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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가 말 못 하는 '균형 발전'의 허상] ....

뚝섬 2025. 4. 23. 09:56

[세종시가 말 못 하는 '균형 발전'의 허상]

[대선 때마다 불거지는 세종시 문제, 脫정파 국가적 합의를] 

[‘서세원’ 과장과 세종 ‘벼락거지’]

 

 

 

세종시가 말 못 하는 '균형 발전'의 허상

 

[강경희 칼럼]

선거철마다 정치인 말의 성찬에 집값 출렁이는 정치 테마주
세금 쏟아붓고 공무원 경쟁력은 뒷걸음.. '세금 주도 발전' 한계

 

조기 대선이 다가오니 ‘행정 수도’ 세종을 향한 구애가 넘쳐 난다.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 “국회 세종 완전 이전” “노무현의 꿈 ‘행정 수도’ 이제는 완성해야” “노무현의 꿈, 박근혜의 소신, 개혁신당이 완성”이라고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세종 시대’를 외치는 걸 보면서 20년 전 튀르키예를 취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도 이전 문제가 화두로 떠올라 2004년 본지는 ‘수도 이전, 외국서 배운다’라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했다. 당시 튀르키예 취재를 맡았다. 오스만 제국의 수백 년 수도였던 이스탄불 대신, 건국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1923년 수도를 앙카라로 정했다. 제국과 단절하는 공화국의 상징이 필요했고, 영토가 축소돼 국토 서쪽 끝이 된 이스탄불을 계속 수도로 사용하기도 적절치 않았다. 동서 길이가 1600㎞에 달하는 장방형 국토에서 앙카라는 내륙으로 450㎞ 들어간 곳에 있다. 인터뷰한 튀르키예 교수가 “한국은 새로 옮길 수도가 얼마나 떨어져 있냐”고 묻길래 “120㎞쯤 된다” 했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 가까운데 굳이 뭐 하러 옮기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 학자는 이런 조언도 해줬다. “행정 수도라 해도 행정 기능만 있으면 안 된다. 한 도시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독자적 경제 기반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 행정 수도 이전 구상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가 안보 때문이었다는 것이 손정목 도시 계획 전문가(저서 ‘서울도시계획 이야기’)의 설명이다. 1975년 초까지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이 남침하면 그 많은 인구가 도강(渡江) 피란할 수 없다”며 강북 억제책과 강남 이주책을 폈다. 그러다 인도차이나반도가 공산화되고, 북한이 개발한 장거리포 사정거리가 200㎞를 넘는 걸 보면서 강북 억제가 아닌 서울 및 수도권 인구 재배치를 고민했다. 1977년 2월 ‘임시 행정 수도’ 구상을 발표하고 책임자를 오원철 중화학공업기획단장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수도는 서울로 유지하면서 임시 행정 수도 계획안은 장기 과제로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1990년대 북한이 일본까지 사정권으로 하는 노동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안보 목적의 행정 수도 이전은 더 이상 논할 의미도 없어졌다.

 

그렇게 사라진 구상인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국토 균형 발전’ 명분으로 파격 공약을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의 신행정수도법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됐지만, 충청권에 어필하는 정치 상품으로 등장한 이상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기업인’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반대했는데 ‘정치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을 관철시켰다. 이후 선거 판에서 행정 수도 세종, 공기업의 지방 분산 같은 노무현식 ‘균형 발전론’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단골 프레임으로 등장해 왔다. 문제는 명분은 그럴듯한데 투입 대비 부가가치 창출 효과는 별로 없는 ‘세금 나눠 먹기 발전’이라는 데 있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몰린 초집중 현상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처방으로 ‘행정 수도 이전’은 갈비뼈 골절에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반창고 붙인 격에 불과하다. 행정 수도란 쉽게 말하면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에게, 엄청난 세금 들여 새 사무실 지어주고 이사시키는 것이다. 그 많은 세금을 그리 쓰지 말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마중물로 썼어야 한다. 가령 서울에 집결한 기업, 대학들 연구소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남하시키고 대전의 KAIST, 대덕 연구 단지와 연계되는 민-관-학의 세계적 ‘두뇌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현재의 수도권 집중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이후로는, 수도권 이남에 제2, 제3의 강력한 신산업 경제권과 그것의 중추 대도시를 키워내지 못해 생긴 현상이다. 정치인은 ‘균형 발전’ 명분으로 곳곳에 골고루 세금 뿌려 표 얻는 데 집중하지, 차별화된 전략의 ‘불균형 성장’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세종시에 그 많은 세금을 들였는데 정부 기능이 이원화되면서 공무원 윗분들은 서울 국회를 오가는 데 시간 쏟고, 세종에 남은 공무원들의 정책 수립 경쟁력은 뒷걸음질 쳤다. 국토 균형 발전 목표는 조금 달성했을까. 2012년 특별자치시 출범 당시 인구 11만명에서 2024년 39만여 명으로 증가했는데 순유입 인구의 24%만 수도권에서 갔다. 64%가 대전을 비롯해 충청권 인구를 흡수한 ‘빨대 효과’다. 세종시의 성장 호재는 아직 서울에 남은 국회, 대통령 집무실 등이 더 내려가는 것뿐이다. 그래서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의 말잔치에 집값이 출렁거리는 정치 테마 도시가 됐다. 정치가 벌여놓은 ‘말로만 균형 발전’의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있느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인 정치판 국회를 몽땅 세종으로 옮겨 공무원의 이동 거리를 줄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딱지를 떼고 국격에 걸맞게 수준 높아질 때까지 세종시 밖으로 외출을 금한다는 조건까지 붙이면 좋겠다는 공상도 해본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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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때마다 불거지는 세종시 문제, 脫정파 국가적 합의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4.1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7일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임기 내 완공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세종에 국회 분원과 제2 대통령 집무실을 두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이미 합의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사안이다. 세종의사당은 2031년, 제2 대통령실은 2027년 완공 예정이다. 이 후보는 이를 조금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여기에서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 본원과 대통령실의 세종 완전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른 대선 후보들도 비슷한 공약을 언급하고 있다. 모두 충청권 표를 의식한 선거 전략이기는 하지만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이제는 매듭지을 때도 됐다는 여론도 많다.

 

외교 안보를 제외한 행정 부처가 세종으로 내려간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장·차관은 서울, 국·과장은 길 위, 사무관 이하는 세종을 맴도는 행정 비효율과 낭비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수시로 보고해야 할 국회와 대통령실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세종과 서울을 오가며 길에 뿌리는 돈과 시간, 기회 낭비는 추산도 어려울 것이다.

 

지금 세종 청사에서 간부가 자리를 비우는 날을 ‘어린이날’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날이면 자리를 비우거나 인터넷 쇼핑 등을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민간 경쟁력이 중요해진 시대이기는 하지만 정부와 관료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정부 효율과 관료의 수준이 떨어지는 국가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무릅쓰고 ‘국토 균형 발전’을 한다며 세종시를 만들었지만 수도권 집중은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 집값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넘게 모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주요 기관과 기업·은행, 대학·병원이 집중돼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수도권 집중 완화가 출생률을 높인다’는 보고서까지 냈다. 서울과 지방 격차를 줄일 비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 이전은 2004년 위헌 판결이 났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수도 기능을 나누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여전하다. 통일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 부처의 세종 이전은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막대한 행정 비효율과 수도권 집중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세종시 문제’는 선거용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파를 떠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국가적 논의로 합의를 이뤄야 한다.

 

-조선일보(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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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 과장과 세종 ‘벼락거지’

 

세종시 정부청사에 있는 한 부처가 청와대에 파견할 선임 행정관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파견 보낼 국장급 내지 고참 과장급이 죄다 세종시와 수도권 등에 집 한 채씩을 가진 2주택자였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파견되려면 한 채를 팔아야 하지만 그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세종시 집값이 계속 오를 게 뻔한데 왜 파냐는 것이다.

 

▶세종시 관가에선 ‘서세원 과장' ‘서세원 국장'이 선망의 대상이다. 서울에도 한 채, 세종에도 한 채를 줄인 말이다. 정부 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갑자기 거주지를 옮겨야 했던 공무원에게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 분양하는 ‘특공’ 제도가 운영돼 왔다. 지난 10년간 세종시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공무원은 2만5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000여 명은 집을 팔았고 나머지는 보유 중이다. 서울 집은 그대로 둔 채 세종에 특별 분양을 받은 ‘서세원’들이 최고의 ‘관(官)테크’ 수혜자가 됐다.

 

▶지난달 초, 다주택자이던 여성가족부 차관이 포기한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의 추가 분양에 무려 25만명이 몰렸다. 전용면적 99㎡(30평) 크기의 이 아파트는 2017년 12월 당시 분양가가 4억6000만원 정도였는데, 3년 새 급등해 인근의 비슷한 크기 아파트가 14억원에 팔렸다. 내년 6월 입주 때면 시세 차익이 10억원도 넘을 것이라는 기대에 ‘세종 로또’가 됐다. 올해 전국에서 집값 상승 1위 지역이 세종시다. 지난 8월 세종시 최고가 아파트는 15억7000만원이었는데 이달 초 매매가 17억원이 나오면서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세종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세종시 이전 후에 임용된 신입 사무관들은 ‘특공’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면서 ‘세종 벼락거지’라 자조한다. 특공 물량도 점점 줄어 관가에서는 ‘행4-과4-중5’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특공 아파트 분양 기간이 4년 남은 행안부와 과기부, 세종시로 이전하게 되면 5년간 특공 자격이 유지되는 중기벤처부 공무원을 뜻하는 말이다.

 

▶규제 지역으로 묶여 주춤하던 세종시 집값은 지난 7월 여당에서 ‘행정수도 이전론’을 꺼내면서 가파르게 올랐다. 내년 예산안에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 설계비까지 반영됐다. 땅값도 마구 오른다. 세종시 땅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세종시로 간 정부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올랐나. 아파트값의 10분의 1이라도 올랐나.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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