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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셉스키의 화려한 은퇴]

뚝섬 2022. 3. 14. 06:21

듀크대 블루 데빌스 농구부 마이크 시셉스키 감독이 지난 2월 19일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미국 아마추어 스포츠 이벤트 중 최고 인기를 누리는 남자대학농구 최강자를 가리는 68강 토너먼트가 16일 스타트 총성을 울린다. 3월의 광란(March Madness), 빅 댄스(Big Dance)라고 불리는 이 토너먼트가 끝나는 4월 초까지 미국 전역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학연(재학생·동문)과 지연(지역사회)이라는 두 연대감이 숱한 명승부·이변과 결합해 일으키는 화학 작용이 메가톤급이다.

 

올해 3월의 광란이 아직 시작하기도 전인데,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시선이 쏠린다. 바로 듀크대 블루데빌스 농구부 마이크 시셉스키 감독. 폴란드계인 그는 성(Krzyzewski)을 따 ‘코치K’란 애칭으로 불린다. 지난달 만 75세가 넘어선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코트에서 물러난다.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드물게 ‘은퇴 투어’도 했다.

 

올해 듀크대가 ‘3월의 광란’ 무대에 설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시셉스키가 1975년부터 47년 동안 대학농구 지휘봉을 잡으면서 이뤄낸 성적은 이미 ‘전설급’이다. 그가 13일까지 쌓아 올린 1198승(367패)과 승률(76.6%)은 미 대학감독 통산 1위 기록이다. 1980년 듀크대를 맡은 뒤 지난해까지 40시즌(2020년엔 코로나로 열리지 않았다) 동안 무려 35차례나 팀을 ‘3월의 광란’ 무대로 이끌었고, 5차례 내셔널챔피언에 등극했다.

 

듀크대 하면 곧 시셉스키를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듀크대 교내 매장의 3분의 1 정도 공간을 차지하는 ‘코치K’ 상품 진열대는 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홈경기가 열릴라 치면, 선착순 입장 기회를 얻으려는 일반 학부생들이 며칠 전부터 홈 경기장인 캐머런 인도어 스타디움(2000년부터 ‘코치K 코트’로 명명됐다) 앞에 텐트를 차려놓고 줄을 서는데, 그 장소에 아예 ‘시셉스키빌(Kzryzewskiville)’이란 이름이 붙여져 팻말까지 박혔다.

 

시셉스키가 단순하게 성적, 결과만 추구했다면, 지금 같은 위치에 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듀크대를 졸업한 한 국내 대학교수는 “무엇보다 코치K가 정직과 성실, 그리고 원칙이라는 가치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보다는 팀워크를 중시한 그는 주전과 후보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선수에게 뛸 기회를 줬다. 혹독한 훈련보다는 대화와 포용으로 선수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었다. “한 명의 선수는 손가락 한 개에 불과하지만, 5명이 뭉치면 단단한 주먹이 된다. 팀이 함께 울고, 웃고,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열면 승리는 바로 곁에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시셉스키는 팬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며 팀 운영에 투명성을 더하면서 듀크대 구성원을 하나로 묶었다. 몇몇 NBA 명문 구단이 자신의 연봉 5~6배에 달하는 수백억원 조건을 내걸고 감독직을 제의했지만, ‘우리들의 감독으로 남아달라’는 한 재학생의 이메일 한 통에 감동받아 듀크대에 남았던 일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때 한국 선수단이 부진한 것에 대해 여러 이유가 거론됐는데, 그중 “한국은 스타에만 열광할 뿐 그를 키워낸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다”며 “지도자를 예우하지 못하는 한 한국 체육의 미래는 어둡다”고 지적한 한 체육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한국의 체육 지도자 하면 성적지상주의, 편가르기, 폭행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 꿈나무 양성에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바치는 지도자가 수백, 수천 배 많다고 믿는다. 정책 결정권자들이 이런 지도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한국의 코치K’가 나오길 기대하는 게 헛된 꿈은 아닐 것이다.

 

-강호철 스포츠부장, 조선일보(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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