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한 가지
[천광암 칼럼]
첫날 반도체공장부터 달려간 바이든
‘세계 최초’ 비장의 카드 내보인 삼성
尹 안보·경제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반도체 대통령’ 기회 잡아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최첨단 3나노 공정 반도체 웨이퍼에 사인을 하고 있다. 평택=양회성 기자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을 할 때 일본부터 가는 것은 관례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그래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하고, 80세라는 나이와 장시간 비행 사실을 잊은 듯 공항에 내리기 무섭게 반도체공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미국에서 보여 온 행보를 곰곰이 돌이켜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미국 대통령은 매해 연초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해서 연두교서 연설을 한다. 올해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 명단에는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팻 겔싱어 CEO가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인텔이 오하이오주에 지으려는 첨단 반도체공장에 대해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연설 도중 겔싱어 CEO를 가리키며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인텔의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초당적혁신법안’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의원들에게 호소했다. 이 법안은 양원에서 각각 다른 명칭으로 통과된 뒤 현재 병합심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앞으로 5년간 반도체 관련 분야에 52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밖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반도체 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거나 의회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중국과의 안보·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반도체가 핵심 중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입에서 “반도체가 석유보다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인텔의 공장 예정지를 ‘꿈의 땅’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산업계에는 인텔의 꿈이 한낱 ‘꿈’으로 끝날 수 있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인텔이 7나노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사이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는 5나노, 4나노를 넘어 이제 3나노 양산을 서두르고 있다. ‘초(超)격차’가 놓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삼성 반도체에서 서명한 웨이퍼의 지름은 300mm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웨이퍼를 ‘서울∼부산 거리의 지름을 가진 웨이퍼’로 확대한다고 가정할 때 그 안에 있는 개미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다. 신기(神技)에 근접한 이 기술을 우리와 대만만 갖고 있다.
더구나 삼성이 두 정상에게 선보인 웨이퍼는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3나노까지는 기존 기술로도 가능하지만 2나노 이하는 GAA 없이는 못 나간다. TSMC는 3나노는 기존 기술로 가고, 차세대인 2나노부터 이를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TSMC에 밀리기만 해온 삼성으로서는 모처럼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웨이퍼에서만 승부가 나는 산업이 아니다. 패키징 등 부가기술, 마케팅력, 소재·장비 등 연관 산업, 용지·용수·전력·세제 환경, 전문 인력 양성 및 공급 능력 등 사실상 한 나라의 총체적 역량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삼성과 TSMC, 고수끼리의 승부에서는 기술력보다 나머지 변수가 더 크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이런 사실을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4월 ‘반도체화상회의’를 주재하면서 웨이퍼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깨달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이 나서서 “반도체 강국을 위해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여당은 특위까지 만들어 반도체특별법을 제정한다며 뒤늦은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올 1월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여야 의원들과 정부 부처 관료 등 강고한 ‘규제 기득권 세력’의 손을 타면서 누더기가 된 조문들로 채워져 있다. ‘대기업 특혜 불가론’ ‘지방 균형 발전론’ 등으로 포장된 규제 논리를 앞세워 마구 칼질을 해댄 결과였다. 껍데기만 남은 지원법으로 미국 중국 일본 대만이 사활을 걸고 덤비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겠다는 것은 몽상일 뿐이다.
‘쭉정이 특별법’은 없느니만 못하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 또 한번 ‘누더기 입법 공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이 디테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한다. ‘반도체 대통령’이라는 소명감이 필요하다. 국회가 장애물이 되면 수십 번이라도 설득하고 호소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좋은 모델이다. 바이든에게는 없는 ‘신기(神技)’를 썩혀선 안 된다.
-천광암 논설실장, 동아일보(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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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중국과 얼굴 붉혀야 얻는다
中 ‘14억 시장 포기할 거냐’ 압박할 것
“첨단기술은 美와 협력” 당당히 설득하라
“한국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기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지난해 초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직후 문재인 정부는 미중관계에 대한 입장이 담긴 문서를 미국에 보냈다. 여기에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지낸 인사가 전한 얘기다. 그는 “미국에 시간을 달라고 했고 미국도 동의했다”고 했다.
실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낀 미중 갈등 속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모호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 뒤에 숨었다. 지난해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은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을 “신기술 관련 분야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중국에 정통한 외교관은 정 전 장관을 두고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정말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순진했다”고 혀를 찼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외교관은 주중 한국대사에 대해 “장하성 대사도 했는데 누가 간들 못하겠느냐”고 했다. 그만큼 장 대사가 역할이 없었다고 꼬집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 동안 중국 전문가와 매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미중 사이 균형외교’라고 높이 샀다. 그러다 임기를 1년 남긴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는 미국 쪽으로 방향타를 급히 틀었다.
중국은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포함되자 “불장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해 9월 한국에 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각자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우려(關切)를 존중해야 한다.” 문 대통령 면전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중국의 전문가들, 기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왜 자주적 외교를 하지 않고 미국에만 의존하느냐”는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이 한국의 반중 정서를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인식까지 드러낸다.
성균중국연구소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3월 ‘2022 한중 전문가 상호인식 조사’를 발표했다. 지난해 말 한국·중국 전문가 각각 100명을 심층 조사했다. 한국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 저해 요인으로 ‘역사문화 인식차’와 ‘민족주의 갈등’을 꼽았다. 반면 중국 전문가들은 ‘국제정치 등 외부요인’이라고 했다. 미국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미동맹 강화를 천명한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중국은 ‘요구 외교’를 재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팔인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시 주석 특사로 취임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따로 만나 공개된 자리에서 “한중관계 발전 관련 5가지 건의”라며 요구를 나열했다. “민감한 문제를 타당히 처리하라”고 요구한 왕치산은 “한중 산업 공급망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왕이 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화상 회담에서, 중국 외교부 표현에 따르면 “4가지 한중관계 강화 방안을 제기했다”. 왕 부장은 공급망 차단에 반대한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두 사람 다 공급망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지향을 확인한 중국은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것이냐’고 압박해 올 것이다. 마찰을 피하겠다는 저자세로는 안 풀린다. 중국에 정통한 외교관은 “중국은 주변에 우군이 없다. 그래서 한국이 필요하다”고 했다. “첨단기술 협력만큼은 한국의 살길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며 분명한 레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존중받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에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고 했다. 말뿐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윤완준 국제부장, 동아일보(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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