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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호를 맞는 감사와 다짐]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잃지 않겠습니다

뚝섬 2017. 6. 24. 07:00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 독자와 함께해 영광입니다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오늘 아침 독자 여러분은 조선일보 '30000'를 받아 보고 계십니다. 1920 3 5 '1'를 낸 지 97년입니다. 조선일보는 한국 언론에서 3만호를 낸 첫 신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벅찬 감회 속 자축(自祝)에 앞서 오늘을 있게 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사에는 일제하 저항 시인 윤동주가 남긴 신문 스크랩북 사본이 세 권 있습니다. 1938~1939년 그가 연희전문(현 연세대)에 다닐 때 조선일보를 구독하며 모아놓은 것들입니다. 거기에는 홍명희, 문일평, 정지용, 백석, 임화, 이원조, 채만식 등 조선일보에 실렸던 작가·지식인의 글 150여 편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일본 감옥서 요절한 시인이 신문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흔적을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당시는 일제의 탄압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였습니다. 윤동주에게 조선일보는 단순히 세상 소식을 전하는 도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절망적 시기에 우리 말과 글로 된 신문은 그 존재 자체가 버팀목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선일보를 읽으며 어려운 세상을 이겨낸 분들이 어찌 윤동주 시인뿐이겠습니까.

창간 이후 정상적으로 발행했으면 조선일보는 오늘 지령(
紙齡) 32000호쯤을 맞았어야 합니다. 일제하 기사 삭제 500건과 정간(停刊) 네 차례, 그리고 1940 8 10일의 강제 폐간이 '30000' 6년 가까이 늦어지게 했습니다. 나라가 없어진 민족 최대, 최악 위기에서 첫 호를 냈을 때부터 조선일보의 험난한 길은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그 암흑의 시기에 조선일보에 주어진 민족적 과업은 독립의 밀알을 키우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겨레의 혼이 담긴 말과 글을 지키면 언젠가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조선일보는 온 힘 다해 한글 보급 운동을 펼쳤습니다. 1931 10 29일 지령 3893호에서 한글날 제정 소식을 특집으로 알리며 "기념할 날이 별로 없고 기념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기쁜 기념일"이라고 썼습니다.

3
만호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 중에는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으로 신문을 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6·25전쟁 중 수원·대구·부산을 오가며 한 장짜리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찍었습니다.
부산 영도다리 옆에 정박한 흥남 철수 배 한 척을 얻어 생활하던 기자들이 만든 전시판(戰時版) 신문 8452호의 사설 제목은 '죽느냐 사느냐'였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영국의 더 타임스, 프랑스의 르피가로처럼 세계에는 지령 3만호를 넘는 신문들이 있지만 조선일보처럼 수없는 고난을 헤쳐온 신문은 없을 것입니다.

1948
8 15 7750호 머리기사 제목은 '금일(
今日) 대한민국 정부 발족'이었습니다. 1950 6 26 8373호에선 6·25전쟁의 발발을 알렸습니다. 1960 4·19 11851호의 1면 통단 제목은 '() 대학생이 총궐기'였습니다. 17450호는 '수출 100억달러 달성', 20755호는 '서울올림픽 개최', 28283호는 '무역 1조달러 달성'을 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에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기적의 역사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한 것은 조선일보의 보람이자 영광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인터넷에서 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이 신문의 장래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뉴스 가치가 있는 새 소식의 원천은 60% 이상이 신문입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언론의 가치를 지키는 뉴스의 기본은 역시 신문입니다. SNS를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는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 자기가 하고 싶은 소리로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 틈을 타고 가짜 뉴스(fake news)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거르고 진실을 추려내 전달하는 신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만큼 가짜 뉴스와 싸워 진실을 드러내는 싸움이 필요한 때입니다. 독자가 진실한 소식을 원하는 한 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실(fact)의 신성함을 소중히 여기는 언론의 본령에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신문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거울에 얼룩이 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때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거울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나이 든 나무는 상처와 옹이도 많지만 뿌리가 깊어 심한 가뭄에도 쉬 시들지 않습니다. 너른 그늘로 큰 쉼터가 되기도 합니다. 조선일보는 그릇된 풍조, 잘못된 시류에 결연히 맞서면서도 세상의 변화를 과감히 흡수하겠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실에 대한 믿음 위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을 하는 용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지령 4만호는 통일 한국에서 발행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2017 6 24

朝鮮日報社 社長 方相勳


-조선일보(1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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