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인격장애인” 美 정신과 의사들 광고] ....
[“트럼프는 인격장애인” 美 정신과 의사들 광고]
[한·미 정권에 필요했던 건 북핵 폐기 아닌 TV용 이벤트]
[볼턴의 책은 한·미 동맹 생존을 묻는다]
“트럼프는 인격장애인” 美 정신과 의사들 광고
고대 로마의 미친 황제로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네로, 칼리굴라, 콤모두스다.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수금을 켜는 자기 탐닉적인 모습을 보였다. 칼리굴라는 주변 인물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콤모두스는 자신을 헤라클레스와 동일시하는 과대망상 증상을 보였다. 세 사람 모두 섹스에 집착하고 잔인했다. 물론 현대적인 정신질환의 기준으로 엄밀히 진단한 것은 아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APA)가 정신질환 통계 작성을 위해 사용하는 매뉴얼(DSM)이 있다. 이 매뉴얼의 5번째 개정판으로 2013년에 나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DSM-5는 정신질환을 22가지로 분류한다. 그중 하나가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미국 대통령 재선 도전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반사회적이면서 자기 탐닉적(narcissistic) 요소까지 있는 인격장애인이라는, 정신질환 전문가 225명 명의의 광고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이 광고는 반(反)트럼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연속 기획 중 하나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 측이 이 광고에 반박할 수 있는 길은 비슷한 수의 정신질환 전문가를 통해 골드워터 규칙(Goldwater rule)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배리 골드워터가 1964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팩트(Fact)라는 잡지가 정신과 의사들 상대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그를 ‘사이코’ ‘분열증 환자’라고 불렀다가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패했다. 이후 정신과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골드워터 규칙이 1971년 채택됐다.
▷DSM에 의한 진단은 ‘관찰 가능한 행위(observable behavior)’라는 기준에만 의존해야 한다. 광고를 낸 측은 “‘관찰 가능한 행위’에 무엇이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 1971년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수천 시간 트럼프의 행위를 관찰했으며 트럼프와 직접 교류했던 수십 명과의 인터뷰는 우리의 관찰 결과를 확증했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완벽하기 어렵듯이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기 어렵다. 누구나 약간은 편집적이거나 강박적인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성인(聖人)이나 돼야 정신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해 함부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다만 환자로까지 분류하지는 않더라도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이 있다. 정도의 지나침이 대통령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에 달렸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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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권에 필요했던 건 북핵 폐기 아닌 TV용 이벤트
청와대는 볼턴 전 미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왜곡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볼턴은 아주 구체적으로 미·북 핵협상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볼턴의 회고에서 드러나는 일관된 사실 중의 하나는 한·미 정권이 북핵 폐기의 실질적 내용이 아니라 TV 쇼에 몸이 달아 있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용 없는 성명에 서명하고 승리를 선언한 뒤 여기(싱가포르)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한다. 북핵 폐기에 진전이 없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순전히 TV 쇼를 위해 카메라 앞에서 미국 유권자들에게 '승리'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 쇼에 희생된 것은 '북핵 폐기'만이 아니었다. 한·미 연합훈련도 즉흥적으로 없어졌다. 우리 안보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도 못지않았다. 한국 정보 당국도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김정은을 핵 포기 길로 이끌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실질적 비핵화 협상보다는 남북 이벤트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무대장치 속에 각종 깜짝 이벤트들이 등장했지만 그 순간에도 북핵은 생산되고 있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제대로 얘기 한번 해보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이 전체가 김정은의 사기극이란 것이 명확해졌다. 핵을 버리기로 했다면 이렇게 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하노이까지 쇼를 연장해 '노딜' 사건을 만들었다. 그에 이어 즉흥적으로 판문점 미·북 정상회담 쇼까지 벌였다. 아무런 실질 내용 없이 TV 앞에서 연기만 했다. 지금의 결과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판문점 쇼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과 단 4분여 만날 수 있었다. 미·북은 문 대통령 참여를 꺼렸다고 한다. 트럼프는 쇼의 주인공을 독점하고 싶었고 김정은은 한국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북이 사실상 적대 관계를 종식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과장 차원이 아니라 현실을 극도로 왜곡한 것이다. 청와대는 "세 지도자의 비전과 용기와 결단의 산물"이라고 했다. 북핵 폐기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추진했다. 종전선언이 의미 있으려면 북핵이 없어지고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 반대로 가고 있었는데 무슨 종전선언인가. 모든 것이 쇼이고 이벤트이다.
-조선일보(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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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의 책은 한·미 동맹 생존을 묻는다
볼턴의 트럼프 대북 정책 실패 서술은 설득력 있어
유일하게 남은 의문은 북한 비핵화 여부 아니라
트럼프가 재선 성공할 경우 한·미 동맹 살아남느냐는 것
존 볼턴은 독특하게 미국적인 인물이다. 공무원이나 직업 관료가 아니면서, 정무직만으로 미국 정부에서 수십 년을 일했다. 소방관 아버지를 둔 볼티모어 출신의 노동자 계급 소년이었던 볼턴은 1960년대 예일대에 진학했다. 많은 동기들이 진보적 이상을 추구했지만, 볼턴은 1964년에 이미 배리 골드워터(반공주의자였던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그리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걸쳐 점점 더 중요한 관직을 맡게 됐다.
필요 시 이란과 북한 정권을 무력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볼턴을 2018년 트럼프가 그의 세 번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고른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볼턴은 가까이서 본 트럼프에게 경악했고, 출판을 막으려는 트럼프의 시도에도 이제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볼턴이 신간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지하고, 변덕스럽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국익을 사익보다 경시한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볼턴의 책은 세 가지를 분명히 했다. 첫째,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 시도는 그가 장기적 결실보다 단기적 홍보 효과에 집중해 실패했다. 둘째, 문재인 정부는 미·북 회담에 큰 역할을 했으며 그것이 한·미 모두에 비현실적 기대를 일으켰다는 비난을 지금 받고 있는 이유다. 셋째,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은 오싹할 만큼 분명하기 때문에 한·미 동맹은 큰 위기에 처해 있으며 트럼프 재선 시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
볼턴은 트럼프가 "홍보 활동"의 "큰 무대"가 될 것이란 이유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한 김정은과의 첫 회담을 간절히 원했다고 썼다. 트럼프는 "별 내용 없는 공동성명"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었다. 김정은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모호하게 보증하고 6·25 당시의 미군 유해 반환을 약속한 것 외에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는 더 많은 것을 줬다. 김정은을 세계 무대에 올려줬고 한·미 군사 훈련 중단에 동의했다. 볼턴은 트럼프가 훈련은 돈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모들이나 한국과 상의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썼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마치며 김정은은 제재 해제가 다음 수순이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그에 대해 열려 있으며, 생각해 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거의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높은 기대를 갖게 됐다. 볼턴은 한국이 트럼프를 끌어들였다고 비난하며, "이 모든 외교는 한국의 창조물이었다"고 썼다. 김정은은 아마 동의할 것이다. 이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김정은의 불쾌감과 한·미의 제재 해제를 얻어내기 위해 연내에 할지 모를 더 큰 도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볼턴은 트럼프가 2019년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갔을 때 옛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의 의회 증언을 보느라 밤을 새웠다고 썼다. 트럼프는 짜증이 났고 어떻게 스포트라이트를 되찾아 올지 고민했다. 트럼프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결정했다.
DMZ(비무장지대)에서 김정은과 세 번째로 만난 건 전적으로 트럼프의 생각이었다. 왜 트럼프는 DMZ 정상회담을 원했을까? 순전히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볼턴은 트럼프가 "사익과 국익의 차이를 몰랐다"고 썼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왜 미국이 6·25에 참전했고 주한미군을 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동맹국들이 "비용×150%"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은 교착 상태에 있다.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승인했던 16% 인상안을 거부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최근 주독미군 삼분의 일 철수 명령을 내린 것처럼 주한미군의 일부 혹은 전부를 철수시키려 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볼턴이 더 나은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의 대북 정책 실패에 대한 서술은 설득력 있다. "4개 행정부가 연속해서, 거의 30년간에 걸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의문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인가가 아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한·미 동맹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다.
-수미 테리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조선일보(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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