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저’ 컬렉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올 2월 17일 취임 전에 살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를 26억1700만 원에 팔았다. 중개업자를 통하지 않은 직거래였고, 소유권 이전이 미뤄져 90일 넘게 사저 매입자가 누군지 베일에 가려 있었다. 25일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통해 매입자가 처음 드러났는데,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67)이었다.
▷홍 회장은 지난해 11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를 111억 원에 공매로 낙찰 받았다. MB가 1978년부터 40년 넘게 살던 곳이다. 2017년 4월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남구 삼성동 사저를 67억 원에 사들였다. 박 전 대통령은 1990년부터 23년간 이 사저에 머물렀다.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 3명이 청와대로 가기 전까지 살던 사저 3곳을 홍 회장이 총 205억 원에 모두 수집한 것이다. ‘대통령 사저 컬렉터’라 할 만하다.
▷1980년 구로공단에서 200만 원을 갖고 의류 사업을 시작한 홍 회장은 2001년 마리오아울렛을 열면서 지금은 연매출 3000억 원으로 사업을 키웠다. 전직 대통령과의 구체적인 친분 관계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업계에선 사저를 매입한 이유를 부동산 비즈니스로 추정한다.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매입했을 때 홍 회장이 “값이 싸게 나오고, 위치가 좋아서 샀다”고 해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 소유의 경기 연천 허브빌리지를 118억 원에 매입하면서 부동산 리조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업계에선 “사업성이 낮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 같다”는 분석도 한다.
▷미납 추징금 납부를 위해 검찰이 매각한 MB 사저를 제외하면 박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당선 전에 살던 사저가 경호 문제로 퇴임 후에는 머물기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사저를 신축해야 했다. 막대한 토지 매입과 건축 비용을 대기 위해 기존 사저를 매각했다. 퇴임 대통령의 사저 문제는 정치적 논란을 불렀고, 수사로 이어지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고향에 ‘퇴임 후 집무실’로 쓸 수 있는 기념도서관을 지을 수 있는 법안이 1955년 의회에서 통과됐다. 부족한 건축 비용을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충당하고, 건물이 완공되면 연방정부가 기증받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화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가옥 등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다른 대통령들의 사저도 앞으로 문화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시점에든 이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원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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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사저’ 컬렉션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주인공 장-바티스트는 수집욕에 빠진 연쇄 살인마다. 여성의 ‘좋은 체취’를 모아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며 체취 수집에 나선다. 마침내 향수를 만들어 몸에 뿌리지만, 향에 매혹된 사람들에게 몸을 뜯어먹혀 목숨을 잃는다. 많은 컬렉터가 장-바티스트처럼 수집욕에 사로잡혀 산다. 돈과 시간, 열정을 아낌없이 쏟는다. 때론 자기 삶이 망가지는 것조차 감내한다.

▶영국 왕 조지 5세는 우표 수집에 온 정성을 쏟았다. 자동차 수집가로 유명한 브루나이 국왕 하사날 볼키아는 7000대의 자동차 컬렉션을 자랑한다. 롤스로이스, 페라리, 벤틀리만 1500대 넘는다. 값지고 희귀해야만 수집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 굴지 화장품 회사 대표는 “젊은 직원들과 대화 자리를 마련했더니 앉은 자리에서 운동화 수집 얘기만 하더라”고 했다. 몇 해 전 아이돌 그룹 지드래곤 생일을 기념해 나이키가 출시한 21만원짜리 한정판 스니커즈가 컬렉터들 사이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수집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자양분도 된다. 고대 지중해의 해상 교통 요지에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헬레니즘 세계 전역에서 서적을 모았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열정이 이룬 결실이었다. 지중해 곳곳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입항하는 모든 선박에서 책을 빼앗듯이 빌려다 필사했다. 다만, 원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필사본을 돌려줬다. 수천년 전에도 ‘원본 확보’는 컬렉터들의 수집 원칙이었다는 뜻이다.
▶수집보국(蒐集報國)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서예가이자 수집가인 고(故) 손재형은 태평양전쟁 말기 도쿄의 한 수집가가 소장한 ‘세한도’를 입수하기 위해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를 찾아갔다. 100일 넘게 설득한 끝에 세한도를 손에 넣고 돌아왔다. 그 뒤 도쿄 수집가의 수장고에 포탄이 떨어졌다니 손재형이 없었다면 세한도는 한 줌 재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소장품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도 있었다. 두 작품은 훗날 또 다른 걸출한 컬렉터인 삼성가(家)로 자리를 옮겼고, 이 중 인왕제색도는 국가의 컬렉션이 됐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를 매입한 이가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이라고 한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도 그가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직 대통령 사저 수집 아니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매입 목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선의의 용도로 쓰였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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