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자른 이화령 10월 복원
굽이굽이 산줄기가 이어진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마치 '허리가 끊긴 듯' 툭 끊어져 있었다. 16일 오후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이화령(梨花嶺) 꼭대기. 한반도 남측 백두대간 중심에 위치한 이곳은 괴산군 군도 30호선 2차선 도로가 산 사이를 뚫고 지나며 산허리가 잘렸다. 일제가 1925년 한반도에 신작로(新作路)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산줄기를 파내고 도로를 조성한 탓이다. 일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단거리로 물자 등을 수송하기 위해 주요 통로에 도로를 개설하며 백두대간 산허리를 마구 잘랐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시대 끊긴 백두대간을 복원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족의 정기를 살리고, 끊긴 생태 축을 연결한다는 취지다. 행정안전부와 산림청은 이날 이화령 휴게소 광장에서 '이화령 구간 복원 기공식'을 개최하고, "백두대간 단절 구간 중 복원이 시급한 강릉 대관령, 괴산 이화령 등 총 13곳을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에 끊어진 백두대간 줄기 이화령 구간의 복원 전 현재 모습(위). 아래는 복원 후 예상도. 행안부는 내년까지 43억원을 들여 친환경 터널을 설치하고 자생식물을 심어 생태 축을 복원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 제공
행안부는 올 2월 이화령 구간 복원을 위한 기본·실시설계 용역 작업을 벌여 공사 계획을 완성하고, 이날 맹형규 행안부 장관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공식을 통해 공사 첫 삽을 뜨는 행사를 가지며 본격적인 공사 시작을 알렸다. 사업비 43억6000만원을 투입, 올 10월 이화령 단절구간을 이을 예정이다.
행안부는 이화령 구간 복원을 기념, 이근배 시인이 쓴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란 시를 3m 높이 시비(詩碑)로 만들어 올 10월 복원 구간 앞에 세울 예정이다.
공사는 군도 2차선 가운데 한 개 차선을 막고 단절된 너비 60m 구간 가운데 콘크리트 터널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터널이 만들어지면 터널 위에 흙을 덮고, 주변 식생과 동일한 나무와 풀을 심어 끊어진 산세를 복원한 뒤 파충류·양서류·포유류가 이동할 수 있는 생태 통로까지 만들 계획이다.
이날 기공식에는 한국관광동가 명예홍보대사인 뉴질랜드 출신 로저 셰퍼드(Shepherd·48)씨도 참석했다. 그는 2007년 9월부터 70일간 735㎞에 이르는 남한 백두대간을 완주했고, 2010년 10월엔 뉴질랜드 정부와 NGO 도움을 받아 북한 내 금강산·두류산·식개산 등 백두대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이화령 단절 구간 복원을 시작으로 백두대간이 모두 이어지면 다시 한 번 백두대간 완주에 나서겠다"며 "기왕이면 빨리 통일이 돼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일보(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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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길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처럼,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제 몫몫 이어져 끝이 없었다. 사람은 물과 산을 따라서 그것에 기대고 사는바, 길이 있기 전에 이미 물길과 산맥이 있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설가 박범신이 장편 '고산자'에 그린 김정호의 어릴 적 모습이다. 김정호는 산하(山河)의 처음과 끝을 밟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라 '대동여지도' 만드는 데 일생을 걸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끄트머리에서부터 경상도 안팎을 골골이 더듬고 태백 너머 오대산에 이르니 이듬해가 저물었고, 설악과 금강을 지나 또 한 해 반이 저물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400㎞에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국토의 혈맥(血脈)'으로 불려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13개 정맥(正脈)으로 나눴다. 정맥 이름들은 산줄기와 물줄기를 연결해 지었다. 한강을 에워싸는 지역은 한남, 한북 정맥이라고 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전통 풍수 사상이 그 이름들에 담겨 있다.
▶일제는 1903년 한반도 지하자원을 조사하면서 대간과 정맥이라는 말을 없앴다. 대신 자기네들이 쓰는 단어 '산맥'을 우리 땅에 갖다 붙였다. 일제는 1925년부터 백두대간 곳곳을 끊어 신작로(新作路)를 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수탈한 물자를 빨리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735㎞ 구간만 해도 일제가 허리를 끊은 지점이 예순세 곳이나 된다.
▶백두대간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몇몇 산악인들만 도전하던 코스였다. 요즘엔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 일반인이 한 해 1만명에 이를 만큼 새로운 국민 스포츠가 됐다. 주말마다 구간을 달리하며 2~4년에 걸쳐 산을 타는 식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등산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백두대간을 되살리자는 소리도 높아졌다. 정부도 민족 혼을 되살리고 생태 축을 잇기 위해 백두대간 복원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행정안전부가 그제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경계 이화령에서 첫 백두대간 복원 기공식을 가졌다. 산줄기가 끊긴 곳에 콘크리트 터널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산에 사는 동물들이 오가는 생태 통로를 만든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관령을 비롯해 열세 곳을 이을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 김별아는 2년 동안 격주로 40차례 백두대간에 오른 끝에 지난해 완주에 성공했다. 그녀는 "힘들게 걸은 뒤 신발을 벗을 때 퉁퉁 부은 발가락 사이로 부는 바람, 그것은 예술이었다"고 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연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백두대간 잇기가 국민과 국토를 더 가깝게 이어주는 고리가 됐으면 좋겠다.
-조선일보(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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