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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죽게한 자를 민주화 유공자로… 그와 이별 뒤 '별의 순간' 왔다] ....

뚝섬 2021. 5. 4. 06:18

[‘그’에게 이별을 고한 뒤, 내게 ‘별의 순간’이 왔다] 

[‘직접 챙기겠다’던 분 어디 계십니까]

 

 

 

‘그’에게 이별을 고한 뒤, 내게 ‘별의 순간’이 왔다

 

[인터넷 논객의 시선]

 

부산 출신 인권 변호사… ‘그’의 말은 아름답고 꿈은 찬란했는데
전경 불태운 자들 민주화 유공자 만든 ‘그’… 헛된 말들과 작별
시급 5000원에 골프장서 공 줍던 밤, 비 맞은 별들이 날 두드렸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는 자 또는 사회적 유명 인사에게만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도 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대전환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나에게 별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청와대 청원 ‘시무 7조’로 43만의 동의를 이끌어낸 그때였을까. 아니면 논객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유명 일간지에 기고문을 싣게 된 지금일까. 아니, 어느 쪽도 아니다. 내 별의 순간은 그보다 훨씬 전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이런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겐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예전의 나로 되돌아갈 것이다.

 

나는 별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 누군가의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부산의 상고를 졸업하고 인권 변호사에서 변두리 정치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던 그는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있었고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가난한 자를 대신해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말했고 기득권과 가진 자에게 맞선 정의를 말했다. 그의 말은 아름다웠고 그의 세상은 찬란했다. 사람이 모여들었고 마음이 팽창했다. 별의 순간이었다. 이변과 격변을 거듭하던 그는 어느새 가장 크고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다.

 

그가 별이 되었을 때, 나는 나 또한 별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빈자의 아들로서 부유층 자식들과 어울려야 했던 나는 강남 8학군이 낳은 반체제 인물이나 다름없었고, 머릿속은 온통 사회적 정의나 재벌 해체와 같은 말로 가득했다. 그런 나에게 그는 가난한 청년의 놀이터였고 비루한 영혼의 안식처였다. 가진 자들의 세상이 마침내 무너질 거라고, 질척거리는 세상의 정의가 마침내 견고해질 거라고, 차고 눅눅한 방바닥에 누워 나는 생각했다.

 

2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군대를 전역하니 내 손에 쥐어진 건 조잡하게 코팅한 전역증이 전부였다. 군번과 소속, 계급에 얽매였던 시간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나는 변하지 않았고 세상 역시 변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가난은 그대로였다. 집은 여전히 서울 변두리의 임대 아파트에 있었고 부모님은 여전히 서민 신분이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운전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있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재벌의 돈이었다.

 

정의는 무너졌다. 2005년 10월, 경찰관 7명이 불에 타 숨진 부산 동의대 사태에 관한 뉴스가 흘러 나왔다. 학생운동 중 전경들을 감금하고 불에 태워 없앤 자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유족들의 헌법소원 청구에 헌재의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고 했다. 민주화의 불꽃은 사람의 뼈와 살을 태우며 만개했음을 알았다. 사상과 이념에 뒤틀린 정의가 붕괴하는 걸 보았다. 오열하는 유족들의 어깨가 티브이 화면 속에서 일렁였다.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인 명단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름 석 자가 별처럼 빛나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나에게 진실은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 안의 명료한 외침과 같아서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정치라는 것과 결별했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달콤한 말과 작별했다. 허황된 것들을 향한 시선을 멈추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킨 나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폐장 후 공 줍는 일을 할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시급은 5000원이었다. 가난은 나의 몫이었다. 정치인의 몫이 아니었다. 정의도 나의 몫이었다. 세상에 바랄 게 아니었다.

 

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낮에는 공부를 했고 밤에는 골프장에서 공을 주웠다. 어느 날 밤, 공을 줍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높이 솟은 가로등만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빛을 머금은 비는 수천 개의 별이 되어 쏟아졌다. 내리던 비가 타닥타닥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어이, 별의 순간이야. 나는 오도카니 서서 별들을 맞았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자, 별에 젖어 고꾸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시도에 겨우 담뱃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다음 해, 나는 그토록 바라던 한 회사의 입사 시험에 결국 합격한다. 세 번 도전에 걸친 결과였다. 어느덧 나이 마흔이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아이들과 볼을 비비며 인사한다. 아들 놈은 벌써부터 놀아달라고 난리다. 딸아이의 기저귀를 살핀다. 갈아야겠다. 집을 둘러본다. 온기는 충만하며 습도는 쾌적하다. 가난도 없다. 가진 자를 향한 분노도 없다. 이제 나는 나로서 견고하다.

 

요청받은 기고문의 주제를 나는 이렇게 정하기로 했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스쳐 가는 생각들을 써넣는 화이트보드엔 이 말이 선명하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곳에 아내가 남겨놓은 말이 함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은 아직 그대로다. 가난한 자는 역시 가난하며 부유한 자는 언제나 부유하다. 정의마저 바래가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글을 쓰는 것뿐이다. 골프장에서 공을 줍던 나는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줍는다.

 

아이들을 재우려는 아내가 침실로 들어갔다. 불이 꺼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또 다른 별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은 내가 아닌,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겠다.

 

-필명 조은산, 조선일보(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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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챙기겠다’던 분 어디 계십니까

 

작년 9월 北에 피살된 공무원, 법적으론 지금도 ‘실종 상태’
어떤 가족은 버려도 되는가 국가가 왜 책임을 회피하나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걸려 있는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 실종된 지 22년 됐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딸을 찾고 있다. /박돈규 기자

 

선거가 끝나자 이 현수막이 눈에 밟혔다. 광화문 사거리부터 종각까지 3개나 보였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허공에 걸린 이 외침은 “(시장으로,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저를 뽑아주세요!” 따위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가정의 달이 되면 실종자 가족은 더 괴롭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 송길용(68)씨는 22년이 지나도록 송혜희를 찾고 있다. 현수막이 깨끗한 까닭은 주기적으로 점검하며 고쳐 달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에 만난 송씨의 트럭에는 딸 사진(현재 모습 추정)을 실은 전단 뭉치가 수북했다.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해야죠. 내가 아빠잖아요”라고 했다.

 

“주변에서 ‘집착을 버리라’고 하지만 이걸 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제일 고마운 게 뭔지 아세요? 전국 어딜 가도 현수막을 함부로 떼지 않아요. 총선, 대선이 있어도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를 피해서 현수막을 겁니다. 그걸 보며 생각해요. 다들 자식 키우는구나. 딸 잃은 부모의 애통한 심정을 헤아려주는구나···.”

 

인지상정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딸을 상실한 아버지가 짊어진 ‘책임감’, 그 가족을 향해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빚’이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을 잃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야만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돼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법적으론 지금도 ‘실종 상태’다. 그의 딸(9)은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돼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이 쓴 편지. 가족은 물론 동료들도 피해자가 월북할 사람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답장했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진실은 없다. /이래진씨 제공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동생이 원양어선을 조사할 때 몇 달씩 집을 비운 적이 있어 ‘해외 출장 중’이라고 했대요. 끔찍하게도 이 정부는 골든타임 때 동생을 구조하기는커녕 월북자로 몰아갔습니다. 이야기를 꾸미려면 기승전결이 필요한데 기승전은 없고 월북이래요. 조용히 덮자고 입을 맞췄는지, 의문을 제기해도 해경이나 통일부나 청와대나 응답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과 유엔에 진상 조사를 요청하겠습니까?”

 

실종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며칠 전 통화에서 “국가는 나 몰라라 하고 시신도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작년 10월 고교생인 조카(실종 공무원의 아들)가 보낸 편지에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북한 눈치나 보면서 아무것도 규명한 게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억해야 하는 국민, 망각해도 되는 국민이 따로 있나? 대통령은 올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지난 4년간 서해에서 무력 충돌이나 군사적 도발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장병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지만 경계 실패로 북한 해역에서 우리 국민이 사살된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세월호 사건은 인양해야 할 진실이 더 있는 것처럼 재조사하고 우려먹으면서, 지난가을 북한이 저지른 만행에는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도 진심 어린 사과도 없다. 김정은이 보냈다는 통지문 한 장으로 퉁칠 모양이다.

 

지난 재·보궐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은 ‘사람에 투표해 주십시오’라는 홍보물을 만들었다. 판세가 아무리 불리해도 그렇지 ‘사람 vs 사람 아님’의 갈라치기는 엽기적이었다. 집권 여당이 패했으니 ‘사람도 아닌 것들의 승리’인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사람이 먼저다’를 외쳤던 나라님에게 묻고 싶어진다. 측근과 북한에 대해서는 그토록 안타까워하면서, 억울하게 피살된 국민에게는 왜 책임감도 마음의 빚도 느끼지 못하느냐고. 정치적 실익이 없는 인권은 인권이 아니냐고. 어린이날 아빠를 기다리는 아홉 살 소녀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해 11월 열린 제17차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총회에서 이 사건의 의혹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정부가 동생이 월북했다는 증거를 내놓지도 않은 채 사생활을 폭로하는 2차 가해(인격 살인)를 했다고 그는 말한다. /뉴시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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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宋 대표, “세월호 비해 제복 입은 분들에게 소홀.” 線을 넘을지, 돌아올지, 밟을지 흥미진진.

 

-팔면봉, 조선일보(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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