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권력 바라기' 전시회의 참극] [文 대통령의 가야는 왜 세계유산이 되지 못하는가] ['코드형' 역사 전시] [모든 길은 가야史로 통한다?] ...

뚝섬 2020. 3. 12. 06:05

['권력 바라기' 전시회의 참극]

[文 대통령의 가야는 왜 세계유산이 되지 못하는가]

['코드형' 역사 전시]

[모든 길은 가야史로 통한다?]

[가야(伽倻)]

[가야(伽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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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바라기' 전시회의 참극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이 지난 1일 끝났다. 우한 코로나 여파로 박물관이 한 달간 문을 닫으면서 휴관 중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석 달간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57693. 1년 전 열린 '대고려전' 3분의 1 토막이다. 박물관 측은 "전시회는 원래 마지막 2주에 사람이 몰린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저조한 흥행 성적에는 분명 코로나가 미친 영향이 컸다. 하지만 불운 탓으로만 위안하기엔 문제의 본질이 심각하다. 전시회 개막 직후부터 문화계에선 '박물관 역사상 최악의 전시'란 평가가 나왔다. 왜 이 전시가 관람객의 외면을 받았는지 차분히 복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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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전은 2018년 여름 배기동 관장의 지시로 시작됐다. 준비 기간 1 4개월. 통상 중앙박물관의 대형 특별전이 기획부터 유물 섭외 등 최소 2~3년 이상 공들이는 데 반해 너무 짧고 성급했다. 박물관은 대신 홍보에 매진했다. 가야권 지자체와 함께 자전거 타기 대회를 열어 '영호남 화합쇼'를 펼쳤고, 개막 D-100일에 특별전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학예직의 역량을 총집결해야 할 막바지 단계에 추진위라는 옥상옥을 만든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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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열린 전시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검증 안 된 흙 방울, 설화 속 인물 허황옥이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을 대표 유물로 전시했다. 학계에서 '가야계냐 신라계냐' 논란 중인 유물도 죄다 가야로 소개했다. 혹평이 이어지자 박물관은 전시 유물 일부와 설명문을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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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짜 왜곡은 핵심 주제인 '공존과 화합'에 있었다. '가야는 강자의 패권으로 전체를 통합하지 않았고' '힘을 합쳐 공존을 추구했다'는 글귀는 전시기간 내내 붙어 있었다. 한 고대사 연구자는 "소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축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한 가야의 실체적 역사를 두고, 공존과 화합이라는 현대적 가치로 포장한 것이야말로 국립박물관의 역사 창조"라고 개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지시하며 던진 '영호남 통합' 화두에 '알아서 맞추려다' 벌어진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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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우려되는 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다. 배 관장은 앞서 '대고려'전을 추진하면서 김정숙 여사를 추진위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려다 청와대로부터 거절당했다. 학계의 축적된 연구 성과를 검증해 기준점을 제시해야 할 국립박물관이 전문성과 무관한 대통령 부인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다 망신만 당했다. 고려전은 남북 화해 모드에 맞춰 북한의 왕건상 자리를 비운 채 개막했다가 끝까지 빈 좌대만 감상하게 만든 정치성 연출도 오점으로 남았다. 문화가 정치권력에 기대어 스스로 코드를 맞추는 순간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교훈을 남겼다.


-허윤희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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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의 가야는 왜 세계유산이 되지 못하는가

 

문화재위 세계유산 분과위 71로 압도적 반대… '탁월한 보편적 가치' 미달
UNESCO '
한국은 요주의 국가'

 

본지 주말뉴스부 기사 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소개가 있다. 2015 1월 티베트 자치구 포탈라궁으로 시작, 5년간 대략 250곳을 안내했다. 지난 주말 차례는 아름다운 체코 도시 쿠트나 호라였다. 다들 자기 나라 유산이 최고라고 주장할 테니 유네스코의 선정 기준이 있다. 1972년 세계유산협약 채택 이래 핵심은 하나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쿠트나 호라는 중세 유럽 최대 은() 산지, 또 이곳 은화는 체코뿐만 아니라 국제통화였다는 점이 보편적 인정을 받았다.

가야 고분이 세계유산 국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게 2013년의 일이다. 고향 김해를 선양(宣揚)하고 싶어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과 취임하자마자 가야사() 복원을 국정 과제로 올린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오해들 하지만 '가야 세계유산' 프로젝트는 사실 7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유네스코 본선은커녕 국내 예선마저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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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전후 사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두툼한 책 두 권 분량의 '안내서' '신청서'도 함께였다. 전자(前者)는 유네스코 관련 심사기관이 만든 '세계유산 등재신청 안내서', 후자(後者)는 김해 등 7개 관련 지자체가 작성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유감이지만 비교해 읽으면 읽을수록 고대 왕국 가야의 등재는 험난해 보였다. 기자 혼자만의 편협한 판단일까.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문화재청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 분과위원회가 2019년 하반기 회의에서 이 사안을 71로 부결시켰다는 점이다. 대통령 관심 사업이라 당연히 통과될 줄 알고 축하 만찬을 준비했던 해당 군들은 그날 저녁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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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세부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진정성, 완전성, 지역성. 그 유산이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지, 처음 상태에 가깝게 유지되는지, 해당 지역은 보존 준비를 갖췄는지 여부다. 가야에는 첫 문턱부터 높았다. 검증 안 된 주장을 사실처럼 포장해 논란이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 전시가 보여주듯, 2000년 전 고대 왕국은 여전히 대부분 미스터리. 가야 당대의 사료인 중국 진수(233~297)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당시 한반도에 78개 나라가 있었다고 전한다. 고분군의 현존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게 모두 가야인지 일부는 신라나 백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소국인지 알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판단이다. 2013년 잠정 목록에 처음 오를 때만 해도 신청 지자체는 김해·함안·고령 등 3곳뿐이었지만 2017년 문 대통령의 '국정 과제 선언' 이후 그 리스트는 7곳으로 늘어났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합의하기 더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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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은 나라별로 매년 하나밖에 신청할 수 없다. 각국의 무분별한 신청에 놀란 유네스코가 2018년 취한 조치다. 그 직전 해인 2017년 유네스코는 사전 심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력투구했던 '한양도성 세계유산' 프로젝트에 '등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보류도 반려도 아닌 최하위 등급 등재 불가. 600년 도성이라지만 행정적으로만 관리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전통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유네스코는 이미 한국 등 몇 개국을 요주의 국가로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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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은 어떤 세계적 기관이 그 가치를 먼저 알아봐주고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키고 누릴 만한 가치가 있어 우리가 인정했으니 앞으로 세계인과 나누겠다는 약속이다. 이대로라면 우리의 고대 왕국을 '슬픈 가야'로 만들 뿐이다.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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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형' 역사 전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야사에 관심도 많고 화제 삼기도 좋아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놀이터가 '자은골'이라고 했는데, 그의 묘역 뒤 봉화산에 자은골이 있고, 마애불 같은 가야 유적이 있다. 그걸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 청와대 회의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와 복원은 영·호남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에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포함됐고, 관련 있는 지자체가 예산 따기 경쟁을 벌였다. 김해시는 가야 신화가 전해지는 구산동 구지봉 복원을 추진하면서 사업 부지 내 학교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올 6월 문화재청이 크게 선전했던 창원시 현동 유적 발굴도 논란이었다. 문화재청은 이곳에서 확인된 아라가야 무덤 670여기가 아라가야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이 중 840호 고분은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것 중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만 현동 고분군 면적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20분의 1에 불과하며, 말이산엔 840호 고분보다 큰 무덤이 36기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엊그제 시작한 '가야본성―칼과 현' 특별전이 '가야사 복원'을 국정 과제로 제시한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다 너무 무리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가야 건국 신화 장면을 새겼다는 지산동 고분군 흙방울은 학계로부터 "가락국 내용에 무리하게 짜맞춘 그림 해석"이라는 빈축을 샀다. 수로왕비 허황옥은 설화 속 인물인데도 '국제결혼' '다문화 가족의 시작' 같은 표현을 써가며 실재 인물처럼 설명했다. 한 원로 교수는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가야라고 앞다투는 형국인데 국립박물관이 이를 거르지 않고 향토사 수준의 전시를 했다"며 혀를 찼다.

 

▶단재 신채호는 삼국시대를 '열국쟁웅(列國爭雄)시대'라고 했다. 일부 가야사 학자들도 사국(四國)시대로 보자고 제안한다. 모두 가야사를 제대로 대접하자는 견해이고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복원은 여기에 정치적 고려가 들어 있다. 역사와 영·호남 벽 허물기가 무슨 상관인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역사를 주무르는 '역사 정치'는 두고두고 폐해가 크다. 올 초 임시정부 100주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려 했다가 북한이 임정을 싫어한다고 하자 슬그머니 묻어버린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가야사 복원은 필요하지만 정치가 앞장섰다 역효과를 부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출판전문기자, 조선일보(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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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가야史로 통한다?

 

'창원 현동에서 아라가야 최대 규모의 고분군 확인.'

지난 4일 문화재청이 배포한 보도 자료 제목이다. 경남 창원시 현동 유적에서 아라가야 무덤 670여 기가 확인됐고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됐다며, 이를 아라가야 최대 규모 고분군이라고 했다. 또 이 중 840호 고분은 길이 8.6m, 너비 4.54m, 깊이 1.24m 규모로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라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현동 고분군의 면적은 22536. 그런데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인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면적이 525221(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홈페이지). 말이산 고분군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유적을 놓고 '최대 규모'라는 거짓 제목을 뽑았다. 840호 고분이 아라가야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것도 틀렸다. 말이산 고분군엔 이보다 훨씬 큰 길이 18m 이상의 대형 무덤이 36기나 있다. 현동은 아라가야의 주변 세력에 불과한데도 왕릉급 무덤이 군집을 이룬 중심 유적이란 이미지가 떠오르게끔 발굴 성과를 과장한 것이다.

가야사 복원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가 된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지난 3월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에서 열린 현장 설명회는 축제 현장을 방불케 했다. 대가야 지배 계층 무덤이 모인 이곳에서 가야 건국신화 그림을 새긴 방울이 나왔다며 성과를 공개한 자리다. 조사단은 "고대 건국신화를 형상화한 유물이 발견된 건 국내 최초"라고 했다. 통상 발굴 설명회는 조사단 실무자가 먼저 발굴 경위와 성과를 발표한 후 기자 질의응답이 오간다. 이날은 달랐다. 고령군수, 문화재청장, 경북도 행정부지사가 줄지어 단상에 올라 '축사'부터 했다. 군수가 "국보급 유물이 출토된 오늘은 가야사가 새롭게 출범하는 날"이라고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학계 반응은 싸늘하다. 방울 표면에 새긴 그림을 가락국기 내용에 맞춰 무리하게 짜맞춘 해석이란 것이다. 대다수 가야사 전문가는 "문헌 연구자에게 자문 한번 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해서 빚어진 해프닝" "역사 왜곡을 넘어 창작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동안 가야는 문헌에 남은 기록과 연구자가 많지 않아 신라·고구려·백제에 밀려 소외된 왕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엔 모든 길은 가야사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발굴 실적 부풀리기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문화재청은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모양새다. 한 원로 교수가 쓴소리를 했다. "발굴로 팩트를 밝혀야 할 고고학이 왜곡한 역사를 후증(後證)하는 학문으로 전락할까 우려됩니다. 가야사 복원이 지금처럼 지자체들의 지역 개발 논리에 끌려가면 정권 바뀐 뒤 가야는 빈껍데기만 남게 돼요."


-허윤희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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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가야' 홀대한 건 사실… 삼국 아닌 四國時代가 맞아"

 

[論爭: 가야사 복원] 김태식 홍익대 교수

지난 가야
재조명 사업 때 1290억 예산 대부분 공사비로 써
이번엔 연구·발굴에도 비중 둬야

전라도로 땅 넓힌 건 고령 대가야
김해의 금관가야뿐 아니라 가야연맹 다른 지역도 관심 갖길

 

"가야사를 재조명하면 복원 사업 못지않게 연구와 발굴에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김해의 금관가야뿐 아니라 고령의 대가야 등 가야연맹의 다른 지역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국내의 가야사 연구를 대표하는 김태식(61) 홍익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복원 지시'에 조심스러운 기대를 나타내며 몇 가지를 주문했다. 김 교수는 대학원생 때부터 미개척지였던 가야사 연구에 뛰어들어 '김가야'라는 별명을 얻었고 '미완의 문명 700년 가야사'( 3) 50여편의 저서와 논문으로 가야사 연구를 선도해 왔다. 경상도에 있었다고 생각되던 가야의 영역이 전라도 동부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그였다.

 


5세기 무렵 만들어진 고령 지역의 대가야 고분에서 나온 금귀걸이 그림을 들고 있는 김태식 교수. 김교수는“고대인이 만들었는데도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고 말했다.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이 특정 역사 주제에 대해 지시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지요. 하지만 우리 고대사가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사(三國史) 중심으로 연구되다 보니 다른 역사들에 대한 연구가 안 됐고, 특히 가야사가 신라사에 가려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합니다. 그동안 가야사가 우리 역사에서 역사적 실상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해 온 것은 사실이에요."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것인지요.

"
고조선 다음 시기의 우리 역사를 삼국시대라고 하지만 562년 대가야가 멸망할 때까지 가야도 지속 기간이나 영역에서 백제·신라에 못지않은 위세를 보였습니다. 5세기 말~6세기 초 대가야는 중앙집권이 추진돼 초기 고대국가 단계에 들어섰고요. 이런 점에서 가야를 별개의 주요 국가로 인정해서 '사국(
四國)시대'로 부르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그런데 가야는 초기부터 신라 일부였다는 신라의 일방적 주장이 통용돼 왔어요. 그 결과 가야는 역사 교육에서도 비중이 너무 적고 왕경(王京) 정비 사업에서도 배제되는 등 홀대받아 왔어요."

―가야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도 많은 연구를 내놓았지요.

"'
일본서기' 등을 토대로 한 일본인 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 1880년대부터 시작됐어요. 우리가 연구를 못 하는 틈을 타서 가야 지역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 거지요. 이제는 일본 학계도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구미(
歐美)의 개설서나 백과사전에는 아직도 그런 내용이 상당히 반영돼 있습니다. 일본인 학자들과 경쟁하고 세계 학계에 우리 주장을 알리기 위해서도 2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우리 가야사 연구자의 인력과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가야사 재조명은 2000~2004 1290억원이 투입돼 한 차례 이뤄졌지요.

"
그때도 대부분의 예산은 복원 사업에 사용됐어요. 논문집이 몇 권 나왔을 뿐 제대로 된 연구 기반 조성이나 발굴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부디 지역 개발 사업에만 치중해서 나중에 '가야사를 이용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김해 지역에서 가야사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전라도 동부 지역이 가야 영역에 들어간 것은 고령에 중심을 두었던 대가야가 이끄는 '후기 가야' 시기였습니다. 영호남의 지역 통합을 내세운다면 대가야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령은 인구도 적고, 제대로 대변해 주는 정치인도 없어요. 이왕 가야사 재조명을 추진하면 정치 논리에 빠지지 말고 학문적 관점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이선민 선임기자, 조선일보(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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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倻), 16살 인도 공주 석달간 배 타고 와 과 결혼, 아들 10명 낳고...


세계사에 이런 로맨스가 없다. 인도에서 열여섯 살 공주가 석 달간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국왕과 결혼했다는 가야 왕비의 이야기다. 2000년 전 가야국(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주인공이다. 공간적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고대사 최대 스캔들이라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로맨스 무대조차 지중해 반쪽 정도였을 뿐이다.

▶정사(
正史)인 삼국사기는 가야사를 신라의 주변사로 짧게 다뤘다. 가야 푸대접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한다. 562년 신라에 복속했으니 일부로 봐야 한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럼 백여 년 후 망한 백제·고구려도 똑같이 다뤄야 하지 않나?" '가야사 복권(復權)' 주장은 삼국사기 편찬 직후부터 나왔다. 삼국유사가 가야의 설화를 자세히 기술한 것도 그런 논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가야사의 생명력은 질겼다. 어찌 보면 이 역시 로맨스와 관련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정이 좋아 아들 10명을 낳았다. 그 후손이 크게 번창해 지금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가 '가락종친회'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있다. 김해 김씨 인구만 400만명이 넘어 대한민국 으뜸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는 힘이다. 조선 사림(士林)의 기수였던 김일손이 가야사 복원에 힘쓴 것도 김해 김씨 뿌리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조선 중기 남인의 영수 허목도 "우리 족씨(族氏)는 가락으로부터 나왔다"며 가야사를 족보처럼 중시했다. 그 노력이 이익·안정복·정약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실증적 가야사 연구로 이어졌다.

▶타의에 의해 가야사는 크게 오염된 일이 있었다. '(
)가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일본서기의 이른바 '임나일본부' 왜곡 기술을 일제가 한반도 지배의 합리화 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오랜 논란 끝에 깨졌다. 일본에서도 정통 사학자는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왜가 지배했다는 시기 가야는 한반도 철기 문명의 중심이었고 왜는 가야의 문명을 전수받는데 급급했던 수준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주문했다. "지금 국면과는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라며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동서 화합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금 영남은 물론 호남 지역까지 이어진다는 가야의 옛 영역 때문이다. 역사학은 정치와 완전히 단절될 순 없다. 하지만 정치와 멀수록 의미 있고 성과가 오래 간다. 문 대통령의 주문이 현실 정치와 관련 없는 진짜 '뜬금없는' 역사적 소신이었으면 한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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