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숙성 연수가 높을수록 맛도 좋을까?] ....
[위스키 숙성 연수가 높을수록 맛도 좋을까?]
[위스키의 성지 스코틀랜드]
[양반집의 반주(飯酒)]
위스키 숙성 연수가 높을수록 맛도 좋을까?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사람처럼 전성기가 있다, 정점을 지나면 꺾인다… 주로 10~12년 제품 출시
일본 요이치 증류소가 오크통에서 증류액이 숙성되는 과정을 표현한 모습. /김지호 기자
입문용 위스키만 즐기다 보면 고숙성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18년 숙성된 제품만 마셔도 체감하는 맛의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25년, 30년 넘게 숙성된 제품들은 대체 얼마나 더 맛있는 걸까? 숙성 연수가 높을수록 위스키의 맛도 좋아질까?
위스키도 사람처럼 전성기가 있다. 젊었을 때 아무리 잘나가도 어느 시기에 정점을 찍고 나면 꺾인다. 증류기에서 갓 탄생한 증류액은 오크통과 만나 친해지는 과정을 거친 뒤 위스키로 재탄생한다.
오크통은 종류에 따라 바닐린, 타닌, 락톤, 리그닌 등 다양한 맛 성분을 가지고 있다. 증류액은 이런 다양한 맛을 빨아들이면서 서서히 오크통과 닮아간다. 기온에 따라 오크통이 수축하고 팽창하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오크통이 가진 맛 성분이 증류액에 스며드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숙성이라 부른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가 되려면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하지만 증류소는 최소 10~12년 이상 숙성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증류액과 오크통이 적당히 잘 버무려져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해서다.
위스키는 숙성할수록 거칠고 튀는 성격들이 깎여나간다. 그 과정에서 성숙해지며 풍미는 부드럽고 복합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이다. 지나치면 오크통이 가진 풍미가 위스키 맛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과숙성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구간이다. 위스키가 가졌던 좋은 맛 성분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쓰디쓴 ‘오크 물’로 변한다. 40년 넘게 ‘잘못된 숙성’을 거친 위스키를 마신 적이 있다. 과장 좀 보태면 나무껍질을 씹어도 그보다는 달콤했을 것이다.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위스키가 가장 맛있는 순간을 ‘스위트 스폿’이라고 부른다. 마스터 블렌더들은 스위트 스폿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크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시음한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누수는 없는지 자식처럼 신경 쓰고 돌봐야 한다. 잠깐 한눈판 사이에 엉뚱한 길로 샐지도 모른다.
위스키 라벨에 쓰여 있는 큼지막한 숫자는 증류액과 오크통이 접촉한 시간을 말한다. 이는 증류소가 숙성 연수만큼 사람이 품을 들여 관리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연간 2%씩 ‘천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매년 판매할 수 있는 위스키의 양과 돈이 증발하는 셈이다. 맛을 떠나 숙성 연수가 가격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는 맛과 별개로 숫자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게 있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 아무리 좋은 차(茶)도 너무 오래 우리면 써진다. 그렇다고 너무 짧게 담갔다 빼면 맛이 싱겁다. 세상만사에 적당한 타이밍이 있듯이.
위스키는 취향의 영역이다. 고상하고 얌전한 제품이 좋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톡톡 튀는 개성 강한 제품에 끌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맛의 감옥에 가둘 필요는 없다.
-김지호 기자, 조선일보(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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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성지 스코틀랜드
세계 최고 위스키 생산지 스코틀랜드의 자연은 커다란 산과 작은 폭포, 계곡으로 어우러져 있다. 위스키 재료는 들판의 보리와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연수, 이스트가 전부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카치 상표에 붙는 ‘글렌(Glen-)’은 ‘계곡’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양조장이 글렌을 끼고 있다. 피트가 녹아들어 엷은 갈색을 띠는 물은 글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120종이 넘는 싱글몰트가 탄생한다. 위스키는 그 많은 종류만큼 맛과 향, 무게감과 액체의 흐름도 각각 다르다. 모두 공부할 수는 없다. 맛있는 위스키를 만나면 많이 마시면 된다.
스코틀랜드 양조장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위스키를 식사에 곁들이고, 나른한 오후에는 스콘을 구워 티타임에 같이 마시기도 한다. 특히 쌀쌀한 늦가을, 산책 후 따듯한 벽난로 앞에서 마시는 위스키 한잔은 그야말로 생명의 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저서 ‘위스키 성지 여행’에서 기술한 대로 궂은 날씨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 위스키는 최적의 동반자다. 백미는 아침에 마시는 위스키다. 현지 애호가들은 아침 공복에 신중하게 시음하거나 따듯한 오트밀에 부어 먹는 맛을 즐긴다. 실제로 이곳에서 10년이나 12년산은 ‘아침 위스키(Breakfast Whisky)’라고 부른다.
전통이 과학과 만나는 위스키 제조에는 물리학, 금속학, 화학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스키는 과학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한다. 누구도 똑같이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는 수백 년간 이어졌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미스터리다. 아마도 자연이 참견하는 부분일 것이다. 스코틀랜드 양조장 직원들은 수십 년을 일하면서 평생 위스키와 함께하고 그곳에서 은퇴한다. 자식들도 그 일을 물려받는다. 그러면서 황금빛 보리밭을 바탕으로 ‘위스키’라는 시(詩)를 쓴다. 스코틀랜드에는 “브라운색 음료의 맛을 아는 것은 50세가 넘어서다”라는 표현이 있다. 위스키가 인생 여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유 쏟았다고 울지 마라. 위스키였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 - 리즈 매버릭
-박진배 교수, 조선일보(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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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집의 반주(飯酒)
한국이 고급 위스키 소비에서 11년째 세계 1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한 해 인구가 우리보다 6배나 많은 미국이 47만 상자를 소비한 데 비해, 한국은 무려 69만 상자를 마셔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 집안의 필수적인 덕목이 '접빈객 봉제사(接賓客奉祭祀)'이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 접대를 잘해야 하고, 조상 제사를 잘 모시는 일이 양반 집안이 갖추어야 할 품격이었다. 접빈객이 살아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평적인 배려라고 한다면, 봉제사는 죽은 조상들에 대한 수직적인 봉사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덕목을 이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술이었다. 손님이 오면 우선 술상을 봐와야 할 것 아닌가. 제사 지내는 데 술이 없을 수 없다.
고려시대는 제사를 지낼 때 주로 차(茶)를 많이 올렸다고 전해진다. '차례(茶禮)'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차가 술로 변했다. 차를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는 배가 고플 때 요기가 될 수 없지만, 집에서 담근 술은 어느 정도 칼로리가 있는 음식이기도 하였다. 술은 집집마다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상비식품이 되어 버렸다. 집집마다 술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양반 집에서 제사지내는데 술이 떨어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자기 조상 제사에 올릴 음식을 어떻게 남의 집에 빌리러 간단 말인가. 이러다 보니 양반 집안의 며느리나 안주인들은 술 담그는 데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술 맛은 그 집의 안주인 내공에 달렸던 것이다. 적절한 발효의 도수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에도 2~3차례씩 술독에 귀를 대고 뽀글뽀글 술 익는 소리를 체크해야만 하였다.
이렇게 만든 술을 바깥주인은 식사 때마다 반주(飯酒)로 즐기곤 하였다. 놋쇠로 만든 밥그릇 뚜껑은 솥에서 퍼 온 밥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열이 가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 뚜껑에 술을 따랐다가 3~4분 후에 먹으면 술이 적당히 데워져서 부드럽게 된다. 이게 반주의 원형이다. 조선시대 양반집안 모두가 각자 집에서 '홈 메이드 술(家釀酒)'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술 종류는 아마도 수천 가지 이상이 되었지 않나 싶다. 조선시대는 가양주의 전성기였다.
-조용헌 살롱, 조선일보(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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