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심상정만 정상 같다
[박정훈 칼럼]
대통령을 뽑는 건지 구청장 선거인지 모를 포퓰리즘의 광풍에서
그래도 대선 후보다운 국가 과제를 말하는 것은 안·심 두 후보뿐이다

작년 11월 '코라시아 2021 포럼'에 4당 대선 후보가 참석했다. 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 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뉴시스
한 달 넘게 이어진 CJ대한통운 택배 파업엔 민노총 노조원 1600여 명이 참가 중이다. 대한통운 택배 기사 2만명 중 8%만 참여한 소수의 파업인 셈이다. 그런데도 배달이 지연되고 일부 지역에선 배송이 중단돼 택배 대란 우려까지 빚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한 택배 기사가 공개한 CCTV 영상에 해답이 담겨 있었다. 영상엔 노조원들이 비노조원을 따라 다니며 작업을 방해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찍혀 있다. 물건을 던지고 발로 차는가 하면 멱살 잡고 폭력까지 휘두른다. 8%가 92%의 목줄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급기야 일감이 끊긴 비노조원들이 “우리는 일하고 싶다”를 외치며 파업 반대 집회를 여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이한 것은 여야 대선 주자들의 이례적 침묵이다. 표가 되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인 후보들이 배달 차질에 대한 여론 불만이 고조되는데도 비판 한 마디 한 일이 없다. 친노동 노선의 이재명 후보는 노조 편 드는 코멘트를 내놓은 것이 전부고, 윤석열 후보는 보수의 가치를 대변한다면서도 택배 파업엔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필시 선거 공학적 셈법 때문일 것이다. 민노총이라는 고도로 조직화된 집단을 잘못 건들면 손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표가 안 되더라도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지금 우리 상황에선 노동 개혁, 연금 개혁 두 가지가 그런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민노총으로 상징되는 귀족 노조가 기득권 적폐 세력이 된 지 오래다. 폭력을 휘두르고, 거리를 불법 점거하고, 공장을 멈춰 세우고, 집단 괴롭힘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막무가내 집단을 그냥 놓아두고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연금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째각째각 다가오는 예정된 미래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지금의 제도를 방치한다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33년 뒤 완전 바닥나게 된다. 온 국민의 노후가 파산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국가 이슈가 또 있나.
노동·연금 개혁은 2030세대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걸린 청년 문제이기도 하다.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때문에 청년들은 새로 고용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취업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노동 제도로 과보호 받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일자리 기회를 빼앗고 있다. 연금은 대놓고 세대 착취를 조장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예정대로 2055년 기금이 바닥나면 현재 32세인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일자리·연금의 ‘사다리 걷어차기’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청년들의 미래는 없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청년 이슈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입만 열면 2030을 위한다고 노래 부르는 후보들이 이 문제엔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참 기이한 노릇이다. 이 후보도, 윤 후보도, 지금껏 변변한 노동·연금 개혁안을 내놓은 적이 없다. 이 후보는 엊그제 6대 노동 공약을 발표했지만 주 4.5일제 같은 퍼주기 선심성 제안이 전부였다. 그는 ‘5대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면서도 경제를 발목 잡는 세계 최악의 노동 환경을 어떻게 고칠지는 말하지 않는다. 윤 후보도 말로는 ‘귀족 노조 철폐’를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노동 개혁 공약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노동계 숙원인 공무원 타임오프제와 공기업 노동이사제에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연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는 “연금 개혁을 해야 하지만 지금 단계에선 (하는 것이) 독선”이라며 구렁이 담 넘듯 도망 다니고 있다. 윤 후보 입장이 차라리 솔직하다. 토론회에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면 선거에서 진다”고 실토했다. 연금을 ‘많이 내고 적게 받는’ 구조로 고치겠다고 하는 순간 연금 받는 고령자 표가 날라간다는 뜻이다.
두 후보의 비겁함과 대비돼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이 안철수·심상정 후보다. 안 후보는 노동이사제·타임오프제 반대를 분명히 하며 연일 노동 개혁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연금 등을 통합 일원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심 후보도 국민·기초·퇴직연금 세 가지를 종합적으로 수술하는 개혁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인기 없어도 꼭 해야 할 국가 과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안 그래도 이·윤 양강 후보의 퍼주기 경쟁이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 많다. 동네별로 쪼갠 동(洞) 단위 공약, 특정 아파트 단지를 위한 핀셋 공약을 쏟아내는 후보들이 가장 중대하고도 심각한 국가 과제는 피해가고 있다. 이게 대통령 선거인지, 구청장·동장 뽑는 선거인지 헷갈릴 지경인데 그나마 대선 후보다운 어젠다를 말하는 것은 안철수·심상정뿐이다. 포퓰리즘 광풍이 휩쓰는 미친 선거판에서 안·심 두 후보만 정상 같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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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 결국 후보의 인성이 승부처다
경쟁 치열하고 부동층 많을 때 대선 후보 토론 중요해져
위기 헤쳐나갈 선장 뽑을 때 유권자는 ‘사람’을 본다

(왼쪽부터) 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정의당 심상정,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조선일보DB
대선 TV토론을 하자고 먼저 달려드는 쪽은 대개 지지율이 열세인 경우다. 앞선 후보를 따라잡으려면 어떻게든 판을 벌여야 기회가 생기니까.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계속 토론을 제안했다. 윤 후보가 머뭇거리자 ‘토론을 피한다’는 프레임으로 공격했다. 결국 윤 후보는 양자토론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제동을 걸었고 법원은 안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토론은 4자 구도로 가는 듯했다. 그런데 또 반전. 이번엔 국민의힘에서 불발된 TV토론과는 별개로 이·윤 후보 간 양자 토론을 제안했다. 어떤 구도가 됐든 조만간 토론이 열릴 모양이다.
TV토론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1960년부터 대선 후보 TV 토론을 해온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몇몇 정치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대선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다만 지지율의 작은 부침은 가져온다’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후보들의 지지율이 막상막하일 때, 또 부동층 비율이 높을 때는 다른 얘기다. 작은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판세가 요동치는 건 그만큼 부동층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부동층이 많은 2030들은 후보 개인은 물론, 정당과도 오래 ‘사귄’ 사이가 아닌 만큼 후보나 정당과의 유대가 약해 의외의 계기로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TV 토론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미국에서 취재한 대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토론은 201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3차 토론이었다. 힐러리는 토론을 앞두고 ‘가짜 트럼프’로 변신한 토론 코치와 연습 게임을 뛰었고, 스스로 트럼프가 되어 ‘가짜 힐러리’의 허점을 공격하는 훈련도 했다고 한다.
수십 년 TV 인기 예능 프로 사회자였던 트럼프와 말 잘하기로 소문난 정치인 힐러리는 90분 동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붙었다. 고성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트럼프와 힐러리, 그리고 사회자까지 가세해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어이 없는 순간도 있었다. TV 토론의 가장 중요한 효과가 남의 편이나 중도 끌어오기가 아니라 자기 편 결속이라고 하지만 이런 토론을 왜 하나 싶을 정도로 반감만 들었다.
돌이켜 보면 미국 역대 TV 토론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결정적 장면은 대개 후보의 인성이 표출되는 장면이다. 후보가 누군가를 무시하듯 찡그린 표정, 초조해서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는 버릇, 허를 찌르는 질문을 유머로 받아 치는 여유 같은 것들이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외우는 암기력이나 정책의 디테일을 설명하는 능력이 마음을 움직이는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TV 토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은 대부분 비슷하고, ‘퍼주기’의 변주라 크게 토론 거리가 되지 않는다. 북한 관련 정책이 조금 다를까. 그렇다면 답은 사람이다.
어떤 토론도 진공관 속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오미크론이 쓰나미처럼 번져 확진자가 하루 수만 명을 헤아리는 상황에서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는데, 코스피 지수가 급락해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은 날로 깊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은 토론에 나서게 될 것이다. 눈앞에 닥친 겹겹의 위기와 악재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갈 배를 이끌어갈 선장을 뽑는 것이 이번 선거의 의미다. 둘이든 넷이든, 어떤 방식으로 토론하든 후보들이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 할 것은 자신이 어떤 지도자가 될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토론에서 상대를 이기는 방법보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방법에 더 집중해야 한다.
-강인선 부국장, 조선일보(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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