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머니’ 4600조… 유언 쓰기로 상속 전쟁 비극 막아야]
[재산 빼앗기는 노인들]
["요즘엔 자식이 손 안 벌리는 것도 부모로선 호강이지요"]
‘시니어 머니’ 4600조… 유언 쓰기로 상속 전쟁 비극 막아야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이들이 축적한 막대한 규모의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대(大)상속 시대’가 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 이른바 ‘시니어 머니(senior money)’는 지난해 기준 460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거대한 부의 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준비는 턱없이 미흡하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지 미리 정해두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비율은 채 1%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 윌(No Will·유언장 없는 죽음)’의 대가는 참담하다. 준비 없는 이별은 곧장 가족 간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다. 유산 분배에 불만을 품고 굴착기로 집을 부수거나 가족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등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상속재산 분할 사건은 2014년 771건에서 2024년 3075건으로 크게 늘었는데, 이 중 10건 중 8건 이상이 1억 원 이하 재산이 대상이었다. 상속 분쟁은 이제 부유층만이 아닌 대부분 가정이 마주하게 될 생활 문제가 됐다.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유언장 작성이 저조한 데는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 법정 상속 비율대로 나누면 공평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분쟁을 키운다. 부모를 주로 부양한 자녀의 기여도나 특정 자녀에 대한 사전 증여 등 가정마다 사정이 복잡한데 법정 비율의 잣대만 들이대면 억울한 쪽이 생기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까다로운 법적 요건도 걸림돌이다. 민법상 자필 유언장이 효력을 인정받으려면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야 한다. 이 중 일부가 누락되거나 도장 대신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유언장 전체가 무효가 되어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유언의 방식을 유연하게 인정하고 디지털 유언장까지 도입하는 추세다. 지나친 형식주의를 완화하고 유언장 작성과 등록, 보관을 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유언을 남기는 것은 남은 가족들에게 분란의 불씨를 물려주지 않는 확실한 예방책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당부를 전하는 숭고한 과정이기도 하다. 생애를 반추하는 과정에서 사후에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나누는 ‘유산 기부’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 있다. ‘웰다잉(well-dying)’ 차원에서 유언장 쓰기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동아일보(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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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빼앗기는 노인들

미국에서는 60대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재산을 빼앗기거나 경제적 거래, 계약 시 명의를 도용당한 경험이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매년 피해 규모가 365억 달러에 이른다. 캐나다의 경우 이런 피해를 당한 사례가 25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자식에게 주택 명의를 넘겨준 뒤 쫓겨나 쉼터나 친척집을 전전하는 노부부들의 사연도 있었다. 노인들을 상대로 한 ‘경제적 학대’의 사례들이다.
▷1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이런 날을 제정할 필요가 있을 만큼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는 물론이고 경제적 학대, 유기, 방임도 노인학대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도 매년 증가 추세로, 2020년 한 해에만 6259건의 학대 사례가 발생했다. 이 중 경제적 학대 피해는 연평균 400건을 넘는다. 노인 연금과 복지 지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와 관련된 사기, 절도 피해가 늘어났다.
▷자식이 부모의 연금이나 임대료를 무단으로 사용할 경우 처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이는 벌금 혹은 징역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는 ‘경제적 학대’ 행위다. 부모의 동의 없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유언장을 허위로 작성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올해 4월 경기 수원에서는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의 연금보험료를 1억 원 가까이 가로채 생활비, 유흥비 등으로 쓴 50대 딸과 20대 손녀들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제적 학대의 징후들은 다양하다. 노인들이 갑자기 평소보다 큰 씀씀이를 보이거나 거액을 인출하는 경우, 강요당하듯 귀중품을 파는 경우, 재산 명의나 유언장을 변경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 노인 복지 기관들은 “주의를 기울이라”며 이런 징후들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미국의 로펌과 금융회사들은 방지, 대응책을 홍보하고 세미나도 연다. 치매나 기억 감퇴 등을 겪지 않은 경우에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족뿐 아니라 친구, 간병인 등도 경제적 학대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한국에서 노인학대의 문제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 부양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도 무너지고 있다. 받기는커녕 남은 돈마저 억지로 내줘야 하는 부모들의 사례도 늘어날 것이다. 6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식에게 재산을 미리 상속해 주지 말라”는 말을 자못 진지한 조언처럼 주고받는 세태에는 이런 불안이 깔려 있다. 관리할 노후 자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기초생활연금조차 빼앗기는 노인들의 삶은 처연하다. 한 세대를 살아낸 어르신들의 말년이 경제적 학대의 피멍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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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자식이 손 안 벌리는 것도 부모로선 호강이지요"
[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못사는 집 외동아들인 나 "성공해서 엄마·아빠 호강시켜 주겠다"
커서는 연극인 꿈 숨기다 어머니 암 진단 소식에 포기하려고 생각
"먹고살 운명 타고났으니 걱정마세요" 스님 말에 용기 얻어 고백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2년 내내, 머릿속에는 연극 생각뿐이었다. 제대하면 학교 동기들과 극단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제대 날이 다가올수록 두근거렸다.
나는 외둥이였고 집은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호언장담했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성공해서 엄마 아빠를 호강시켜주겠다고. 학년이 오를수록 성적이 떨어졌고, 점수를 맞춰 대학에 갔다. 부모님은 별 내색이 없었다. 그 내색 없음이 나를 자꾸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우연히 연극을 보게 되었고, 곧바로 빠져들었다. 강의실에 있을 시간에 극장에 갔고, 과제를 할 시간에 대본을 썼다. 풍물패에서 연극하며 동기들을 만났고, 그들과 극단 꿈을 꾸게 되었다. 문제는 그 꿈을 부모님이 모른다는 거였다.

집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나는 부모님 몰래 휴학했다. 전공과 다른 꿈을 꾸기가 죄송해서 등록금만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그렇게 동아리 방만 다니며 연극만 생각하다가 군대에 갔다. 2년 내내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연극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 삶을 부모님께 허락받을 수 있을지. 제대 날이 왔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경상도에서 열리는 연극 축제에 자원봉사단으로 참가했다. 일주일간 일하고, 연극을 보고, 뒤풀이를 하며 연극인 선배들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꿈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폐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어머니 전화가 왔다. 집으로 올라올 수 있냐고.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말했고,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이상해서 무슨 일이냐 물었고, 어머니가 말했다. 암에 걸렸다고. 나와 어머니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집으로 떠났다. 내 꿈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꿈을 이룬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부모님의 삶을 물어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제대 며칠 전에 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내가 놀랄까 봐 제대 날까지 소식을 숨겼다. 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었고, 부모님은 내 머리가 다칠까 봐 울었다.
며칠 후에 수술이 잡혀 있었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외식을 하고, 여행을 가고, 한 이불을 펴고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네가 언제 걸음마를 하고, 한글을 읽고, 혼자 서점에 가고, 부모님은 아직도 내가 무언가 빛나는 일을 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호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 나는 연극을 할 수 없겠구나. 호강을 시켜드려야겠구나. 근데 무슨 일을 해야 호강시켜드리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느 산속의 절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마도 입원하기 전에 용기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스님은 한동안 어머니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떤 큰 병이 생겨서 조만간 큰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분명히 나을 거라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울었다. 어머니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지고 빛이 났다. 어머니는 내친김에 아들 관상도 봐달라고 했다.
스님은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나는 불안했다. 만약에 엄청 큰일을 해서 부모님을 엄청 호강시켜 줄 상이라고 하면 어쩌지. 아직 뭘로 호강시켜 드릴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스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마 자기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 먹고살 운명은 타고 났으니 걱정 마세요. 반드시 먹고삽니다. 또 한번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부모님이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얼싸안았다. 우리 아들이 먹고살 운명을 타고났구나!
그러나 잠시 후 스님은 다시 말했다. 근데 정말로 아드님 딱 한 명만 먹고살 운명입니다. 아마도 10년 정도는 혼자만 먹고살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두 분은 한 10년 동안은 아드님한테 뭘 바라면 안 됩니다. 부모님은 약간 헷갈리는 눈빛이었다. 전공과는 다른 일인데, 먹고는 사는데, 혼자만 먹고산다고? 그런 직업이 대체 뭐지? 스님 그 직업이 뭡니까? 글쎄요, 저는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선 부모님께 손을 안 벌리는 것도 호강이지요. 그렇죠, 호강은 호강이죠. 부모님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합장했다.
우리는 다시 나란히 산을 내려갔다. 속세가 내려다보이는 입구에 도착한 순간, 나는 드디어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연극이 하고 싶어요. 두 분 중 한 분이 나직하게 말했다. 아, 스님이 말한 그게 연극이었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스님, 감사합니다.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조선일보(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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