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과 간첩죄 개정 시급하다]
[사고 터질 때마다 "별일 아니다"라는 軍, 정말인가]
[2024년 수미 테리, 2002년 정태인]
한국도 외국대리인 등록법 제정과 간첩죄 개정 시급하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영향력 있는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미 연방법원 재판에 넘겨졌다. /연합뉴스
존리 초대 우주항공청(KASA)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미국 정부에 외국대리인(Foreign Agent)으로 등록했다고 한다. 존리 본부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지난 5월 설립된 우주항공청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한다. 1938년 만들어진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은 미국에서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인사들은 법무부에 등록해 활동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존리 본부장은 앞으로 자신이 한국 정부에서 받는 월급은 물론 언제 어디서 미국 정부의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신고해야 한다. 지난달 한국계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 선임 연구원은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한국판 나사(NASA)’를 표방한 우주항공청이 미국 국적자를 발탁한 것은 30년 NASA에서의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외국대리인등록법의 규제를 받게 되면 한국 정부의 우주개발 상황이 사실상 그대로 미국에 노출될 수도 있다. 미국은 우주개발에 있어 협력 대상이지만 우주항공청 핵심 관계자의 활동이 외국에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고 봐야 한다.
미국이 동맹과 적국에 상관없이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정보 보호를 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국내에서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한국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는 대리인들을 두고 이들을 통해 무제한으로 국내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안보 정보는 물론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정보들까지 유출되고 있지만 우리 대응은 사후 대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이 법 제정 및 국가안보기술연구원법, 간첩죄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 등 정보 역량 강화 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현행 형법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에 기밀을 넘긴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 미국을 포함해 모든 외국에 국가 기밀을 넘기면 간첩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여야는 이 법 도입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간첩죄 적용 확대를 위한 형법 개정도 국익 보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여야 간 입장 차이를 충분히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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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터질 때마다 "별일 아니다"라는 軍, 정말인가
백두체계능력보강사업으로 개발된 신형 백두정찰기. 2021.7.1/뉴스1
우리 군의 대북 정찰 자산인 ‘백두·금강 정찰기’ 관련 자료가 북한에 해킹당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방위사업청은 9일 “정비·운용 교범 등 일반 자료가 해킹된 것은 확인됐으나, 핵심 기술 해킹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반 자료’는 도둑맞았지만 ‘핵심’ 유출은 아직 모르니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해명한 것이다. 백두 정찰기는 북한 전역의 통신 정보, 금강 정찰기는 전방 일대 북한군 영상 정보를 수집하며 대북 감시의 ‘눈과 귀’ 역할을 한다. 북한이 정찰기 운용 자료를 손에 넣으면 우리 감시를 피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방사청은 ‘일반 자료’라고 한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8일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에 대해 “정보 업무에 큰 공백은 없다”고 했다. “대부분 다 정상화됐다”고도 했다. 그런데 같은 날 이 군무원은 간첩죄 위반 혐의로 송치됐다. 간첩죄 적용은 군무원이 빼돌린 블랙 명단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정보 공백은 없고, 대부분 정상화됐다’는 국방장관의 답변은 믿을 수 있나.
지난 2016 년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당했을 때 국방부는 작전 계획 등 민감한 자료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김정은 참수 작전이 포함된 ‘작전 계획 5015′를 비롯, 2~3급 군 기밀이 대거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미군 측이 북한 정보 공유 차원에서 우리에게 준 기밀 자료와 사진까지 유출됐다. 북한이었으면 전부 처형됐을 관련 군인들이 ‘별일 아니다’라면서 태평하다. 2019년 북한 목선 귀순 당시 해경은 ‘삼척항 입항’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삼척항 인근’이라고 발표했다. 북 주민이 항구에 내려 ‘노크 귀순’할 때까지 경계가 뚫린 것을 숨기려 한 것이다. 이듬해 북이 우리 GP에 총격을 가했을 때 군은 “적절히 대응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당시 우리 군의 기관총 원격 사격 체계는 먹통이었다. 군은 거짓말하다 사실이 드러나자 사과했다. 이런 일은 너무 많아 열거할 수도 없다.
군의 축소·은폐와 거짓말은 상습적이고 고질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일이 쌓이면 전투력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군에 대한 국민 신뢰도 떨어진다. 북한 집단을 눈앞에 둔 군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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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수미 테리, 2002년 정태인
수미 테리(김수미·52)가 체포됐다가 풀려났지만, 간첩죄를 저질렀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떠난 뒤 우리 국정원에 협력했다. 간첩행위를 했다고 보기엔 명품백을 선물 받은 뒤 매장의 자기 계정에 등록하는 등 어수룩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외국 정부 에이전트로 활동해도 좋지만,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 내용을 신고하라”는 법 조항을 안 지킨 쪽에 가까워 보인다.
실체 감추면서 ‘객관적 지위’는 누려
그는 지난해 3월 워싱턴포스트에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일본에 양보의 손을 내밀었는지를 다룬 칼럼을 썼다. 윤-기시다 정상회담 직전 시점으로, 국정원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게 공소장에 담겼다. 그가 법을 지켰더라면 법무부에 “어디 어디에 한미일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는 정도를 보고하면 됐을 일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 20년 전 특파원 시절 미 법무부의 사무실 한쪽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에이전트 보고자료’라는 걸 뒤져 봤는데, 아주 개략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수미 테리가 합법적 에이전트로 등록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문은 그 칼럼을 실어줬을까. 미 의회는 그를 청문회에 초청했을까. 그는 한국에서 돈과 선물을 받은 자기 정체성을 감춤으로써 전직 CIA 북한 분석관이라는 객관적 전문가로 행세했다. 그 덕에 유력 매체에 글을 척척 싣고, 미 의회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정직의 의무를 저버렸기에 가능했는데, 미 검찰의 기소는 이 점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인수위 때 정태인 씨(2022년 작고)가 경제1분과 인수위원이라는 핵심 자리에 발탁됐다. 유시민 씨와 대학 동기로,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편하게 놓을 정도로 가까운 참모로 통했던 인물이다. 그때 “정태인은 대선 1년 전부터 캠프에서 노무현 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일했다”는 기사가 여럿 등장했다.
문제는 정태인이 2002년 1년 내내 공영방송 KBS에서 퇴근길 라디오 경제 시사 프로를 진행했다는 데 있다. 경제전문가라면서 발탁된 자리였다. 그는 어길 법 규정이 없었던 탓에 수미 테리처럼 법 위반은 안 했지만, 캠프 참여 사실을 감췄다는 점에서 수미 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진보적 톤으로 방송했는데, 수백만 KBS 청취자를 상대로 간접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 누구도 이해충돌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식의 반칙 사례가 정태인뿐일까. 수많은 대선 때마다 ‘비공개로 뛴 대선 캠프 참여자’가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직함을 앞세워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일이 적잖게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들은 미디어의 신뢰를 훼손시킨 대가로 캠프로부터 ‘열심히 뛴다’는 평가를 챙겼을 것이다.
“캠프 참여 중” 밝히는 게 어렵나
미국 매체에선 부조리 차단의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엔 이런 글이 붙었다. “이 글을 쓴 (네오콘 이론가) 로버트 케이건은 공화당 대선 후보 매케인을 비공식적으로, 무급 형태로 돕고 있다.” 두 달 뒤 오바마 캠프 인사의 글에도 비슷한 ‘편집자의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좋은 글은 얼마든지 게재하되, 독자들이 그 글의 필자가 특정 후보의 조력자라는 걸 알고는 읽으시라는 뜻이다. 독자 친화적이고, 언론의 자부심을 지키려는 조치다.
전문가 그룹의 자존감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종종 실수하지만,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사회는 단단해진다. 우리 수준으로 볼 때 2007년 미국 신문의 노력을 기본으로 만드는 게 대단한 일 같지 않다. 캠프 참여 인사들이 “나는 캠프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히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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