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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언론계 우려도 전부 무시, 여기가 ‘강성 친문’만의 나라인가] ....

뚝섬 2021. 8. 21. 06:09

[세계 언론계 우려도 전부 무시, 여기가 ‘강성 친문’만의 나라인가]

[정권에 강하게 국민에겐 겸손해야 정확한 보도]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간신들 참 볼만할 것이다]

 

 

 

 

세계 언론계 우려도 전부 무시, 여기가 ‘강성 친문’만의 나라인가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의 회의 진행에 항의하고 있다.

 

언론징벌법이라 부르는 언론중재법은 허위 보도를 막는다는 명분과는 달리 권력 비판 보도를 막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징벌 소송을 남발하는 상황에서 어떤 언론이 막강한 권력의 비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면서 위축되지 않을 수 있나. 애초에 규제하기로 했던 유튜브 가짜 뉴스 문제는 사라졌다.

 

세계신문협회(WAN), 국제언론인협회(IPI)에 이어 국내에 주재하는 외신기자클럽도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제기자연맹(IFJ)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중재법 폐지와 본회의 표결 반대를 요구한다”고 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 등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당은 이를 무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 눈에는 대선에서 지지의 밑바탕이 돼 줄 강성 친문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19일 국회 상임위에서 일방 처리한 법안은 언론중재법만이 아니다. 교육 자율성을 빼앗고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내용도 있다. 야당과 시민 단체, 재계 등이 반대했지만 각종 꼼수와 범여권 180여 석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2020년 총선 압승 이후 각종 법안을 마음대로 통과시키던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아예 입법 대못 박기에 나선 것 같다.

 

여당이 교육위에서 단독 처리한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교원 선발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컸지만 무시했다. 탄소중립법도 경제계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제조업에 지나친 부담을 준다”고 했지만 의견 수렴이나 논의 과정도 없었다. 이 법들을 처리하며 범여 의원들을 야당 몫 조정위원에 넣는 꼼수까지 부렸다.

 

여당의 입법 폭주 결과는 심각하다. 여당은 2019년 여야 간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제 마음대로 바꾸는 초유의 폭거를 저질렀다. 그 결과 위성 비례 정당 등장이라는 유례없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공수처법을 만들어 국가 형사 사법 체계를 뒤흔들었지만 공수처는 지금 기본적 수사 능력마저 의심받는 허수아비 기관처럼 돼 있다. 임대차 3법을 국회 토론·심사 과정도 없이 단 2시간 만에 졸속 처리하더니 전세 대란을 불렀다. 북한 김여정의 하명대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드는 일까지 벌였다. 경제계가 한사코 반대한 상법 등 경제 3법도 끝내 밀어붙였다. 이 역시 기업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들은 지금 민주적 절차도 필요 없고 이견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서 권위주의 독재와 다를 것이 없다.

 

-조선일보(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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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강하게 국민에겐 겸손해야 정확한 보도

 

[강천석 칼럼]

반복적 허위 보도로 정권 칭찬해야 탈 없는 나라 됐다
대통령 거짓 발언과 허풍 정책 보도 뒤엔 정권 사과문 실어야

 

더불어민주당이 19일 ‘언론중재법’이란 이름의 ‘언론자유 제한법’을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可決)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이 모습을 보면서 문재인 정권 4년 4개월 동안 언론이 저질렀던 수많은 허물을 떠올렸다.

 

언론은 그동안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대통령 발언과 정부 정책을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국민을 오도(誤導)했다. 그 때문에 일자리에서 내쫓기고,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오른 월세값을 대느라 허덕이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어야 했던 국민의 고통은 계산 범위를 넘어선다. ‘정책 효과가 의심스럽다’거나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는 비판과 논평을 달았다고 해서 언론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이후 26번 집값 대책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집을 팔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위협하거나 ‘전셋값이 곧 안정될 것’이라고 허풍을 쳤다. 그러면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대통령 사람들은 ‘집’과 ‘자리’의 갈림길에서 늘 집을 선택했다. 국민에겐 ‘서울을 사수(死守)하겠다’고 해놓고 자기 식구끼리 한밤에 한강을 몰래 건너 도망친 것이다. 이 정권 언론중재법대로라면 대통령 말과 정부 정책의 거짓과 허풍을 사실인 양 보도했던 신문과 방송은 같은 크기로 대통령과 정부의 사과문을 게재했어야 마땅하다. 언론은 피해 국민에게 징벌적 피해 보상을 하고 대신 대통령과 해당 장관에게 그 피해 금액을 되갚으란 소송을 제기할 일이었다. 통계 조작을 통한 원전 폐쇄에 따른 손실까지 합치면 그 청구액은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 ‘백신 확보국과 미확보국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데 한국이 앞장서겠다’는 대통령의 근거 없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국민을 실망시킨 게 몇 번인가. 대통령이 백신 제조회사 모더나 최고경영자와 전화 통화로 수천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보도하면서 손바닥 반쪽 크기의 활짝 웃는 대통령 사진을 게재했다. 그 약속이 부도(不渡)가 났으면 게재된 사진 크기로 청와대의 사과문을 실어야 했다. 대통령 발언은 진위(眞僞)가 판명되기까지 보도를 보류하거나 정부 정책이 허풍이었다고 판명되면 주기적으로 사과문을 반복 게재했어야 했다.

 

언론이 사실과 다르게 반복적 허위 조작 보도로 정권을 칭찬했다고 해서 보복 수사를 당한 일은 없다. 사실대로 또는 사실과 가깝게 정권의 비리와 부정을 보도했을 때 정권은 언론에 보복했다. 그때 정권이 동원하는 상투어(常套語)가 이번 언론중재법에 들어 있는 ’악의(惡意)’ ‘허위·조작’ ‘반복적’이란 단어다. 언론중재법의 수혜자(受惠者)는 정권이다.

 

보통 콘크리트는 시멘트·모래·자갈을 1:3:6의 비율로 섞고, 철근 콘크리트는 1:2:4로 섞는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이 일시에 붕괴한다. 대통령은 5년 임기 안의 단기(短期) 과제와 중·장기(中·長期) 국가 과제에 투입하는 노력과 관심의 비율을 적절하게 안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갑자기 내려앉는다. 문재인 정권이 끝나면 수많은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다. 끌어다 쓴 빚을 상환해야 하고, 노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바닥난 건강보험 기금을 메워야 하고, 전국 대학의 4분의 1이 문을 닫는 사태를 수습해야 하고, 인구 감소로 소비와 투자가 함께 감소하는 장기 불황에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낭떠러지 앞에서 정권은 언론중재법 놀음을 벌이고 야당은 정신이 외출(外出) 중이다.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항공기 납치 충돌 테러로 2977명이 죽었다. 소방관 343명이 사망했다. 화재(火災) 감식 전문가와 건물 구조역학(力學) 전문가 가운데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일은 불이 꺼진 다음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의 일은 불기둥이 된 건물 속으로 뛰어드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이 소방관이란 직업의 무게다.

 

기자들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한다. 그들의 작업은 불타고 남은 잔해(殘骸)를 뒤지는 화재감식 전문가만큼 과학적이기 어렵다. 그것이 그들 직업의 한계다. 이 직업의 한계가 부정확한 보도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다. 부정확한 보도의 피해가 힘없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더욱 그렇다. 언론은 국민에게 겸손할수록 정확해지고 권력에 무릎 꿇지 않을수록 정확해진다. 정권의 공갈에 넘어가면 언론은 살 길을 잃는다.

 

-강천석 논설고문, 조선일보(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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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간신들 참 볼만할 것이다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개의 신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기관은 단연 꼬리다. 도대체 이놈의 꼬랑지가 제멋대로 움직여 체면 구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밥을 다 먹고도 간식 든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내 꼬리는 속절없이 흔들린다.

 

아파트 옆 동 새침한 암컷 푸들을 만날 때도 내 꼬리는 춤을 춘다. 크고 사나운 개를 만날 때 나는 짐짓 사나운 체하며 으르렁거리지만, 내 꼬리는 뒷다리 사이로 볼품없이 말려 들어간다. 개는 꼬리 때문에 속내를 들켜 인간에게 길들여졌을 것이라는 게 나의 가설이다. 꼬리가 없었다면 영화 ‘혹성탈출’의 원숭이들처럼 개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들도 개 꼬리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꼬리가 오른쪽으로 향하면 기분이 좋고 왼쪽으로 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로봇 개를 이용한 실험으로 알아냈다. 상대 개가 꼬리를 왼쪽으로 흔들면 심박 수가 많아지고 오른쪽으로 흔들면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가 꼬리를 좁은 각도로 흔들면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꼬리를 부채처럼 크게 흔드는 건 “난 널 해치지 않아”부터 “정말 기분 좋아”라는 뜻까지 포함한다. 꼬리를 비스듬히 세워 서서히 흔들면 개가 불안하다는 뜻이고, 짧게 흔들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건 극도의 경계 상태이다. 꼬리를 높이 쳐들고 천천히 흔들 때는 말 그대로 ‘개 조심’ 상황이니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다.

 

나는 꼬리 흔드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꼬리가 왜 기분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지도 알지 못한다. 마치 내 몸에 개 꼬리라는 놈이 따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점잖은 척해야 할 때 꼬리가 촐랑대면 자존심이 팍 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꼬리를 물어 혼내주려고 뱅글뱅글 도는 일뿐이다.

 

인간에게 지금은 흔적기관일 뿐인 꼬리가 남아있었다면 아주 볼만했을 것이다. 대선 후보라는 인간들이 나란히 서서 토론하는 걸 보며 나는 그들이 어떤 말을 할 때 꼬리가 어떻게 흔들렸을까 상상하곤 했다. 입만 열면 정의와 공정과 민주를 말하는 자들의 꼬리도 그 흔들리는 꼴이 가관일 것이다. 꼬리만 있다면 충신과 간신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엊그제 신문에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법안 통과에 깍두기로 끼게 된, 기자 출신이란 국회의원 사진이 실렸다. 주먹 인사를 하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아유, 좋아 죽겠네” 하며 맹렬히 흔들리는 꼬리를 보았다.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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