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화협정 타령, 한국의 종전선언 타령]
[종전 선언은 藥과 毒 다 될 수 있다]
[ 헛손질로 끝나는 ‘종전선언’]
북한의 평화협정 타령, 한국의 종전선언 타령
[朝鮮칼럼]
임기 종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남북 관계 진전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기려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국 중 아무도 진정한 관심이 없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종전선언의 실현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끈질긴 집념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향한 북한의 반세기에 걸친 집념을 연상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
종전선언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원천 개념인 평화협정 문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김일성 시대 이래로 줄곧 주장해 온 평화협정의 논리적 구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선물 거래와도 같은 파생 상품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법적으로 종식할 평화협정 문구에 응당 포함되어야 할 영토 경계 문제, 전쟁 책임 문제, 포로 문제, 전후 체제 문제 등 오랜 시간이 소요될 세부 사항 논의를 모두 뒤로 미룬 채 ‘전쟁이 끝났다”는 서론과 결론만 우선 앞당겨 발표하자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2007년 종전선언 제안 배경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974년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이래 토씨 하나 변하지 않은 평화협정 타령을 무려 48년째 계속 중이다. 이는 주한미군 철수, 주한 유엔사 해체, NLL(서해북방한계선) 폐지 등을 통해 한국의 방어 체제를 해체하려는 계책이다. 그러한 북한의 숨겨진 의도는 1997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년간 계속된 회담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핵심 의제로 정할 것을 고집하면서, 그것이 먼저 합의되기 전에는 실질 문제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고 우겼다. 이 때문에 회담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종결되었다.
북한의 소원대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6·25전쟁의 국제법적 종식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NLL 폐지 등을 강력히 압박해 올 전망이다. 그중 가장 급박한 위기는 NLL 문제로부터 초래될 것이다. ‘휴전 체제’의 산물인 NLL은 ‘종전’이 법적으로 발효되면 즉각 자동 폐기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의 등거리 원칙에 따라 새로운 평시 해상 경계가 설정될 경우, 그간 우리 군이 피 흘려 지켜온 서해 5도는 북한 영해 깊숙이 위치한 고립된 섬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뜻을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해 국내외에서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종전선언이 평화협정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유엔사, 서해 5도의 운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처음 제의했을 당시에도 NLL 문제가 초미의 국내 정치적 쟁점이었다. 당시의 NLL 관련 정상 협의 내용을 2012년 정치권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이 삭제된 것이 발견되자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고, 삭제에 관여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결을 받았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과 북한의 평화협정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간 종전선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다. 이는 아마도 북한이 평화협정을 통해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들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통해 달성하기가 어려우리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며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밝힌 이래 북한의 불신감은 더 커졌다. 종전선언에 앞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김여정 부부장의 최근 발언도 그러한 불신감의 표출이다. 북한이 종종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는 주로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북한식 은어다.
북한의 평화협정 타령에 못지않게 집요한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캠페인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미국과 북한의 동의를 얻어 회담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만일 종전선언이 법적 효력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라면 북한은 이를 거부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평화협정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 선언이라면, 북한은 수락할지 모르나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 국민도 반대할 것이다. 국가 안보를 볼모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 위험한 도박은 결국 실패로 끝나겠지만, 대체 무슨 의도로 그토록 집요하게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인지 훗날 반드시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용준 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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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선언은 藥과 毒 다 될 수 있다
文정부 종전 선언 집착은 평화협정과 관계 誤讀한 탓
67년간 휴전이 사실상 종전… 법적 종전은 평화협정 체결 후 평화 체제 대전제는 비핵화
비핵화 위해 종전 선언 활용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에 대한 집착은 가히 병적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유엔 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종전 선언이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10월 8일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화상 기조연설에서도 “종전 선언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북한군의 우리 국민 살해를 ‘사망’으로 표현하면서 “평화 체제의 절실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종전 선언이 비핵화와 평화의 문을 여는 신통력을 가진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것 같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럴듯한 종전 담론에 현혹되기 쉽다. 정전협정이 67년간 전쟁 재발 없이 유지되어 왔으면 이것이 사실상 종전이고, 법적 종전은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이루어진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종전이다. 모든 평화협정 전문이나 제1조가 “이 협정(또는 조약)이 발효되는 날 전쟁 상태가 종료된다”는 종전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는 종전 선언을 골백번 해도 종전이 될 수 없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종전을 선언한 예외적 사례로 1956년 10월 19일 모스크바 일·소 공동선언이 있지만 이는 정식 조약 체결 절차를 거쳐 법적 구속력을 갖춘 사실상 평화협정이다. 태평양전쟁을 종식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소련이 영토 문제를 이유로 서명을 거부함에 따라 영토 문제를 미결로 남겨둔 채 전쟁 상태를 종료하기 위한 협정만을 공동선언이란 이름으로 별도로 체결한 것이었다.

2020년 9월 23일 "포용성을 강화한 국제협력, 모두를 위한 자유"를 주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 총회 영상 기조연설을 하고있다/청와대
평화 체제란 평화협정과 이의 이행을 보장할 장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간 한반도 정전 체제를 대체할 평화 체제가 수립되지 못한 것은 정치적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을 위한 4자 회담이 1997년 12월부터 1998년 8월까지 6차례나 열렸지만 주한 미군 철수 문제부터 논의하자는 북한 주장에 막혀 아무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 4항도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선언했고,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 공동성명 2항도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공약했다. 지난 15년간 사실상 종전 선언을 두 번이나 한 셈인데 종전이 아직도 요원한 건 평화 체제 수립과 연계된 비핵화를 북한이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은 대략 문안 협상, 가서명, 정식 서명, 비준서 교환과 발효의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는 기적 같은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핵 동결, 핵 시설 폐기, 핵무기와 핵 물질의 폐기·반출, 핵 폐기 검증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평화협정이 미·북 수교 의정서와 대북 안전 보장과 함께 비핵화 완료 시점에 맞추어 발효하려면 서명까지 절차는 그 이전에 완료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평화협정을 어차피 체결해야 한다면 그 과정에 종전 선언을 하나 추가하는 것은 대수가 아닐 수도 있다. 어느 단계에서 종전 선언을 하는 게 비핵화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북한이 핵 무력 증강을 계속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종전 선언으로 또 한번 ‘평화 쇼’를 벌이거나 일회용 대북 선심용으로 허비해 버리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하책(下策)이다. 이는 친북 세력의 활동 공간을 넓혀주고 유엔군 사령부 해체와 주한 미군 철수 캠페인에 악용될 뿐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 핵 동결 이후 본격적 핵 폐기에 들어가는 단계에서 종전 선언으로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의 일부라도 때울 수 있다면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미국의 대북 협상 자산 가운데 제재 해제 카드는 핵무기와 핵 물질을 폐기·반출하는 데 사용할 핵심 수단이므로 비핵화의 최종 단계까지 함부로 내줄 수 없고 가급적 아껴두어야 한다. 종전 선언을 안 하려고 제재를 완화해 주기보다는 제재 해제를 늦추는 데 종전 선언을 활용하는 게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종전 선언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한반도의 모든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일부에서 우려하는 대로 대한민국의 안보가 종전 선언 하나로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前 외교안보 수석, 조선일보(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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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손질로 끝나는 ‘종전선언’
미국 한반도 전략 원칙은 先 비핵화와 中 팽창 방지
文 종전선언 집착은 미국 군사적 통제 일탈 의도
美北 관계 정상화하면 비핵화·동북아 평화 가능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밀려 그동안 휴면 상태에 있던 한·미 간 문제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을 계기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정권의 안보·외교·국방 라인은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을 설명하기 위해 동시다발로 워싱턴을 찾아 미국의 의도를 타진했다. 종전선언이 있으려면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의 참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측 설명은 남북 관계가 답보 상태에 있는 만큼 북한의 선(先) 비핵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먼저 종전선언으로 물꼬를 터서 북한을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결과는 낭패였다. 미국 측은 ‘남북 관계는 비핵화와 불가분’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난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은 “문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先後)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또 (종전선언이) 비핵화와의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 측이 선(先)의 입장인 데 반해 미국은 후(後)의 입장이고 한국은 종전선언이 비핵화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는 데 반해 미국은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간과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술적 핵심 과제는 중국이다.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이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동북아는 부차적이다. 미국이 유럽의 나토(NATO) 판인 인도·태평양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구성한 것은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지만 문 정권은 중국의 눈치를 보며 발을 빼고 있는 처지다.
미국은 지금 동북아의 대치 구도에서 어디에 대(對)중국 전선(前線)을 긋느냐에 골몰하고 있다. 이 판국에 한반도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한반도 전체가 명실상부하게 ‘중국 색깔’로 칠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오늘날처럼 중국이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에 맞서는 세력으로 팽창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시대의 발상이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시아를 중국에 넘겨주고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반도에서 쉽사리 발을 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엔사(司)가 해체돼야 하고 미군이 철수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통제에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끈질기게 한국에서 미국의 존재를 희석하는 문제, 즉 전작권 이양, 사드 배치, 한·미 군사훈련 축소 그리고 마침내 종전선언까지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 속내를 미국은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동북아 사태는 2주 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그리고 장기적 시각으로 중국의 지도부가 더 민주적 방식으로 교체될 수 있느냐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정되거나 진화할 수 있다. 미·중 관계가 충돌이 아니라 협력으로 방향을 틀면 동북아의 긴장은 당연히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다. 그 대표적 변화의 모습은 종전선언 수준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와 북한·일본 관계 개선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통일이 최선이지만 동북아의 긴장 해소와 평화 유지를 위한 차선의 길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는 길도 미·북 관계 개선에서 출발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북, 북·일 관계의 정상화는 한반도 전체, 한민족 전부를 위해 바람직한 통로(通路)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존재가 결정적이다. 중국이 가로막으면 북한은 미국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고 한국도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쉬운 길은 없다.
종전선언 같은 프로파간다와 북한 심기 건드리지 않기 따위로 언저리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긴 안목의 전력 전술로 나아가야 한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으로부터의 모욕을 참는 것이 북한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과 우방의 신뢰와 존경을 잃고 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북한으로부터도 무게감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별 실효성 없는 발언이나 제안으로 당사자들(미국 또는 북한)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일은 그만했으면 한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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