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의 소중함 일깨워 준 총선]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를.. ]
[삼권분립의 소중함 일깨워 준 총선]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를 살릴 것인가]
삼권분립의 소중함 일깨워 준 총선
야당 200석 이상이었다면 국회 권력 앞에 행정부 무력화
견제받지 않는 권력 부패했던 역사의 교훈 되새겨야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승부 추가 확실히 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판세 분석이 쏟아지던 이달 초, “야당의 압승을 경계하는 중앙 부처 공무원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어떤 경우든 야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처음엔 “역시 공무원은 집권 여당 편인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찬찬히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무원들이 걱정한 대상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행정부’였다. 행정·입법·사법부의 3권분립(三權分立)을 얘기할 때 행정부로, 입법부와 구별되는 좁은 의미의 정부다. 직업이 공무원인 사람들답게 입법부 권력의 비대화로 행정부가 무력화되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관료들은 야당이 200석을 넘더라도 대통령 탄핵과 개헌 가능성은 낮게 봤다. 탄핵의 최종 결정권은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확정된다. 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경우 본전도 못 건지는 리스크(위험)가 따른다.
/연합뉴스
최악의 시나리오는 거대 야당이 법률 제·개정권을 십분 활용해 행정부의 권한을 뺏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수단은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위임해 놓은 각종 행정조치를 상위 법체계인 법률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에 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세율은 법에 정해져 있지만,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은 시행령으로 조정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 개정 절차 없이 보유세를 낮출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세율뿐 아니라 과세표준까지 법률로 정해놓으면 행정부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정부가 보유세 부담 완화라는 정책을 펴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이라고 반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에서 재의결하면 된다. 그게 200석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다. 이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세금 감면 조치는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많이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622건의 법률과 1886건의 대통령령이 있다. 법률에 많은 내용을 담을수록 국회의 권한은 강화되는 반면, 대통령령으로 상징되는 행정부 권한은 위축된다.
미국은 의회 권력이 비대해지더라도 대통령령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행정부의 권한을 보장한다. 대통령 임기는 4년인데 총선은 2년마다 치러져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정부 때 만든 ‘건강보험법(오바마케어)’을 폐지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도록 한 조치가 모두 행정명령으로 이뤄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모든 금(金)을 국유화하고 금의 소유와 유통을 불법화하는 초법적인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과거 독재 체제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약했던 긴급조치와 같은 행정권 남용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의 제정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국회가 위임해 주지 않으면 대통령령을 발령할 수 없는 것이다.
1941년 독일 의회에서 히틀러가 연설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국가권력의 집중을 막는 삼권분립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핵심 원리다. 영국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였던 존 액턴 경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일수록 독재와 부패의 길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독재란 행정권의 남용을 의미하지만, 이런 상식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국회가 행정부를 압도하는 입법부 독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넘어 삼권분립까지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나지홍 기자, 조선일보(24-04-18)-
_____________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를 살릴 것인가
‘20년 집권’ 기세 간 곳 없이 前대통령 사면 띄운 文 정권
압도적 지지→폐족 퇴출 반복… 우리 민주주의가 앓는 重病
문빠, 박빠처럼 경멸 대상 되면 권력 하산길 위태로워질 것
문재인 정권이 추락하고 있다. 민생은 악화일로인 데다 코로나 재난의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20년 집권을 장담하던 기세는 간 곳 없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거론한 배경이다. 문 대통령이 ‘탈정치’를 선언하면서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 정체성) 이미지를 바꿀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 제왕적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일개 선언문으로 은폐하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행위가 정치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탈정치 선포는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2021년 신년인사회'에서 화상으로 연결된 참석자와 함께 파이팅을 하고 있다. 2021.01.07./뉴시스
문 정권의 조락(凋落)이 가리키는 진정한 문제는 대한민국의 성취였던 한국 민주주의가 중병(重病)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치에선 압도적 지지로 출범했던 정권이 정치 폐족으로 퇴출되는 비극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집권 초기의 국민적 환호는 너무도 빨리 총체적 환멸로 대체된다.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되풀이되는 악순환이다. 국민적 열정과 국가 에너지의 낭비가 극심하다. 정치 리더십의 일탈과 6공화국 헌정 체제의 결함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탓이다.
문 정권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를 살릴 것인가’라는 성찰로 승화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최대 문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민주 절차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동원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공격했다는 데 있다. 선출된 권력이 지지층을 앞세워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하고 무절제한 권력 행사를 일삼을 때 우리 헌정 체제는 경악할 만큼 취약했다. 현대 공화정의 모태인 미국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대선 불복이 빚어낸 갈등이 미국 민주주의를 총체적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문재인 정권 4년 통치는 민주주의의 미명으로 헌정 질서를 해체한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과 5·18 역사 왜곡 처벌법이 보여주듯 문 정권은 시민적 자유와 권리에 입각한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해 왔다. 대한민국 헌정 체제 안에서의 경쟁자인 보수 야당과 비판 시민들을 청산 대상으로 ‘좌표 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문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 남용을 헌정 질서 차원에서 제어하려 한 자유언론·검찰·법원을 국가의 적(敵)으로 공격했다. 민주주의의 외형(外形)만 유지하면서 정치적 경쟁자와 비판 세력을 박멸하려는 전체주의적 전쟁 정치는 한국적 연성 파시즘의 출현을 의미한다.
현재 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전직 대통령 감옥행’이라는 한국 정치의 저주를 피하는 데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 퇴임 이후를 보장하고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힘은 공수처 같은 정권 보위 기구가 아니라 민주적 규범에 충실한 통합 정치에서 온다. 한국 민주주의를 살릴 통합과 화해의 정치는 문 대통령이 문빠들의 맹동(盲動)을 제어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박빠가 박근혜 전 대통령 몰락을 부른 것처럼 문빠는 문 대통령이 국민적 신망을 잃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성 파시즘과 결합한 포퓰리즘을 제어해야 한국 민주주의가 산다. 문 대통령이 ‘양념’으로 공인한 문빠의 폭주는 다수결 민주 정치의 배리(背理)를 증명한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공격하고 시민적 이성을 부정하는 문빠는 민주주의의 수치이자 정치적 재앙이다. 파시즘이 낳은 일란성 쌍둥이면서도 서로를 근친 증오하는 문빠와 박빠의 횡포를 시민들은 경멸한다. 사랑과 두려움의 상징이던 정치인이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건 몰락의 징후다. 문 대통령은 민심의 환멸이 분노 어린 경멸로 변할 때 권력의 하산 길이 위태로워진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조국 사태와 윤석열 파동을 거치면서 많은 시민이 문 정권 지지를 철회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코로나 재앙도 민심 이반을 앞당기고 있다. 특히 부동산 참사가 결정타를 날렸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산의 상실을 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 정권이 파시즘적 적대 정치를 고집하면 폐족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젠 분열의 정치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때다. 통합과 정의의 실천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를 살릴 단 하나의 길이다. 민심의 격류는 오만한 권력을 쓸어가 버린다. 문 정권이 이대로 폭주하면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태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정을 일신(一新)해야만 한다. 지금이 나라 사랑을 증명할 최후의 기회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1-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