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 '아큐정전'의 주인공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멍청이에 가깝다. 밑바닥에서 설움을 당하다가 혁명과 혼란 덕분에 찌질한 기회를 잡고 분을 풀 듯 온갖 갑질을 일삼는다. 그러다 죄를 뒤집어쓰고 목숨을 잃는다. 소설의 백미는 사형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이다. 주인공은 군중의 시선에 으쓱해 그럴싸한 자세를 취하고 영웅호걸처럼 노래도 부르려고
한다. 여자까지 의식한다. 작가는 천격(賤格)의 허위의식을 코믹하게 그렸지만, 독자는 서글프다.
▶북한을 맹종하다 붙잡힌 사람들은 법정에서 당당한 척했다. 웃는 사람도 많다. "파쇼 타도" "조국 통일" 등 그럴듯한 구호도 외쳤다. 수사 검사에게 '통일되면 당신과 내가 위치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몇 년 전 체포된 통진당 이석기씨는 하고많은 구호를 다 놔두고 "야, 이 도둑놈들아!"라고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취재진 들으라고… -특검에 강제 구인된 최순실씨가 25일 오전 11시 15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최씨는“특검이 내가 박 대통령과 경제 공동체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고 있다”“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너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단죄하는 쪽은 죄인의 초라한 모습을 예상한다. 그래야
법의 심판이 세상에 경종을 울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엔 영웅 행세하는 죄인이 뜻밖에 많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까지 "여자는 몸가짐 잘하고 부자는
각성하라"고 큰소리친다. 그들의 적반하장에 혀를
차지만 그들을 참회로 이끌 뾰족한 수도 없다.
▶최순실씨가 처음 검찰에 들어갈 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죽을죄를 지었다"는 초라한 말 때문이었다. 실제 행동도 죽을죄를 진 사람처럼
했다. 그런데 어제 특검에 강제 출두하면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검사들이 '손자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억울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한몸임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일부에선 고도의 전략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악에 받쳐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최씨는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일어선 '태극기 집회'를
최순실 응원으로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씨 사진을 보면 치켜뜨고 노려보는 눈이 유독 매섭다. 그 또래 시정(市井)의 아주머니에게서 좀체 볼 수 없는 눈이다. 어제 고함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 역시 눈매가 특이하다. 이게
진짜 최순실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아버지
최태민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그런 최씨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여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특검에 대한 불만은 있을 수 있지만 민주(民主)를 농락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런 최씨에 대해 건물 청소 아줌마가 "염×하네"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난세(亂世)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7-01-26)-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민희∙홍상수] 굴곡진 삶 저질러 놓고 그걸 본떠 영화 만든 김민희∙홍상수, 그간 입을 삐죽이던 안티 팬들 반응이.. (0) | 2017.02.20 |
|---|---|
| ['강원 수도권시대'] 서울~양양 1시간대, 통근해도 되겠네 (0) | 2017.01.27 |
| [풍수] 반기문의 선영∙생가 찾아가 요란 떠는 풍수 술사들 (0) | 2017.01.22 |
| [분노의 정점에 섰지만 잠시 숨을 고르자..] 구속(拘束), '누구 구속 빼달라' 전화 한통화로 1억 받은 검사 출신 변호사.. (0) | 2017.01.18 |
| [반기문 고향 마을은 지금... ] "대선 출마, 그거 좋은 거유 나쁜 거유?" (0) | 2017.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