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1인치의 장벽’ 무너뜨린 지금부터 시작이다] [해외로 간 풍각쟁이 오빠]

뚝섬 2022. 1. 13. 06:23

‘1인치의 장벽’ 무너뜨린 지금부터 시작이다

 

2년 전 봉준호 “자막의 장벽 넘으면 더 좋은 영화 있다” 말해 이젠 “한국어로 즐겨야” 늘어
언어 문제 아니라 콘텐츠가 중요
 

 

“에이~ 우리나라에선 안 돼요.”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처음 시작하던 2016년 무렵, IPTV 관계자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냐’ 물으면 늘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한국인은 콘텐츠에 비용 지불하는 걸 꺼리고, 콘텐츠도 많이 펼쳐 놓고 고르는 백화점식을 좋아한다’는 논리였다. 당시 국내 IPTV 업체들은 너나없이 10만종 넘는 콘텐츠를 갖고 있었고, 넷플릭스 보유 콘텐츠는 1만종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무료 기간인 한 달만 보고 구독을 끊는 비율이 세계에서 한국이 제일 높아, 넷플릭스 본사가 자존심 상해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오리지널 콘텐츠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내놓은 2017년에도 국내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7만~8만명 정도였다.

 

불과 5년여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OTT(Over-the-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가입자 수는 2020년에 이미 1135만명을 돌파하며 유료 TV 가입자 수를 앞질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과 ‘집콕’이 일상화되며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들은 대운을 탔다. 한국어 드라마와 영화도 2019년 ‘킹덤’으로 시작해 ‘스위트홈’ ‘승리호’ ‘오징어게임’ ‘지옥’ 등이 잇따라 세계와 접촉 면을 넓히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작년 말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외신들의 혹평 속에서도 글로벌 드라마 순위 3위(플릭스패트롤 기준)까지 올랐다. ‘한국에서 만든 영상 콘텐츠는 볼만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청신호다.

 

연이은 세계 흥행으로 축적된 콘텐츠의 힘은 많은 걸 바꾸고 있다. 우선 한국어 자막. 2020년 미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했었다. ‘오징어 게임’은 그 ‘1인치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공개 첫 4주(28일) 만에 세계는 이 작품을 총 16억5045만시간 동안 시청했다. 햇수로 18만8000년, 영화와 TV 부문 통틀어 넷플릭스 사상 최다 시청 시간이다.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선 ‘한국 콘텐츠를 제대로 보려면 더빙이 아니라 자막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비서관 출신 팟캐스트 운영자인 존 로베트,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 겸 배우 타이카 와이티티 등이 앞장서서 “더빙 말고 자막”을 주장했다.

 

자막 장벽’에 구멍이 뚫리면서, 한국어 콘텐츠를 대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해 말 ‘라라랜드’를 보유한 미국 엔데버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종합 미디어그룹 ‘바이아컴 CBS’와 파트너십을 맺었던 CJ E&M 관계자는 “’설국열차’를 영어로 찍었던 것처럼, 콘텐츠 해외 진출을 위해선 영어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했다. 해외 미디어 기업의 경우 주주들이 먼저 나서서 한국 콘텐츠사와 제휴할 것을 요청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 이상 꼭 영어로 된 콘텐츠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 한국 제작사와 파트너가 되고 한국어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이나 성장 동력 측면에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에도 호재가 된다는 것이다.

 

오영수 배우는 골든 글로브 수상 소감으로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 속의 세계”라고 했었다. 우리 콘텐츠 기업들은 글로벌 플랫폼에 올라타거나 적극적 업무 제휴 등을 통해 세계를 우리 콘텐츠 속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구멍 뚫리고 무너져가는 ‘1인치의 장벽’을 넘어, 한국 콘텐츠 산업은 전진하고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태훈 기자, 조선일보(22-01-13)-

_________________________

 

 

해외로 간 풍각쟁이 오빠

 

[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2012년에 싸이가 노래한 ‘강남스타일’은 ‘한국 오빠’, 정확하게는 ‘강남 스타일의 노는 오빠’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허나 계보 없는 오빠가 어디 있겠는가! ‘노는 오빠’의 계보를 찾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0년대의 ‘풍각쟁이 오빠’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풍각쟁이 오빠’를 전후(前後)로 해서도 노는 오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풍각쟁이 오빠’가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그 오빠가 여전히 소환되고 부활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의 박향림이 노래한 ‘오빠는 풍각쟁이’는 박영호 작사, 김송규(김해송) 작곡으로 1938년에 발매되었다. 당시 음반 광고에서 “돌부처라도 무릎팍을 치고 돌아앉을 익살 진진한 명랑 가요”라 소개한 만큼 이 노래는 웃음을 지향한 ‘만요(comic song)’로 볼 수 있다. 노래 속 오빠는 술 마시고 놀기 좋아하고, 회사는 지각하면서 월급이 안 오른다고 짜증 내는 제멋대로 사는 오빠다. 노래에서는 현실 남매의 모습도 보인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고, 여동생에게 심부름시키고 엄벙뗑하고, 극장은 혼자 가면서 여동생 편지를 훔쳐보는 그런 오빠 말이다. 노래에서 여동생은 콧소리와 “무어(뭐)”라는 감탄사를 섞어가며 오빠를 ‘풍각쟁이’라고 놀리고 투정 부린다.

 

그런데 이 오빠가 일을 냈다. 시대와 상관없이 끝없이 부활하더니만 이번에는 해외로 갔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24일, 쿠바의 제2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에서 ‘Electo Silva 국제합창작곡콩쿠르 2021′이 열렸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 서지웅(Jee Seo)이 편곡한 ‘옵빠는 풍각(風角)쟁이’(영문명 Oppa Is a Free Spirit)가, 다리아 아브루 페라우드(Daria Abreu Feraud)의 지휘로 연주되어 편곡 부문 1위에 올랐다.

 

쿠바의 현지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우리말로 “난 몰라 난 몰라 난 몰라”로 화음을 쌓아가며 시작된 ‘오빠는 풍각쟁이’는 시종일관 감탄과 웃음을 선사했다. 정확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 편곡자 서지웅씨를 찾았고,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에 살고 있는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노래”라 ‘오빠는 풍각쟁이’를 선곡했고, “우리말의 맛을 살리면서도 합창의 특성을 잘 이용해 원곡의 해학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을 때까지 지워나간 마지막 수정 작업이 어려웠다”고 말하는 그! 덕분에 풍각쟁이 오빠가 시대를 넘어 해외까지 갔으니 풍각쟁이 오빠도, 그 오빠를 부활시킨 오빠도 모두 대단하다.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조선일보(2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