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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

뚝섬 2021. 8. 8. 06:00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실루엣은 가족이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의 상(象)을 기록하는데 유용했다. 미국의 시골에서 종종 보이는데, 한적한 시골집 벽면에 사람이나 동물의 실루엣을 붙여놓는 풍경이다. 화초에 물을 주는 긴 머리 소녀,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 뛰노는 아이들, 사색하는 중년 남성 등의 다양한 모습이 붙여져 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이미지를 흑백으로 투영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인물이나 동물, 사물을 윤곽으로만 그리고 검게 칠하는 ‘실루엣’이다. 고대 그리스의 화병 표면에도 새겨져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명칭은 18세기 프랑스의 재무장관이었던 에티엔 실루엣(Etienne de Silhouette)의 경제정책이 싸고 간편한 실루엣 기법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실루엣은 가족이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의 상(像)을 기록하는 데 유용했다. 그저 윤곽을 따라 종이를 오리고 검은색으로 칠하면 되었기에,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초상화에 비해 훨씬 싸고 간편했던 것이다. 작가 미상으로 그려진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얼굴이나, 중절모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찰리 채플린의 형상은 오늘날까지도 잘 알려진 친숙한 실루엣이다.

 

원하는 이미지를 쉽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실루엣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다양한 곳에서 응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명 방식이다. 광원을 피조물 뒤에 배치하여 빛을 강하게 투영함으로써 신비로움이나 미스터리, 불확실성을 나타낸다. 커다란 태양을 배경으로 말을 탄 ‘조로(Zorro)’나 ‘E.T.’에서 달빛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는 소년의 모습 등은 실루엣 기법으로 연출된 유명한 장면들이다.

 

또 다르게 사용되는 정겨운 예들이 있다. 미국의 시골에서 종종 보이는데, 한적한 시골집 벽면에 사람이나 동물의 실루엣을 붙여놓는 풍경이다. 화초에 물을 주는 긴 머리 소녀,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 뛰노는 아이들, 사색하는 중년 남성 등의 다양한 모습이 붙여져 있다<사진>. 사진기조차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시골의 농부들이 그저 나무 합판을 잘라 검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외벽에 붙여 평소에 경험하고 기억했던 삶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설치에 삶의 은유와 스토리가 담겨 있다. 문자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은 미덕(美德)이다. 실루엣은 정직한 사실의 세계다. 우리의 모습이나 동작이 한순간의 정지된 실루엣으로 기록되면 어떤 이미지가 표현될지 궁금하다.

 

제인 오스틴의 실루엣.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실루엣은 가족이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의 상(象)을 기록하는데 유용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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