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 ‘아마추어 공수처’]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규명 막는 정부, 무얼 숨기려 하나]
존폐 위기 ‘아마추어 공수처’
[기자의 시각]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 지난 1월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내세운 목표였다. 그랬던 공수처가 출범 11개월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출범 이후 자체 인지 사건이 0건이기 때문도 아니고,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손준성 검사에 대한 영장이 세 차례 기각된 것 때문도 아니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검사가 판사 앞에서 “우리 공수처는 (수사) 아마추어”라며 법원에 손 검사 영장 발부를 읍소했던 게 결정적이었다. 법조인들은 “스스로 존재 의의를 부인한 촌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월 21일 당시 남기명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법무부장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현판 제막식에서 현판식을 갖고 있다./이태경 기자
지난 11개월 공수처는 무얼 했을까. 지난 3월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소환 조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을 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현 정권에서 검찰 요직을 두루 차지한 실세 중의 실세 조사였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출범 약속대로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에 포토라인은 없었다. 공수처는 일요일에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보냈고 이 지검장은 과천시 모처에서 관용차로 갈아타고 몰래 공수처에 들어와 면담 조사를 받았다. 공수처가 면담 기록도 남기지 않아 조사가 인권 친화적 분위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신 “공수처 조사받으면 공수처장 관용차를 보내달라고 해야겠다”는 조롱만이 남았다.
그러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선 180도 다른 수사 기관이 됐다. 지난 10월 손준성 검사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손 검사 측과 향후 출석 날짜를 조율하다가 돌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 후에도 공수처는 다시 출석 일정을 조율하며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하더니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재차 법원에서 기각됐다. 판사 출신 여 차장은 최근 주변에 “수사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위법 압수수색했다가 법원에서 효력이 취소되고, 대검 감찰부 ‘하청 감찰’ 등 여러 논란만 빚었다. 특히 공수처 설립 취지를 의심케 하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만 부각됐다. 여운국 차장은 여당 의원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지원 국정원장 등이 고발된 ‘제보 사주 의혹’ 수사는 답보 상태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취임사에서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지만 ‘윤수처(윤석열 수사처)’라는 지적만 반복되고 있다.
‘아마추어 공수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공수처는 내년 예산으로 약 200억원을 요구했는데 비슷한 규모 검찰 지청 예산의 9배다. 한 변호사는 “올해 여름 성폭력피해자 인적 사항을 유출한 검사와 판사의 직무유기에 대해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는데, 반년 넘게 수사 착수 여부도 통보받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무엇일까? 허탈감 아닐까”라고 했다.
-이정구 기자, 조선일보(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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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규명 막는 정부, 무얼 숨기려 하나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북한군 피격 해수부 공무원 형 이래진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진상조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1.07.08.
작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과 관련, 청와대와 해경이 군 기밀을 제외한 정보를 유족에게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정부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하면서도 이를 입증할 자료를 공개하라는 유족의 요구는 거부해 왔다. 법원은 지난달 청와대가 국방부·해수부 등에서 받은 보고 내용과 각 부처 지시 내용, 이씨 동료 진술 조서 등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청와대가 끝까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작년 이씨 아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빠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할 때 이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편지를 썼다. 문 대통령은 “진실을 밝혀내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진심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말이었다. 청와대는 유족의 정보 공개 요청을 거부했고 잇단 전화와 방문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수사는 1년 넘게 제자리다. 북한군 대화 녹음 감청 파일은 군사 기밀이라고 공개 거부하더니 청와대 자료는 대통령 기록물이라 안 된다고 했다. 대통령이 대놓고 거짓말을 한다.
그간 유족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하기 힘들다. 1주기 때 제사상도 차리지 못했고, 고3인 아들은 월북자 가족이라는 낙인에 육사 진학을 포기했다. 어린 딸은 아직 아빠가 죽은 줄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이씨 아들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아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겠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북한에 책임을 묻고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것도 무시했다. 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정보 공개를 막나.
유족들은 “청와대와 정부의 부실 대응이 드러날까봐 이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청와대는 이씨가 북 경비선에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시간 후 이씨는 사살됐다. 청와대는 다음 날에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자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국민이 사살돼 시신이 소각됐는데 무엇을 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을 거론하며 “긴박한 사고의 순간에 대통령이 사고를 챙기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과 관련해선 한사코 정보 공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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