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후보님, 공소장 일독을 권합니다] [‘2050 탄소중립案’ 짜면서 비용은.. ]

뚝섬 2021. 9. 15. 06:58

[후보님, 공소장 일독을 권합니다] 

[‘2050 탄소중립案’ 짜면서 비용은 생각도 안해봤다니]

 

 

 

후보님, 공소장 일독을 권합니다

 

알아서 모시느라 일그러진 공직사회
101쪽 공소장엔 사흘간 기록 담겼다

 

수년 전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에게 “도청 공무원이 진실을 제대로 보고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애매했다. “충남도 공직자들이 ‘됩니다-안 됩니다 보고서’를 둘 다 캐비닛에 넣어두고는 그때그때 꺼내오더라”고 설명했다. 준비가 잘돼 있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높은 분 입맛에 맞는 답이라면 만들어 낸다는 말이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은 요즘 내놓는 핵심 국정과제를 내용이나 절차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마칠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에게 옛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공소장을 꼭 구해 일독하기를 권한다. 대통령의 탈원전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 산자부, 원전 공기업(한국수력원자력)의 뜻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타협되는지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미래 대통령으로서 내가 임명한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내 입맛에만 맞춰 캐비닛에서 정책보고서를 꺼내올지 궁금하다면, 또 걱정된다면 말이다.(7000억 원을 들여 수명을 10년 늘렸던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계속 가동할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뒤 조기 폐쇄됐다. 현재 검찰은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보고서 조작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 청와대 보고망(이지원)에 댓글을 달았다.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 형식만 질문이었을 뿐 강력한 지시였다. 대통령도 산자부가 100년 에너지정책을 이렇게 빨리 180도 바꿀 줄 몰랐을 것 같다. 공소장에 따르면 딱 이틀 걸렸다.

 

산자부의 정책전문가와 한수원의 기술전문가는 임기 초만 해도 의지가 굳었다. “월성 1호기를 가동중단하면 손실 1조8000억 원이 발생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신중한 탈원전 건의는 4차례 이어졌다. 청와대가 탈핵-탈원전을 밀어붙이자 독일 사례를 따라 국회의 입법이란 형식을 갖추자는 수정 제안도 실무선에선 내놓았다. 이랬던 공직사회도 대통령 댓글을 발견한 뒤론 신념을 접었다. 시인 김수영의 표현처럼 공직자라는 이름의 풀은 비를 몰고 온 동풍 앞에 누웠고, 울었고, 다시 누웠다.

 

산자부 출신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댓글 당일(월요일)에 “대통령 하문(下問) 내용을 빨리 산자부에 전달하고 장차관 생각을 반영한 보고를 해 달라”며 움직였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산자부 장관이 “너 죽을래”라며 담당 과장을 압박했다는 것이 화요일이다. 그리고 수요일, ‘조기 폐쇄’ 보고서가 장하성 정책실장의 손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런 구구한 과정이 공소장에 담겨 있고, 앞으로 대전지법 재판에서 다투게 될 것이다. 검찰은 관련자 발언, 메모를 인용해 공소장에 상세히 기록했다. 국정책임자에겐 절대 보고되지 않는 공직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다. 대선 후보들은 신문 제목 훑듯 넘어가선 안 된다. 또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시되는 지금, 절차를 못 갖춘 정책 밀어붙이기로 얼마나 아까운 공직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지 리더라면 챙겨야 하지 않을까.

사족. 일독을 권하긴 했지만, 101쪽에 이르는 공소장은 대선 후보가 손쉽게 입수하지 못할 수 있다. 법무부는 국회가 요구하더라도 비공개 원칙을 바꿀 생각이 없다. 현재 원전 관련 단체가 ‘문제의 원전 공소장’을 갖고 있으나 입수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소장 낭독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행사를 열어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진 뼈아픈 수사기록을 바깥에 알리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단면이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동아일보(21-09-15)-

_________________________

 

 

‘2050 탄소중립案’ 짜면서 비용은 생각도 안해봤다니

 

[한삼희의 환경칼럼]

코로나로 작년에 줄어든 세계 온실가스 겨우 7%
그런 고통 30년 이어가야 탄소중립 가능한데
위원회는 비용 계산 없이 ‘신재생으로 에너지 70%’
 

 

지난 5월 29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체중 288g으로 태어났던 초미숙아가 다섯 달의 집중 치료 끝에 며칠 전 퇴원해 부모 품에 안겼다. 어느 언론은 ‘사과보다 가벼웠던’이라고 표현했다. 뉴스를 보면서 12년 전 서강대 이덕환 교수가 했던 강연이 생각났다. 이 교수는 당시 500g도 안 되는 미숙아가 태어났다면서 “기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2년 더 살면 수명이 1년씩 늘어나는 시대’라고도 했다. 12년 전 500g이었던 기적의 한계가 288g까지 낮아졌다.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다.

 

제인 구달의 제자였던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1990년대 말 ‘요리 가설’을 내놨다. 인간의 두뇌 진화는 180만년 전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발동이 걸렸다. 침팬지는 하루 온종일 뭔가 우물우물 씹으면서 보낸다. 단단한 줄기·뿌리나 날고기 같은 것은 위나 장(腸)에서 잘 소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은 불에 굽거나 익혀 먹을 줄 알게 되면서 많은 영양분을 뇌로 보낼 여력을 갖게 됐다. 사람 뇌 조직은 몸무게의 2.5%밖에 안 되지만 기초대사량의 20~25%를 소모한다. 2012년 브라질의 뇌신경 학자가 세어봤더니 고릴라의 신경세포는 330억개인데 사람은 860억개였다. 불로 요리를 하게 되면서 커진 두뇌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아다녀야 한다면 수학이나 철학을 연구하고 예술 활동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200년 전 지층에 수억 년 축적된 고밀도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때부터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대 미국인은 원시 인간의 100명 분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잉여 생산력을 갖고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전문 집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의대생들이 10년을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사회의 생산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얘기했듯, 200년의 과학 기술 진보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이 못 먹어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테러범·범죄자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게 됐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일 것이다. 되돌릴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하다. 산업혁명의 혁신적 생산성 향상으로 인간은 여분의 시간을 갖게 됐다. 지구 반대편 오지까지 여행하고, 아름다운 예술을 탄생시키고, 실험과 연구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발전시킨 과학기술로 고밀도 생활 공간인 도시를 건설하면서 국립공원 같은 자연보호 구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됐고, 비료·농약의 농업 혁명으로 숲 생태계를 보호할 공간적 여유도 갖게 됐다. 이덕환 교수는 12년 전 강의에서 민주주의도 과학기술 덕에 가능해졌다고 했다. 소수 지배계급이 다수를 노비·노예로 착취하지 않아도 모두 함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경제 자원이 되면서 전쟁이 사라질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점령해봐야 약탈해갈 실리콘 광산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가 2050 탄소 중립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려면 30년 동안 매년 7%씩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가야 한다. 작년에 마침 세계 배출량이 7% 줄었는데,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러느라 겪은 고통은 너무나 컸다. 그걸 30년 동안 연속 겪는다고 생각해보라. 탄소 중립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과제다.

 

미래의 기후 도전에 대처하려면 가능한 지식 자원을 다 동원해야 할 것이다. 어떤 기술도 배척하지 않고 각국 형편에 맞게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국토가 넓고 태양이 내리쬐는 나라라면 태양광이, 바람 자원이 넉넉하면 풍력을 하면 된다. 우리는 국토가 좁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 줄리언 사이먼은 인간 두뇌가 궁극의 자원(Ultimate Resource)이라고 했다. 1956년 미국 워커 시슬러 에디슨 전기 회사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 연구를 권하면서 “원자력은 두뇌에서 캐는 에너지”라고 했다. 30년간 원자력을 배척했던 이탈리아의 환경장관이 얼마 전 소듐고속로·초고온가스로·소형모듈원전 등의 4세대 원전 기술을 활용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고밀도 에너지가 환경을 지켜준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지식이 자원인 시대에, 국토가 좁은 나라가 스스로 기술의 선택 폭을 좁혀 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달 태양광·풍력 비중을 56~71%로 늘리고 원자력은 6~7%로 억제한다는 2050 탄소중립안(案)을 발표하면서 “소요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대안이 국민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예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고백이었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조선일보(21-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