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미·소 제네바 정상회담
오두막 벽난로 앞에서 "핵무기 감축하자" 뜻 모았어요

1985년 11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로널드 레이건(왼쪽)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오른쪽)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회담하고 있어요. 이 회담을 포함한 두 정상의 총 네 번 만남은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했어요. /위키피디아
오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연방 기관들을 해킹한 의혹이 있다며 러시아 외교관을 미국에서 추방하는 등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번 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개선될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특히 두 정상의 만남 장소로 정해진 제네바는 36년 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해서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요. 1985년에 미국과 소련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념 대립 심각했어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 대립, 즉 '냉전'이 시작됐어요. 중국의 국공 내전, 우리나라 6·25전쟁 등 동아시아에서뿐 아니라, 그리스 내전,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두 진영의 이념 대립이 심화했죠. 심지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자본주의 진영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84년 LA 올림픽에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하기도 했어요. 당시 레이건은 '전략방위구상(SDI)' 실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일명 '스타워즈 계획'이라고도 불렸던 이 구상은 인공위성 같은 장비를 이용해 적국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소련은 이미 막대한 국방 예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 경제력은 미국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 미국과 맞먹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었거든요. 이 때문에 소련은 어떻게든 미국의 '전략방위구상' 계획을 막으려고 했죠.
레이건은 열렬한 반공주의자인 동시에 핵무기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었어요. 즉 핵무기 감축에 대해선 상대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었고 자신과 말이 잘 통할 만한 상대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죠. 그리고 마침내 1985년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취임 당시 54세로 스탈린(1879~1953, 43세 집권) 이후 최연소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어요. 그는 강력한 공산주의자이면서도 소련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방비 부담을 줄여야 하고 서방과도 좀 더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도 그를 만난 후 "이 사람과는 이야기가 통한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전향적인 사람이었어요.
처음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회담을 제의하며 미국 워싱턴으로 초청했지만, 소련은 미국이 아닌 유럽 어딘가에서 만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중립국을 유지하여 다른 곳보다 갈등이나 분쟁 당사자가 만나 협상을 벌이기에 비교적 부담이 덜했던 스위스로 최종 결정된 것이죠.
"왜 코트 안 입나" "안은 따뜻" 카메라 앞 대화
1985년 11월 19일, 세계 각국 기자 3000여 명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제네바에서 두 정상이 만났습니다. 레이건이 회담장에 먼저 도착해 있다가 늦게 도착한 고르바초프를 맞이하러 나왔는데 추운 날씨에도 코트를 입지 않은 레이건을 본 고르바초프는 "이런 날씨에 왜 코트를 입지 않았나"라고 물었어요. 이에 레이건은 "안은 따뜻하다"고 대답하며 고르바초프의 팔을 가볍게 잡고 안으로 안내했어요. 일각에선 코트를 입지 않은 74세 레이건 대통령이 54세 고르바초프 서기장보다 젊어보였고 강한 미국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있었어요. 계획상으로는 정상회담장에서 15분 정도만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각국 참모들이 참여한 확대 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한 시간이나 대화했습니다. 이후 핵무기 감축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해 회담이 이뤄졌는데,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고 분위기도 격앙됐어요. 이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다가가 "잠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화하자"고 제안했고, 고르바초프는 화답하며 통역만 대동한 채 나갔어요. 두 정상은 작은 오두막으로 가 벽난로 앞에 편한 자세로 앉아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장면은 사진에 찍혀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됐어요.
그렇게 사흘 동안 진행된 제네바 정상회담은 '평화 정착과 군축 노력'을 합의하며 종료되었어요. '핵무기 50% 감축 원칙' 등에 양측의 입장이 일치한다고 밝히고 쌍방이 핵무기 감축 협상을 성의 있게 해나가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것인데, 당시에는 '구체적인 핵무기 감축안이 담겨 있지 않아 큰 소득이 없는 회담'이라는 평가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회담에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차기 회담을 제안하여 이후로도 두 사람은 세 번 더 만났습니다.
냉전 종식 이뤄낸 네 번의 만남
두 번째 회담은 198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렸어요. 사실 이때도 전략방위구상 문제로 회담은 갈등만 남긴 채 끝났어요. 하지만 이후 두 정상은 회담이 결렬된 것을 반성하고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자 했어요.
특히 핵무기의 위험성을 인식해 1987년 워싱턴에서 이뤄진 세 번째 만남에서는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의 '중거리핵전력조약'에 서명했어요. 마침내 1989년 12월 3일, 레이건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지요. 1985년 제네바 회담은 냉전 종식을 향한 전환점이자 두 정상의 임기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처음 두 정상이 만나 카메라 앞에 선 순간이에요. 당시 제네바 추운 날씨 속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레이건 대통령은 양복 차림이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코트를 입은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위키피디아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기획·구성=김연주 기자, 조선일보(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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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감축
주춤했던 핵 경쟁, 다시 불붙을까 걱정돼요
미국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 핵 능력 강화 주장해 전 세계 긴장
2차 대전 후 냉전 돌입한 미국·소련, 핵무기 수 늘려 '공포의 균형' 유지
1991년 핵무기 감축하기로 합의… 현재 7000여 개 정도로 줄였대요
지난 22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략핵무기 부대의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를 받아치듯 트위터에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미국은 핵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어요. 같은 날 두 사람이 핵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두 나라 간의 핵무기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경우 수십 년에 걸쳐 핵무기 수를 줄여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죠.
◇2차 대전과 맨해튼 프로젝트
핵무기는 원자핵의 분열·융합에 의해 발생하는 엄청난 폭발 에너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무기예요. 1930년대 말 핵무기의 원리가 밝혀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지요.
핵무기를 처음으로 개발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온 과학자들이 미국 정부에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를 수락하면서 1942년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답니다. 독일계 유태인의 후손인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에는 연인원 13만명과 약 3000억달러의 예산이 투입됐고 여러 나라 과학자가 참여했어요.

사진=Getty Images Bank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이루어진 핵실험 결과 원자폭탄의 위력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무시무시했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펜하이머가 "이제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고 자책할 정도였지요.
1945년 최초의 원자폭탄이 완성되었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어요. 단 두 발로 약 2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어요. 핵무기의 끔찍한 파괴력이 드러나면서 2차 대전은 막을 내렸어요.
◇냉전과 핵 경쟁 시대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개발된 핵무기는 오히려 2차 대전이 끝난 뒤 그 수가 더 늘어났어요. 자본주의 진영을 주도한 미국과 공산주의 진영을 주도한 소련이 냉전(cold war)에 들어가면서 치열한 군비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에요.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 이후 미·소 양국은 경쟁적으로 핵무기 수를 늘렸어요. 미국은 1960년대 중반 핵탄두 3만 1000기를 보유했고, 소련은 1980년대에 4만기 가까이 핵탄두 수를 늘렸답니다. 두 나라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서로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핵무기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였어요.
핵무기는 미·소 외에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어요. 영국과 프랑스가 1952년과 1960년에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고 미·소와 갈등을 겪은 중국이 1964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답니다. 1970년 5개 나라만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 NPT가 발효됐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갖게 되었지요.
◇핵무기 감축을 위한 노력
핵무기의 수가 늘어나자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어요.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여론이 커졌고, 두 나라 모두 핵무기 경쟁에 투입된 막대한 예산으로 인해 경제에 큰 부담을 느꼈답니다.
두 나라는 1969년부터 핵무기를 제한·감축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어요. 여러 협정을 통해 탄도미사일 등을 줄이기로 했지만 두 나라의 핵무기 양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답니다.
핵무기 감축은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핵무기를 7년에 걸쳐 각각 30%, 38% 줄이기로 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답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러시아와 미국은 여러 차례 핵 감축 협상을 벌여 2만기 넘게 갖고 있던 핵무기를 현재 7000여 개 정도로 줄였어요. 두 나라 외에 영국과 프랑스, 중국이 각 200~300개, 인도와 파키스탄이 120개 내외, 이스라엘이 8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요.
트럼프 당선인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23일 "핵무기 경쟁을 하자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자신들의 발언이 너무 확대되었다고 해명했답니다. 아무쪼록 그 말을 지켜 인류의 미래와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가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2차 대전 때 원자폭탄 개발을 주장하였다가 이후 크게 후회했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탱크로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운의 과학자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사진)는 상대성이론과 블랙홀 등에 중요한 연구 업적을 남긴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어요. 초·중·고 시절 1등을 놓친 적이 없었고 1925년 하버드대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답니다.
원자폭탄을 만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2차 대전이 끝나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미국 내에서 국가적 영웅이 되었어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원자폭탄으로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고 심한 양심의 가책과 과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후 미국 정부가 원자폭탄보다 강한 수소폭탄을 개발하려 하자 오펜하이머는 여기에 반대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공산주의자로 몰리면서 자신이 맡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어요.
-윤형덕 하늘고 역사 담당 교사, 조선일보(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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