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보는 게 독서가 될 수 없는 이유] [대통령의 서재]
[유튜브 보는 게 독서가 될 수 없는 이유]
[대통령의 서재]
유튜브 보는 게 독서가 될 수 없는 이유
요즘 골목책방은 ‘인스타 성지(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촬영 명소)’가 된 곳이 많지만 책방 주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손님들이 책은 안 사고 근사하게 진열된 책들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책방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또 책 판매는 줄어드는 반면 인테리어 소품용 모형 책은 잘 팔린다고 한다. 책은 안 읽어도 책이 풍기는 지성미는 갖추고 싶다는 게 요즘 세태다.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이라고 읽은 성인 비율(종합독서율)은 지난해 기준 43%다. 정부의 독서실태조사가 처음 시작된 1994년 이후 최저치다. 30년 전 이 비율은 86%였다. 조사 대상자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다. 일하느라 시간이 없고, 유튜브 등 책 이외에 다른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0, 20대 사이에선 유튜브 같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독서의 일종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독서 인구는 줄지만 유튜브로 책을 소개하는 ‘북튜브’ 채널은 인기다. 가성비 높은 지식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볼거리는 늘었는데 시간이 한정돼 있다면 한 권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독서보다 10분∼1시간 이내로 핵심을 추려주는 영상에 사람들이 몰릴 법도 하다. 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슈와 정보를 정리해주는 지식 콘텐츠가 많아 유튜브로 세상을 배운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서만큼 도움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유튜브를 볼 때와 독서를 할 때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 영상은 완제품 형태로 눈을 거쳐 뇌리에 바로 맺힌다. 뇌가 일할 필요가 없다. 반면 책은 뇌를 바쁘게 만든다. 글은 설명과 묘사, 정보를 담은 원재료일 뿐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머릿속 지식과 경험, 정서와 뒤섞이면서 활발한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게 되는 게 이런 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영상을 100명이 보면 거의 비슷하게 기억하지만 책 한 권을 100명이 읽으면 각기 다른 100개의 스토리가 생긴다. 스쳐 흘러가는 영상과 달리 책에서 읽은 건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나만의 맥락이 담겨 저장되기 때문이다.
▷책 대신 유튜브 보는 습관이 들면 당장은 단순명료하게 가공된 지식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장기적으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궁금한 주제를 짧고 흥미롭게 만든 영상만 골라 보고, 그마저 메뚜기 뛰듯 띄엄띄엄 보거나 ‘세 줄 요약’에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단순화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영상 제작자가 주관적으로 편집한 지식에 길들여지면 흑백 논리에 잘 휘둘리고, 가짜 정보에 대한 분별력도 떨어지기 쉽다. 독서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정도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준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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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서재
책이 없었다면 사랑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을 수 있다. 문명화한 규범으로서 사랑은 애초 책(요즘 같으면 TV 드라마나 영화)을 통해 전파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나 김동인의 '김연실전' 같은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타락에 빠뜨리는 결정적 함정은 연애의 환상을 심어준 '위험한 소설'이다. 자신이 읽은 책의 세계를 맹종하지만 않았어도, 불쌍한 그 여인들은 파멸할 이유가 없었다.
'삶을 모방한 책'이 아니라 '책을 모방한 삶'이 대세가 된 세상에서 책은 마음의 양식 이상을 의미한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read)'는 경구에도 묘한 아이러니가 스며든다. 삶이 책을 따라가는 관계 속에서 책은 원본이고 책 읽는 사람은 복사본이다. 그러므로 중심이 약하거나 지나치게 순수한 독서가는 자칫 자신이 읽은 책의 그림자로 전락해버릴 수 있다.
푸시킨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여주인공이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점을 인식하면서이다. 자신을 거부한 남자의 서재에 들어가 그가 남겨놓은 책들, 그 책에 남겨진 갖가지 자국을 '읽음'으로써 그녀는 비로소 이제껏 동경해온 상대의 실체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는 과연 무엇인가?" 그녀의 머리에 떠오른 이 질문은 '그는 누구인가?'보다 한 차원 높은 물음이다.
누군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가는 실제로 그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타인의 책꽂이를 염탐하며 그의 취향과 수준, 그가 살아온 삶 전체를 짐작하고는 한다. 책을 뽑아 펼쳤을 때 여백에 끄적인 메모라도 있으면 여간 재미있지 않다. 그때는 그 흔적 자체가 텍스트다. 책을 스쳐 간 순간의 파장을 상상하기도 하고, 자신과의 동질성 혹은 차이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인물 내면의 수수께끼를 풀어볼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서재는 매혹적이다. 무서운 곳이다. 가장 은밀한 동시에 자칫 들키기 쉬운 위험한 공간이다. 그래서 서재는 원래 밀실로 여겼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서재와 화장실을 동격으로 간주했고, 고대의 서재와 화장실은 심지어 같은 벽지로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유와 은둔과 고독을 누릴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자신만의 골방"을 염원했던 르네상스인 몽테뉴는 외부로부터 격리된 탑을 세워 그 안에서 20년간 책 읽고 글만 쓰다 갔다. 탑 꼭대기 대들보에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직접 새겨놓았다.
이렇듯 감춰두었던 내실의 서재가 언젠가부터 과시 공간으로 변모했다. 서재를 세속적 사교 장소로 삼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에서 기원을 찾게 되는데, 현대에 오면서는 훨씬 적극적인 자기선전 무대로 진화했다. 주인의 참된 개성보다는 보편적 특수성(얼마나 모순인가!)을 증명하는 데 더 급급한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통령을 위시한 공인들의 서재가 특히 그렇다.
한때 '아무개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급 정치인의 독서 체험 기록물이 유행했다. 물론 인물 홍보용으로 기획된 것이었지만, 어떻든 문헌에 따르면 우리의 전·현직 지도자들은 다독가이다. 수감 경험이 있건 없건(감옥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다),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그들은 대부분 책을 두루 많이 읽어 국정 운영에 활용했다 한다. 현 대통령은 활자 중독이 염려될 만큼 책을 좋아한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대통령들이 공개한 독서 목록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정치·사회·경제·과학 분야에 걸쳐 회자되는 최신 서적, 당대의 화제작, 역사물, 리더십 훈련서가 주를 이룬다. 통치를 위한 참고서, 통치 이념의 학습서가 많은 데 비해 순수 문학, 철학, 역사서는 거의 없다. 출판사의 기획 의도가 그런 것인지, 긴 호흡으로 책 읽을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대통령의 깊은 내면보다는 수험생의 필독서를 재확인시켜주는 책이 많다. 공부한 흔적은 있어도, 은밀한 자아와 마주친 흔적은 잘 안 보인다.
대통령의 서재가 궁금하다. 현 대통령은 취임 후 '대통령의 서재'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해 국민 추천 도서 580권을 청와대 본관 서재에 배치했다. "국민의 생각을 가까이서 듣고, 공감해 소통하겠다"는 취지는 훌륭하다. 그러나 그 서재는 대통령의 진짜 서재가 아니다.
러시아 시인 요십 브로드스키가 말하기를, 국가 지도자를 뽑을 때 정치적 강령 대신 독서 목록을 판단 기준 삼는다면 나라의 불행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후보에게는 외교 정책 이전에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견해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숨어 있는, 진짜 서재가 궁금하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조선일보(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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