 주문이 정당하다 생각될 때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가차 없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한 대답은 “네” 한마디였다. 

 

거실 구조에 대해 의논하는 아내와 임 목수님. /편성준 제공

 

건축주인 아내와 나의 생각은 단순했다. 어차피 나는 이런 쪽엔 젬병이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집 수리에 대해서 아는 게 얼마나 되겠어? 그런데 목수나 미장공, 페인트공은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그 일에 이미 도가 튼 사람들이잖아.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런데 생각해 보자고. 클라이언트는 돈을 내는 사람이라서 언제든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잖아. 그러다 보면 전문가 의견을 뭉개기 쉽고…. 우리는 그런 관행을 바꿔 보고 싶었다. 나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고 아내도 출판 기획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돈 많은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조언에 밀리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은 우리라도 전문가 의견을 한번 존중해 보자. 그래서 임 목수님 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빈집을 사서 수리해 '성북동 소행성'이라 이름붙인 한옥 /편성준 제공

 

세 번째로 고치게 된 집은 엉뚱하게도 충남 보령에 있는 개인 주택이다. 보령으로 이사를 간 건 우연이었다. 우리는 둘 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까 꼭 서울에서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보령 한 달 살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했고, 대천과 보령이 사실은 같은 곳이라는 게 재밌었고, 대천해수욕장 해변을 걷다 보니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싶어 또 낡은 집을 한 채 사게 된 것이다. 우리 연락을 받고 보령으로 내려온 임 목수님은 또 한숨을 길게 내쉬었지만 결국 우리 집을 멋지게 고쳐 줄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도 했는데 세 번째라고 못 하겠는가.

 

흔히 건축주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에 가장 흔한 게 처음엔 “어머, 전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하다가 건물이 올라가는 동안 공부를 해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한 다음에 “이건 이렇게 했음 좋겠어요”라고 아는 척을 하는 거라 하지 않던가. 글쓰기 전문가인 나는 집 고치기 전문가인 임 목수님, 장 반장님, 김 목수님을 존중할 것이다. 그게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을 가져온다’는 뜻의 식자우환(識字憂患)을 피하는 길이라 믿으니까.

 

-편성준 작가, 조선일보(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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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집 파는 여자'와 폐가

 

몇 년 전 폐가(廢家) 한 채를 샀다. 110평 대지에 '슬레이트 지붕 삼간'이다. 집이 낡아 집값은 산정하지 않았고 땅값만 '비싸게' 지불하였다. 그래도 중소도시 아파트 한 평 값이 안 된다. 지금도 시골집에 살고 있는데 왜 샀을까? 마을 사람들은 흉물스러운 헌 집 문질러 버리고 고구마나 심으란다. 그래도 없애지 않고 있다.

정년퇴직 후 리모델링하여 한번 살아볼까? 정원과 텃밭은 어떻게 만들까? 생각만 많다. 자연스럽게 TV '집방'에 관심이 간다. '먹방' 못지않게 '집방'이 유행이다. '건축탐구' '구해줘 홈즈' '홈데렐라' '자연스럽게' 등 유사 프로그램이 많다. 시청률이 좋은지 재방송이 거듭된다. '자연스럽게(구례군 현천마을)'에 등장하는 배우 전인화의 세컨드하우스를 참고해볼까? 정답은 아니다.

 

필자가 정년퇴직 후 리모델링하여 살 계획으로 사둔 폐가. 터는 제비 집터와 같은 형국이다.

 

그 답을 일본 '집방'에서 찾았다(이리 말한다고 '친일파'로 비난하지 마시길.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뿐이다). 다름 아닌 '집 파는 여자(家売るオンナ)'이다. 2016년에 10부작 그리고 2019년에 속편 10부작이 방영되었다. 국내 모 채널이 더빙해 방영하기에 일본어를 몰라도 시청할 수 있다.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이다. 중요도를 따지자면 첫째가 밥[食], 둘째가 집[住]이고 옷[衣]은 맨 마지막이다. 옷보다 '먹방'과 '집방'이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까닭이다. '집 파는 여자'는 제작진(작가)이 풍수를 완벽하게 체화하여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장점이 있다. 풍수에서 집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풍수 고전 '황제택경'은 집을 음양의 기본[陰陽之樞紐]이며 인륜의 규범[人倫之軌模]으로 정의한다. 이어서 "인간은 집[宅]을 지어 가정[家]을 이루는데, 거처가 좋아야 집안이 번창한다"고 하였다. 인간 사회는 인륜을 전제로 하는 가정에서 시작하며 그 물적 토대가 집이다.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는 풍수를 "나라와 가정의 영원한 번영을 위한 것"으로 규정한다. "돈이 적더라도 풍수상 좋은 집을 사면 사업이 번창하여 부족한 돈을 메워준다"고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길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맞는 집이 따로 있다. 돈 많은 독거 할머니, 노후를 걱정하는 퇴직 부부, 성소수자, 맞벌이 부부, '돌싱녀' 4명, 공동 명의 주택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모녀, 점차 인기를 잃어가는 유명 유튜버, 파탄 직전의 불륜 부부 등 삶의 유형에 따라 적절한 집을 사고팔아 준다.

집은 가정을 유지시켜주고 행복을 늘려주는 물적 토대이다. "비와 바람을 이기는 지붕이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그 지붕 아래서 사랑이 자라게 하는 것"이 '집 파는 여자'의 임무이다. "팔지 못할 집이 없다." 살인 사건이 난 집도, P자형(字形) 대지 때문에 접근성이나 재개발이 어려운 집도 팔 수 있다. 인간이란 어떤 재능이 잠재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사를 통해 그곳에 살 사람들의 잠재력이 드러나게 한다. 따라서 집을 팔고 사는 행위를 그녀는 "make destiny operation(운명 만들기 작업)"이라고 말한다. 풍수의 운명 바꾸기[改天命]('금낭경')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 필자의 폐가 이야기이다. 터는 제비집터[燕巢穴]와 같은 형국이다. 이 형국의 이미지와 뜻을 최대한 살려, 퇴직 후 바뀌게 될 삶의 방식과 여건에 맞게 리모델링하고자 한다. 지금 사는 집은 북동향이지만, 이곳은 남향이라 뜨고 지는 해와 달[陰陽]을 바라볼 수 있다. 해와 달을 바라보면서 느리고(slow), 작고(small), 단순한(simple) 삶의 둥지로 만들 것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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