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 [단원과 추사가 건네는.. ]

뚝섬 2021. 8. 1. 06:08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

[단원과 추사가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

 

 

 

젊은 선비에게 잡힌 팔목, 그래도 싫지 않은 듯…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신윤복 ‘소년전홍(少年剪紅·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혜원 신윤복(1758~?)의 ‘소년전홍(少年剪紅·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은 남녀 간의 사랑을 화폭에 담은 대표적인 풍속화다. 엉덩이를 살짝 뒤로 빼고 수줍어하는 여인은 앳된 모습이다. 긴 담뱃대를 문 젊은 선비가 팔을 약간 비틀어 잡아채고 있으나 그렇게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분위기와 어울리게 그림에는 ‘촘촘한 잎은 더욱 푸르고/ 무성한 가지에서 붉은 꽃이 떨어지네’라고 씌어 있다.

 

화면 왼쪽의 두 그루와 오른쪽 아래의 꼭대기 가지들만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는 지금 막 분홍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다. 가지 뻗음이나 꽃대 달림 및 꽃의 색깔 등이 독특한 배롱나무의 모습 그대로다. 화려한 여름 꽃인 배롱나무가 제철을 만난 듯 피고 있으니 때는 장마가 끝난 대체로 7월 중하순의 지금쯤이다. 가을까지 거의 백 일에 걸쳐 붉은 꽃이 핀다고 다른 이름은 백일홍나무다. 물론 꽃 하나가 백 일을 가는 것은 아니다. 가지 아래서 이어달리기로 꽃이 피어 올라가기 때문에 오랜 기간 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괴석의 높이로 나무의 키를 짐작해 보면 2~3m 남짓이다. 배롱나무는 5~7m까지 자랄 수 있으니 아직은 한창 크고 있는 셈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껍질이 매끄러워지며 줄기는 굽고 심하게 비틀리는데, 그림에서는 건강하고 곧게 잘 자라고 있다. 배롱나무 키가 괴석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경사진 땅이다. 선비가 잡아당기면 금방 여인이 안겨버릴 수 있는 위치다. 자라는 풀의 종류는 양지바른 곳이면 조금 건조한 땅에도 흔히 만나는 청사초로 짐작된다. 장마가 막 끝난 계절에서 앳된 모습의 주인공 남녀와 어린 배롱나무, 오른쪽 담 위와 바닥의 풀까지 화면 전체에는 싱싱한 젊음이 서려 있다. 심지어 괴석에 붙어 자라는 식물도 싱그럽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의도인 것 같다.

 

배롱나무와 괴석과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젊은 선비의 사방관 등으로 봐서는 권세 있는 양반가의 후원쯤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로서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배롱나무는 한때 장안의 벼슬아치 저택에 심기도 했으나 근래에 기후가 매서워서 대부분 얼어 죽어 버렸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문일평의 ‘화하만필(花下漫筆)’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이 그림의 배경은 서울이 아닌 남부 지방의 어느 양반가 후원일 가능성이 크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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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과 추사가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

 

달빛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인다. 깊은 산중 골짜기에 자리 잡은 초가에서 홀로 책 읽던 선비가 문득 인기척을 느낀 듯 창밖 동자(童子)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구나. 동자야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에 선 동자가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선비에게 답한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습니다.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이에 선비는 말한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2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추성부도(秋聲賦圖)를 묘사한 글이다. 단원이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의 시(추성부)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어설피 떠오른 하얀 달과 앙상한 나무, 흔들리는 낙엽이 함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처연한 느낌을 준다. 거장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회고하며 인생무상의 서정을 한 폭의 수묵화에 압축한 듯하다. 엄습한 팬데믹의 여파 때문일까. 마스크를 쓴 관람객들이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전시장 왼쪽 벽면에 나란히 걸린 추성부도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올해 1월 말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공개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가 떠올랐다. 메마른 붓질로 쓱쓱 그려낸 엄동설한 속 소나무와 외딴집은 추성부도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추사가 그의 인생 말년을 보낸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겨울을 보내야 했던 작가의 쓸쓸한 감흥이 전해진다.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겸손하고 진실해진다는 걸 두 작품은 여실히 보여준다. 넘치거나 과한 부분 없이 담백하다. 사실 단원은 굵고 거침없는 선부터 철선묘(鐵線描·필치의 변화 없이 똑같은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교에 능한 천재 화가였다. 그런 그가 추성부도에서는 기교를 최대한 자제하고 철저히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추성부도는 붓질부터 색상 표현까지 단원의 기존 작품과는 다르다. 인생의 조락(凋落)을 맞은 단원이 자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라고 평했다. 눈에 덮인 네 그루의 나무와 집 한 채만 그린 세한도는 추성부도보다 핵심만 더 솎아낸 느낌이다.

 

그런데 세한도의 쓸쓸함은 조금 다르다. 고목의 힘찬 가지와 독야청청한 솔잎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가리라는 강한 의지로 다가온다. 실제로 세한도를 감상한 청나라 문인 조무견(?∼1853)은 “푸르름이 동심(冬心)을 품고 꿋꿋이 서리와 눈에 굽히지 않네”라는 감상 평을 남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힘겨운 우리들에게 추사가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추성부도에 담긴 단원의 겸손한 절제미 역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볼 것을 청하는 듯하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동아일보(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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