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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도쿄에서 보고픈 克日]

뚝섬 2021. 6. 20. 06:05

[카페 2040]

하면 된다” 원조는 日여자배구… 피멍든 엉덩이로 1964도쿄 金
태평양 전쟁 겪은 당시 日감독 “역사는 승자편” 패전 한풀이
올해 도쿄선 눈물 대신 미소를

 

유니클로 입고 도요타 몰면 천하에 몹쓸 토착 왜구 낙인이 찍히는 세상인데, 스포츠는 여전히 친일(親日)적이다. 곤조(根性)와 군기(軍紀) 타령하며 선수들을 “하면 된다(やればできる)”고 다그치고, 메달만 따면 박수 받는 문화. 이게 일본에서 왔다. 정확히는 다이마쓰 히로부미(大松博文·1921~1978) 일본 여자 배구 감독이 퍼뜨렸다.

 

김경문 감독이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O에서 2020 도쿄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명단발표를 하고 있다. 2021.06.16. /뉴시스

 

다이마쓰 감독은 1964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 결승에서 당대 최강 소련을 누르고 일본에 금메달을 안겼다. 작달막한 일본 선수들이 구라파 거인들을 제압한 비결은 감독이 직접 개발한 신기술 ‘회전 리시브’와 ‘시간차 공격’. 기계 같은 조직력으로 승승장구한 일본 여자 배구는 ‘동양의 마녀(魔女)’로 불렸다. 실상은 마녀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다이마쓰 감독은 1954년 대일본방적(日紡·니치보) 실업 배구팀을 맡으면서 오사카 공장의 여공 중에서 선수를 골랐다. 특히 시골에서 농사짓다 온 처녀들을 선호했는데, 감독 말에 절대 복종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니치보 선수들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공장에서 일했고, 퇴근 후 체육관에서 새벽까지 훈련했다. 잠은 단 4시간. 그는 “나를 따르라(俺についてこい)!”고 닦달하면서 숙소와 훈련장에서 거울을 없앴고, 머리는 무조건 짧게, 식사는 후다닥, 실수하면 욕설과 구타를 퍼부었다. 휴일도 명절도 없었고 반항하면 즉시 내쫓았다. 그렇게 니치보 배구단은 국내 대회를 평정하고서 국가대표가 돼 1962 모스크바 세계선수권과 도쿄 올림픽 제패까지 해냈다. 훈련장에 참관 온 사람마다 “여기가 지옥”이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성적이 좋으니 명장으로 추앙받았다(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 여자 배구도 그의 특별 지도를 받았다).

 

일러스트=양인성

 

그의 인생관은 전쟁이 바꿨다. 상업학교 나와서 니치보에 취직했던 평범한 청년 다이마쓰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스무 살(1941년) 일본 육군에 소집돼 중국·파푸아뉴기니 등지로 갔다. 결정적 생사 고비는 북인도 임팔 전투(1944년 3~7월). “총알이 없어도 싸우는 것이 황군”이라며 무작정 침공을 밀어붙인 무다구치 렌야(牟田口廉也) 때문에 일본군 5만명이 굶어 죽은 임팔 전투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영국군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삼키며 장대비 속 백골 더미와 구더기 떼의 생지옥에서 탈출한 그는 “어떠한 육체적 어려움도 정신력으로 극복한다” “역사는 승자의 편” “땀에 피를 더하라” “이기는 것이 제일”이라고 외쳤다. 그에겐 스포츠가 패전의 한풀이였다. 가령 소련과 맞붙게 되면 “빼앗긴 쿠릴 열도를 기억하며 적(敵)을 죽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런 금메달 방정식이 한국으로 넘어와 체육 현장을 피멍으로 얼룩지게 했다. 심석희, 고(故) 최숙현 선수가 고발했고, 이재영-다영 쌍둥이의 학교 폭력 논란이 시사하는 바처럼 한국 스포츠의 성과 지상주의와 폭언·폭력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림픽 메달이 국위를 선양한다지만 지금껏 “코리아가 양궁을 잘해서(금메달만 23개다) 좋다”거나 “코리아가 승마를 못해서(메달이 없다) 우습다” 따위의 말을 하는 외국인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다음 달 일본 도쿄에서 두 번째 올림픽이 열린다. 감격이건 절망이건 선수의 눈물은 안 보고 싶다. 대신 후회 없이 노력했고, 다 끝나서 속 시원하다는 보름달 미소가 보고 싶다. 몇 등을 했든 당당하게 웃는 청춘에게 박수를 보내야 우리가 변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면 되는 일이고, 올여름 도쿄에서 꼭 보고 싶은 극일(克日)이다.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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